가이드라인 없는 금융당국 땜질 정책에 은행 혼선
2025-04-23 13:46:08 2025-04-23 15:15:06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금융권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생겨난 금융당국의 땜질식 처방 다수가 가이드라인도 없이 겉돌고 있습니다. 당국의 명확한 지침이 없으면 현장에서는 혼선을 빚을 수밖에 없고, 결국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간다는 지적입니다. 
 
'ELS 판매' 거점점포 기준 불투명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은 주가연계증권(ELS) 판매 관련 거점 점포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달라고 요청한 상태입니다. 금융당국은 홍콩ELS 불완전판매 후속 조치로 지난달 은행의 금융투자상품 판매 관행 개선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일정한 물적·인적 조건을 갖춘 지역 거점 점포에만 ELS 판매를 허용하겠다는 내용입니다.
 
금융투자상품 판매 관행 개선안에 따르면 ELS 판매가 가능한 거점 점포의 물적 요건을 갖추기 위해선 여타 창구와 분리된 ELS 판매 전용 공간을 갖춰야 합니다. 벽이나 층 분리 등 다른 사무 공간과 출입문이 다른 전용 상담실에 
 
일정 지역 내 할당점포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특정 지역에 거점 점포가 몰릴 경우 당국이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수도권에 거점 점포가 많이 포진해 있는데 광역시나 시도 단위의 거점 점포를 골고루 배치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습니다.
 
금융당국은 오는 9월 이후 요건을 갖춘 은행 거점 점포부터 주가연계증권(ELS) 판매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2월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홍콩ELS 대책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해상충 방지' 기준도 미정
 
금융당국은 친인척 등 사적 이해관계자의 부당대출 등을 막도록 내부통제를 강화하는 규제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이 국제결제은행(BIS) 은행감독준칙을 참고해 '이해상충 방지 업계 표준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당국이 마련하는 '이해상충 거래 방지 가이드라인'은 현재 은행권의 내부 규율보다 강력할 수 있습니다. 가이드라인에는 이해관계자에 대한 구체적 정의 등이 포함될 예정입니다. 현재 국내 은행법은 이해관계자를 별도로 정의하지 않고 대주주와 그의 가족, 계열사 임원 등을 '특수관계인'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BIS 준칙은 △이해상충 이사회 구성원은 관련 거래 승인 절차에서 배제 △이해관계자 익스포져 식별 및 보고 △이해관계자 익스포져 정기 점검 및 특정 금액 초과 거래 보고 등을 정책적으로 규제하도록 합니다. 모두 국내 은행법에 존재하지 않는 내용입니다.
 
상위법인 은행법을 개정하지 않고 가이드라인을 만들 경우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은행들이 따르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당국도 가이드라인을 권유 수준으로 할지, 강제 수단으로 삼을지 정해지지 않았다는 입장입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내부통제 방안에 대해 감독당국의 룰로 할지, 은행 스스로 할지 논의를 해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금융감독원은 은행 부당대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이해상충 거래 방지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모습. (사진=뉴시스)
 
'나열식 규제' 한계
 
가이드라인이 없어 혼란스러운 상황은 가계대출 관리 정책에서도 반복된 바 있습니다. 지난해 하반기 당국의 압박에 은행권이 가계대출을 옥죄는 강도가 높아지자 주택담보대출 실수요자들이 '대출 절벽'을 겪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대출 '실수요자'를 어디까지 정의하느냐를 두고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보니 은행들은 1주택자에 대해서도 대출 문턱을 높였습니다.
 
그러다가 당국이 실수요자 피해 최소화를 강조하자 은행들은 다시 정책을 원복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은행들은 실수요자의 정의에 대해 문의했지만 당국은 '운용의 묘'를 발휘하라며 금융사 자율로 가계대출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미뤄뒀습니다. 
 
금융당국이 금융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땜질식 대책을 내놓으면서 혼란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도 나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으면 금융사 입장에서는 당국의 입만 바라보게 된다"며 "이후 여론이나 상황에 따라 예외 규제가 생겨나게 되는데, 그러는 사이 소비자 피해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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