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칭 '찌라시'가 요즘 인기다. 특히 청와대에서 대세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공직기강팀이 작성한 '비선실세 정윤회' 문건이 세상에 나오자 그 태생을 친히 '찌라시'로 규정하면서 부터다.
박 대통령은 일요일인 지난 7일 새누리당 지도부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들을 불러 오찬을 가지고 "찌라시에 나오는 그런 이야기들에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찌라시'는 일반적으로 증권가 정보지로 통한다. 증권가에서는 정치, 국방, 사회, 문화, 예술, 예능 등 온갖 변수에 따라 주가가 출렁이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정보가 필요하다.
풍문 수준의 이 정보들이 보고서 형태로 다소 정제되어 돌고는 있지만 이른바 '팩트'로 확인 된 것은 많지 않다. 상당부분 '카더라 통신'이다. 실체도 출처도 불분명하기 때문에 당사자는 부정하면 그만이다.
박 대통령도 '정윤회 문건'을 '찌라시'로 단정하면서 단박에 위기를 빠져나갔다. 충신도 그런 충신이 없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계에서 '찌라시'가 이른바 충신 역할을 한 예는 이번뿐만 아니다.
현재 새누리당 대표를 맡고 있는 김무성 의원도 지난해 11월 대화록 유출 혐의(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나와 "대선 당시 난무한 찌라시를 보고 대화록 중의 일부가 흘러나온 것으로 판단했다"고 얼버무려 위기를 모면했다.
이에 앞서 차명계좌 발언으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해 재판에 넘겨진 조현오 전 경찰청장도 '찌라시'로의 은폐·엄폐를 시도했다.
조 전 청장은 지난해 6월 항소심 공판에서 자신의 발언 경위에 대해 "경찰이 접할 수 있는 정보보고, 소위 말하는 '찌라시' 등을 통해 나름대로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그에게 징역 7월을 선고했다.
박 대통령의 충신 '찌라시'는 당장 입에서는 달콤할 지언정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
아무리 부정해 봐도 '정윤회 문건'은 공직기강실이 조사해 작성한 청와대 내부 문건이다. 그 문건을 '찌라시'라고 단정한 것은 청와대 내부 문건의 수준을 스스로 '찌라시'로 규정한 것이다. 박 대통령 자신의 말대로 "이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다.
박 대통령의 '찌라시' 발언으로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 또 하나 있다.
'찌라시'는 일본어다. '散らし'의 독음이다. 정확히는 '찌라시'가 아니고 '치라시[chirashi]'로, 국립국어연구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지라시'로 표기한다. 뜻은 선전을 위해 만든 종이 쪽지로, '낱장광고', '선전지'로 순화해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이 '찌라시'를 본래의 '낱장광고' 등이 아닌 통상의 의미로 쓰더라도 '증권가 정보지' 등 우리말로 표현하는 것이 맞다.
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된 소리를 넣어 굳이 일본어인 '찌라시' 운운하는 것은 심히 창피한 일로,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청와대 내부문건이 '낱장광고' 수준이라도 말이다.
최기철 정치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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