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영택기자] "명품백. 명~ 명퇴조심, 품~ 품위유지, 백~ 백수방지"
최근 한 걸설사 직원과의 저녁 자리에서 나온 재미있는 건배사다. 한해를 마무리 하는 의미에서 연신 화기애애한 분위기 였지만 돌이켜보면 뒷맛은 씁쓸하기만 하다.
본격적인 인사시즌을 앞두고 자리를 보전하겠다는 의지(?)가 함축된 한마디, 매서운 한파 속 만년부장들의 겨울나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최근 광화문 ▲▲건설 본사건물 앞. 흡연공간에 삼삼오오 모인 직원들이 담배 연기와 함께 긴 한숨을 내뱉으며, 푸념 섞인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아직 인사발표는 나지 않았는데, 상무님 책상에 짐이 주는 걸 보니 남 일 같지 않더라", "2주 전 계열사로 이동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요즘 같을 때.."
이맘때가 되면 건설사는 각 부서 마다 임원인사를 단행한 뒤 부서별로 내년 사업전략, 투자 등 전반적인 계획안을 수립하느라 분주하다. 물론 어느 회사나 비슷한 분위기 겠지만 최근 실적이 좋지 않은 건설사들은 내년에 대한 기대와 희망보다는 우울한 마음이 앞서기 마련이다. 백수만 안돼도 좋겠다는 건배가가 나올만 하다.
올해 들어 국내 주택경기가 회복되고 있지만, 해외 저가수주 여파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으면서 많은 건설사가 실적에 큰 타격을 입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적이 좋지 않은 담당 임원이나 만년 부장들 사이에선 팽팽한 긴장감을 넘어 침울함이 짙게 깔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국내외 경제상황이 급속도로 얼어 붙으면서 좀처럼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고, 내수침체에 환율 하락까지 겹치면서 국내 경제가 둔화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건설사들은 고육지책으로 사업·인력 구조조정뿐 아니라 채용·신규 투자까지 축소한 지 오래다.
이 시기가 되면 가장 초조해지는 건 임원승진을 앞둔 만년부장들이다. 승진 탈락은 퇴직 임박이라는 무언의 압박인 셈이다.
특히 건설사 부장들은 산업의 특성상 연령대가 높고,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탓에 구조조정 대상 1순위다.
여기에 우리나라 기업의 인력구조가 피라미드형 이다보니 '별(임원)'을 다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설령 이 '바늘구멍'을 운좋게 통과했다 해도 안심할 일은 아니다.
상무로 7년째 근무하고 있는 한 대기업 임원은 인사시즌만 되면 한 가지 버릇이 도진다고 한다.
인사 발표 한달 전부터 책상의 짐들을 조금씩 챙겨 놓고 퇴근을 하고, 이 기간을 무사히(?) 넘기면 다시 짐을 풀어 놓는다는 것이다. 젊음을 바친 직장을 떠나면서 처진 마지막 뒷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이를 지켜보는 후배들 역시 착잡하긴 마찬가지다. 대기업에 입사해 대리, 과장, 차장, 부장을 거쳐 임원이 되는 것이 모두의 공통된 꿈이자 목표일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퇴출당하는 선배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목표에 대한 희망이 산산이 부서지고, 마치 내 일처럼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중동의 모래바람을 뚫고, 국가 경제에 버팀목이 돼 온 국내 건설사들. 특히 신입사원부터 조직의 수장인 부장에 이르기까지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 온 만년 부장들.
이 시기 힘없이 떨어지는 '추풍낙엽'은 만년 부장들의 어깨를 한없이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