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지난 29일 프로야구가 개막했다. 스포츠 춘추전국 시기가 왔다. 3월 말부터 4월 중순까지는 국내 4대 스포츠로 꼽히는 프로야구, 프로축구, 프로농구, 프로배구의 시즌이 묘하게 겹치는 기간이다.
여기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분데스리가 등의 해외축구, 추신수와 류현진이 뛰는 미국 프로야구, 세계 최고의 화려함을 자랑하는 미국 프로농구까지 더한다면 온종일 스포츠만 봐도 지루하지 않다. .
최근 3년 동안에는 이 모든 것들이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옮겨졌다. 마음만 먹으면 침대에 누워 모든 경기를 감상할 수도 있다. 스포츠광들에겐 천국이 따로 없다. "요즘 같아선 백수생활도 할만하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지난 29일 개막한 프로야구. 30일까지 LG와 두산의 개막 2연전은 모두 매진됐다. ⓒNews1
하지만 TV 중계만큼은 다양하지 않다. 국내 스포츠 중계가 야구에 집중됐다. 국내 주요 스포츠케이블채널 모두 프로야구가 개막하며 야구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여느 해와 같은 모습이다.
프로야구 개막전날 열린 프로농구 플레이오프 4강전은 주말임에도 저녁 7시로 경기를 옮겼다. 농구팬들에겐 익숙하다. 몇 년 전부터 4강 플레이오프 막바지와 심지어 챔피언결정전도 '게임 채널'이나 '생활 채널'에서 방송했다. 농구 좀 보려면 채널 검색부터 해야 했다.
최근 프로농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야구와 겹치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모이고 있다. 시즌 일정 축소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나마 농구는 낫다. 프로축구는 더욱 중계에 목마르다. 시즌 대부분이 야구와 겹치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K리그는 다시 교통방송(TBS) 몫으로 돌아갔다. 축구 팬들에게 TBS는 그 어떤 방송국보다 소중한 곳이다.
축구 팬들의 불만이 크다. 축구 팬들은 방송국들이 프로축구는 외면하면서 월드컵 시즌만 되면 '월드컵 대표 채널' 같은 구호를 내건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프로축구 중계 도중 정규방송 관계로 중계를 끊었던 일부 채널을 집단 거부하자는 격한 반응까지 있었다. 한 축구칼럼니스트는 지난해 방송사별 축구 중계 횟수를 정리해 "어디가 진짜 축구채널인지 직접 판단하라"고 비교하기도 했다.
흔히 스포츠와 미디어는 '악어와 악어새'에 비유한다.
스포츠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은 1900년대부터 주5일제와 함께 스포츠 중계 시청이 대중적인 여가로 자리 잡았다. 최근 한 통계를 보면 미국 스포츠 비즈니스 규모는 미국 자동차 산업의 2배를 넘었다. 영화 산업 보다는 그 보다 더 큰 차이를 자랑한다고 한다.
특히 1930년대에 TV 중계가 시작되며 스포츠 팬이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미국에서는 스포츠는 광고로 점철되기 시작했다. TV 중계권료는 천문학적으로 늘기 시작했고 방송국은 돈 되는 스포츠 중계를 광고 수주와 연결하기 바빴다.
이미 미국 스포츠산업에서 TV 중계권료는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디어-스포츠리그-광고주는 그렇게 서로를 도우며 스포츠산업 전반을 키웠다.
국내 현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 교수에게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니까 "과도기적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의 스포츠 케이블채널도 그들끼리의 경쟁이 시작됐기 때문에 시청률 위주의 편성이 나올 수밖에 없는 현상이라고 해석했다. 최근 '야구 여신'들의 방송사 이적도 이와 무관치 않다. 결국은 시청률 싸움이다.
프로야구의 시청률이 가장 높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1% 미만의 소수점으로 승부하는 케이블채널에서 0.1%의 시청률 차이는 꽤 크다. 실제 한 케이블채널 PD에게 물어보니 "야구만 중계한다고 뭐라고 할 게 아니라 실제로 시청률에서 방송사 수입과 직결될 정도로 차이가 난다"면서 "공영방송이 아닌 상업방송이다 보니 그런 부분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교통방송(TBS)의 K리그 클래식 중계 모습. (사진제공=TBS)
여기서 다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란이 나온다. "모든 방송국과 매체가 프로야구 위주로 돌아간다. 다른 스포츠는 인터넷이나 채널을 뒤져 찾아보지 않으면 볼 수가 없다. 그러니 야구의 인기가 늘어나고 시청률이 갈수록 잘 나올 수밖에 없다"는 하나의 주장이 나올 수 있다.
반면 다른 쪽 의견은 "원래 프로야구가 인기 있으니 TV 중계가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당장 시청률부터 따져 봐도 차이가 크다. 여러 사람을 위해 야구에 집중하는 게 당연하다"는 의견이 모아진다. 이는 최근 몇 년간 야구팬들과 다른 종목 팬들이 대립할 때마다 맨 마지막에 나온 논란이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야구 하는 시간에 축구나 다른 종목을 보고 싶은 팬들은 열심히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중계방송 사이트에 접속할 것이다. 몇몇 채널이 축구 중계에 힘쓰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지만 축구 팬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브라질월드컵(6월)이라는 변수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대표팀 축구에 쏠린 관심이 결코 국내 프로축구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과거 사례에서 증명됐다. 중계도 마찬가지였다.
여름쯤이면 야구와 다른 종목의 시청률 차이와 관중 수를 비교하는 보도가 나올 것이다. 축구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월드컵 전후가 가장 뜨거울 전망이다.
그러나 비교를 해도 달라질 점은 별로 없다. 시청률 싸움과 광고 수주에서 야구는 거대한 성을 쌓았기 때문이다.
다수가 좋아하는 프로야구 개막이 누군가에겐 긴장감을 준다. "이 정도면 과점도 아니고 독점이에요. 독점. 기대도 안 해요. 집에 케이블 왜 달았을까 싶다니까요"라고 말하던 한 축구팬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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