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공직사회가 불안해 하고 있다. 규제개혁이 강도를 더해가면서 규제를 만드는 것이 주요 업무인 일부 부처 공무원들은 정책 운신의 폭이 크게 줄어 혼란스럽다.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를 반드시 제거해야 할 '암덩어리'라거나 쳐부숴야 할 '원수'로까지 표현하는 등 다소 과도한 정책스탠스를 설정하면서 사라져야 할 규제 외에 유익한 규제마저 손질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데 우려도 표시하고 있다.
특히 규제철폐의 성과에 따라 부처 및 부처장을 평가하겠다는 청와대 방침은 부처별로 불필요한 규제철폐 경쟁과 그에 따른 부작용도 예상된다.
21일 정부 고위관계자는 "규제를 줄여 나가야 한다는데 공감은 하지만, 마치 모든 규제가 사회악인 것으로 표현되는 현재의 분위기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면서 "자칫 필요한 규제마저 철폐의 수순을 밟게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규제개혁 관계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를 개최하고 있다.ⓒNews1
◇규제개혁 압박에 선 긋는 공정위.."공정위 규제는 다르다"
대표적인 규제정책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가 21일 규제의 차별성을 들고 나온 것은 공직사회의 이러한 불안감이 표출된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전날 저녁 늦게까지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개혁 토론회를 참관한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아침 공정경쟁연합회 초청강연에서 작심한 듯 규제개혁에 대한 입장을 내놨다.
노 위원장은 "공정위 소관 규제는 일반적인 규제와는 성격이 다르므로 이러한 특성을 감안해 유형별로 분리해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 위원장은 특히 규범(rules)과 규제(regulations)의 차이를 분명히 하며, 공정위의 규제는 특정 산업내 기업의 경제활동에 개입하는 일반 '규제'와는 다른 '규범'임을 강조했다.
아울러 "시장질서를 유지하는 본원적 기능을 수행하는 규범은 규제정비 대상에서 원칙적으로 제외된다"고 언급했다.
대통령의 방침에 공감하면서도 자신들의 정책은 규제와 거리가 있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규제 철폐의 회오리 속에서도 공정위 본연의 역할을 적절하게 유지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노 위원장은 재계에서 규제로 판단하고 있는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도 입장을 분명히했다.
노 위원장은 "경제민주화와 경제활성화는 과목이 다르다. 지금 국어를 잘해야 한다고 해서 산수를 못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라며 "경제민주화는 그대로 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경제활성화도 지원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법도 규제라 여길까 두렵다"..부작용 우려 높아
공정위 외에도 사실상 주로 규제를 만드는 역할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요즘 부쩍 초조해졌다.
산업통상자원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등 각종 규제법안을 입안하는 부처 공무원들이 그렇다.
세법을 입안하는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런 분위기라면 세법도 규제라는 인식이 생길 수 있다"면서 "국민의 의무인 세금을 내는 문제를 규제로 접근하면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장 4월부터는 올해 세법개정안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해야 하는데, 규제를 만들면 이른바 '쳐죽일 원수'가 될 판이니 정책수립 자체가 난감하다. 그렇다고 해서 세금깎아주는 법안만 만들수도 없다. 박근혜 정부는 이미 비과세감면을 대대적으로 축소,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임기 내 규제건수 20% 감축이라는 산술적인 목표를 정한 것에 대한 볼멘 소리도 나온다.
한 경제부처 고위관계자는 "규제라는 것이 여러가지 측면을 고려한 후에 고쳐야 할지, 폐지해야 할지, 남겨둬야 할지, 더 강화해야할지 등을 판단해야 하는데, 일단 줄여야할 숫자부터 정하는 것은 위험한 행정"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김대중 정부시절의 경우처럼 IMF의 권고에 따라 과도하게 규제를 풀었다가 필요한 규제까지 없애서 카드사태 등과 같이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기식 민주당 의원은 "과거 종금사 규제 완화가 150조가 넘는 국민 혈세를 투입하게 한 IMF 경제위기를 낳았고, 카드사 규제 완화가 카드대란을 초래했으며, 저축은행 규제 완화가 저축은행 사태와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을 불러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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