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성 (사진제공=무비꼴라쥬)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괴물'이 나왔을 때 충무로는 13살 고아성이라는 배우에게 충격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 감정 표현을 하는 수준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가 극찬한 이유를 관객들도 동감했다.
고아성은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로 다시 한 번 관객과 만났다. '얼마나 성장했을까'하는 궁금증은 만족감으로 변했다. 분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등장한 장면에서의 존재감은 송강호에게도 밀리지 않았다. 톡톡 튀는 독특한 요나의 캐릭터는 고아성이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고아성은 영화 '우아한 거짓말'에서 왕따에 시달린 친동생을 잃은 만지로 분한다. 무뚝뚝하면서도 잔정이 많은 고등학생이다.
기존 작품과 달리 매섭고 사나운 이미지지만 전혀 어색함이 없다. 만지가 등장하면 스크린에서 긴장감이 감돈다. 이제 겨우 21살이자만 여배우로서의 아우라가 남다르다.
고아성을 지난 27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고아성은 조곤조곤 차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말투가 조숙했고, 단어의 선택도 깊이가 있었다.
◇고아성 (사진제공=무비꼴라쥬)
◇"아우라가 풍기는 이유요? 부끄러워요"
'우아한 거짓말'은 중학생 천지(김향기 분)의 죽음으로 인해 겪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영화다. 극중 고아성은 언니 만지로 분해 동생이 죽은 이유를 하나 하나 찾아간다. 동생이 죽은 이유를 알고서는 깊은 슬픔에 잠긴다.
다소 부담스러운 내용이지만 담담하고 웃음도 던져준다. 무겁지만 따뜻한 영화다. 다작을 하지 않는 고아성은 왜 이 가슴 아픈 이야기에 동참했을까.
고아성은 "악인도 없고 의인도 없고 진부하리만큼 뻔한 소재인데 그걸 풀어나가는 방식이나 내용이 담백하다. 왕따 사건이 자극적이지도 않다"고 밝혔다.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차갑고 모난 성격이지만 정이 많은 만지의 다양한 얼굴에 끌렸단다.
그는 "만지가 고등학생이기는 한데 의젓하다. 성인 역할보다 더 매력적이었다"며 "사실 화연 역할이 더 마음에 들었다. 배우로서 욕심이 났다. 화연 역할이 끌린다고 감독님께 말하니까 '아성씨가 동안이지만 중학생은 무리'라고 하셨다(웃음)"고 말했다.
이번 작품에서 고아성이 풍기는 아우라는 수준이 다르다. 그간 송강호와 변희봉, 배두나, 박해일, 틸다 스윈튼 등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 틈에 있다보니 드러나지 않았던 것일까. 물론 김희애와 김유정, 김향기의 연기력도 뛰어나지만 이 안에서의 고아성의 풍기는 느낌은 예전과 차원이 달랐다.
매섭게 노려볼 때나 눈물을 흘릴 때, "나 좋은 언니가 아니었어"라고 자책할 때, 엄마 현숙(김희애 분)을 몰아칠 때의 고아성은 곧 만지였다. 김희애와 투톱이 되서 극을 이끌어가는 고아성의 힘은 대단했다.
"고아성이라는 배우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그렇게 아우라가 풍기는 거냐. 포스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아 감사합니다"라는 형식적인 표현을 한 고아성은 기자의 찬사에 부끄러워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질문을 바꿔 "어떻게 작품을 고르고 준비를 하길래 연기가 그렇게 뛰어난 것이냐"라고 물었다.
여전히 부끄러워했지만 천천히 입을 뗐다.
고아성은 "연기할 때는 데이터 수집도 많이하고 비슷한 사람 관찰도 많이 한다. 철저하게 준비를 하는 편이다. 만지를 준비할 때도 원작과 시나리오를 비교해가면서 읽었고, 친언니들의 행동을 분석해 만지 캐릭터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작품 선택은 철저히 감에 따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캐릭터"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반적인 영화가 좋아서 출연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나는 그정도의 그릇은 안 되는 것 같다"며 "내가 잘 할 수 있는 캐릭터를 생각한다. 만지도 아직까지 제가 교복을 벗은 모습에 대해 관객들이 불편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선택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고아성 (사진제공=무비꼴라쥬)
◇"소속사에 안 들어갔던 이유요? 아무것도 못할까봐"
2006년 '괴물'이 나오고 다수의 연예기획사에서 고아성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연기력이 이미 동년배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아성은 기획사와 계약을 하지 않았다. 혼자서 스케줄을 조정했고, 코디도 직접 했다. 소위 '케어'를 받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해 한 연예기획사와 손을 잡았다. 다소 늦은 감이 있었다. 소속사와 계약을 하는데 7년이나 걸렸다. 왜 그랬을까.
고아성은 "고집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케어를 지나치게 받고 자유도 없이 하라는 대로 하면 나중에는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작품선택도 자유롭게 정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양한 작품을 했던 것 같다"고 답했다.
10대의 나이에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내용이다.
고아성은 "나한테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봉준호 감독님, 이준익 감독님, 송강호 선배 등 그런 분들의 작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자양분이 됐다"고 말했다.
덕분에 아역배우들이 느끼는 고충은 겪어보지 못했다. 학창시절도 남들과 크게 다를 것 없이 지냈고, 대학교 수업도 빠지지 않고 다니고 있다. 얼마 전에는 MT에 가서 술도 많이 먹고 왔다고 한다.
고아성은 "'괴물' 때는 인문계 학교를 다녀서 결석을 허락받지 못했다. 작품도 많이 안 했고, 하더라도 방학 때 찍었다. 보통 아역배우들이 겪는 고충을 못 느껴봤다"고 말했다.
이어 "친구들이 나를 연예인이라고 생각하는 건 잠깐이다. 처음 볼 때는 '쟤가 고아성이래'라면서 수근대지만, 일주일 내내 학교를 가면 신경도 안 쓴다. 자연스러워진다"고 웃어보였다.
살아온 삶도 일반적인 아역배우와 다르고 비주얼 역시 신비하다. 그러다보니 고아성을 두고 "일반적인 멜로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고아성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당차게 말했다. 아울러 "이번에 유정이를 보고 연기변신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배웠다"면서 자신의 또 다른 변신을 기대해달라고 당부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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