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소치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분야에서의 네덜란드 메달 기록. (정리=이준혁 기자)
[뉴스토마토 이준혁기자] 그동안 동계올림픽에서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은 한국에게 '텃밭'은 아닐 지라도 가끔씩 메달 소식을 듣도록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 등도 스피드스케이팅 종목 선수다.
하지만 이번 동계올림픽에서는 여자 500m 분야에서 11일(이하 한국시각 기준) 이상화가 금메달을 따고 22일 남자 단체 추발에서 은메달을 얻어낸 것이 메달 전부다.
그런데 남자 500m와 남자 1000m에서 각각 모태범과 이승훈을 4위로 밀어내고 메달을 받은 선수는 모두 국적이 동일하다. '산소 탱크' 박지성의 소속팀인 아인트호벤과 2002 한일 월드컵 4강 진출을 이룬 명장 히딩크로서 국내에 꽤 친숙한 네덜란드다.
네덜란드가 이번에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수집한 메달은 모두 23개다. 금메달과 동메달이 각각 8개며 은메달이 7게다. 단체전은 메달 1개만 받을 수 있는 점을 감안할 경우 받을 수 있는 메달 최대치(32개)의 7할 이상을 네덜란드 혼자 싹쓸이한 것이다.
이제 네덜란드는 그간 강했던 축구는 물론 빙상에서도 강자 위치를 확고히 다졌다. 특히 빙상은 '절대 강자' 위치가 됐다. 네덜란드의 빙속이 강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유리한 '체격 조건'
네덜란드가 한 분야 메달을 모조리 따낼 때 횟수를 모두 합치면 네 번이나 된다. 남자 500m, 5000m, 1만m, 그리고 여자 1500m다.
단거리와 중장거리, 남녀 구분하지 않고 강하다는 의미다. 한 대회에서 모든 메달을 세 분야를 넘게 수집하는 첫 기록을 네덜란드가 수립한 것이다.
또한 네덜란드는 이번 대회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나온 올림픽 신기록 6개의 대부분인 5개를 나홀로 써냈다. (1개는 여자 500m 부문 이상화가 기록했다.)
그렇다면 근원적 성공 이유가 있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네덜란드 국민들의 키를 꼽는다. 시간을 다투는 종목인 스피드스케이팅은 추진력과 가속도를 강화하기 위해 긴 다리와 큰 키가 중요하다.
그런데 네덜란드는 유럽에서도 장신의 장점이 두드러진 대표적 국가다. 단신이 적잖은 아시아권 국가와 러시아와 비교해 매우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상화가 금메달을 딴 여자 500m 분야가 네덜란드가 이번 소치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세부분야 중 유일하게 금메달은 물론 은메달도 따지 못한 종목이다. 마르호트 보어가 동메달을 따며 체면 치레를 했다. ⓒNews1
◇국민적 '관심'
국토의 4분의3이 해수면 대비 낮은 네덜란드는 수로가 거미줄처럼 이어진다. 한국과 기후가 비슷한 네덜란드는 겨울에는 이 수로들이 얼어버린다. 빙판을 직접 접하기 쉬운 것이다.
수로가 얼게 된다는 것은 네덜란드에선 마치 축제와 같다. 국토가 해수면에 비교해 낮은 네덜란드는 오래 전부터 물의 범람에 대비해야했는데, 물이 언다는 것은 더는 홍수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네덜란드 국민들은 '얼은 수로' 위에서 스케이트를 즐겼다. 벌써 수백년 째다. 국민 대부분이 스케이트를 보유하고 있고, 겨울에는 남녀노소 다수가 빙판으로 달려가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얼음이 두껍게 어는 시점에는 무려 200㎞ 이상의 코스를 달리는 스케이팅 마라톤도 열린다. '엘프스테이든독트'로 불리는 이 마라톤 대회는 네덜란드 국왕까지 참가할 정도로 전국적 저변의 대회다.
자연스레 네덜란드는 어릴 때부터 많은 어린이들이 스케이팅 방법을 배웠다. 매우 튼튼한 생활체육의 기반에 좋은 선수가 배출되는 것은 당연하다. 네덜란드에 스케이팅 분야의 좋은 선수들이 예전부터 많이 배출된 원인이다.
◇국가적 '시설 투자'
이같은 체격적·자연적 조건과 국가적인 관심에 힘입은 네덜란드의 스피드스케이팅은 지속적으로 인프라 투자가 이뤄졌다.
지난 1997년 당시 '기록의 혁명을 불렀다'는 좋은 평가를 받은 '클랩 스케이트(스케이트날이 구두 뒷굽에서 떨어지는 것)'도 이같은 투자에서 나왔다.
그동안 남자 단거리 종목은 상대적으로 신장이 작고 파워가 떨어지나 폭발적인 스피드와 근력으로 승부를 거는 아시아와 힘을 앞세운 북미 선수들이 강한 종목으로 인식됐다. '단거리 강자'인 네덜란드도 단거리에선 약했다.
하지만 좋은 신체조건을 통해 장거리 종목을 독식하던 네덜란드는 최근들어 단거리 쪽에도 시선을 돌리면서 뮬러 쌍둥이 형제 등의 단거리 유명 선수들을 낳았다. 전폭적인 국가적 시설·용품, 재정 투자가 견인됐기 때문이다.
이같은 견해는 해외 매체와 많은 전문가들도 같다. 미국 ESPN은 "네덜란드의 열광적 스피드스케이팅 사랑이 메달을 싹쓸이 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기술적인 향상까지 더해지면서 단거리까지 휩쓸게 된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네덜란드는 신체 크기와 자연이라는 태생적 기본 조건은 물론 후천적 조건까지 키우며 세계 최고의 빙속 강국을 이뤄냈다. 성별·분야 가리지 않는다.
한국이 안방에서 열리는 평창올림픽에서 지금보다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서는 스피드스케이팅 부활이 필수라는 점에서 '스케이트 최강국'인 네덜란드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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