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준혁기자] 베일에 싸인 채 세계인들의 관심을 모았던 소치 동계올림픽 개막식 프로그램은 당초 예상보다 화려했다. 또한 '러시아의 꿈'이라는 이번 개막식 주제를 형상화한 수려한 이벤트는 러시아의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의지를 과시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앞으로 17일간 진행될 소치 동계올림픽의 대회 개막을 선언하는 개막식이 8일 오전 1시 14분(한국시각) 러시아 소치 피시트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러시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표현한 이번 개막식 프로그램은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 차이코프스키 음악으로 더 유명한 발레 '백조의 호수', 러시아 전통 민담,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러시아의 광활한 대지 등이 등장하는 2시간여의 공연으로 진행됐다.
◇8일 새벽 1시 14분 러시아 소치 피시트 올림픽 스타디움서 소치 동계올림픽 개막식 행사의 막이 올랐다. (사진=로이터통신)
◇화려한 개막식..깔끔히 잘 표현된 '러시아의 꿈'
총액 500억 달러(한화 약 54조원)가 넘는 거액이 투자된 올림픽의 문을 여는 개막식은 화려했다.
개막식 공연은 현지 시각으로 7일 오후 8시 14분(20시 14분)에 시작됐다.
처음 등장한 것은 러시아어로 '사랑'을 뜻하는 '루보프'(Lubov·리사 램니코바 분·11)라는 이름의 소녀다. 루보프는 자신의 침대 위에 놓여진 동화책을 활용해 꿈속에서 여행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루보프는 러시아 알파벳 33개 순서에 맞춰 바이칼 호수, 헬리콥터, 애니메이션 '안개속의 고슴도치', 차이코프스키, 제정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도스토예프스키, 칸딘스키, 우주정거장, 맨델레예프, 러시아 발레, 스푸트니크 1호(최초 인공위성), 톨스토이, 텔레비전, 시추셰프, 푸슈킨, 안톤 체호프 등 러시아 문학·음악·미술·과학·자연을 잇따라 소개했다.
화면이 꺼지고 무대에 오른 루보프가 눈을 뜨면서 러시아 작곡가 보로딘의 오페라 '이고르 공'의 음악이 시작됐다. 와이어를 장착한 루보프는 눈이 날리는 가운데 우랄 산맥과 중앙 러시아, 바이칼 호수 등의 러시아 상징 조형물 7개의 사이를 날아 다녔다. 아래에는 러시아의 다양한 민족을 의미하는 전통의상 착용자 500명이 등장했다.
올림픽의 주인공인 선수들의 등장은 무대의 가장자리가 아닌 중앙에 뚫린 통로를 통해 지하부에서 시작돼 눈길을 끌었다. 개최국인 러시아가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르자 관중석의 박수와 환호는 최고조에 달했다.
중앙 통로가 닫힌 후 경기장 안팎에서는 굉음과 큰 불꽃이 피었다. 이어 러시아의 역사를 보여주는 입체 공연이 시작됐다. 경기장 바닥에는 러시아의 역사를 상징하는 배경이 조명으로 표현됐고, 공중에는 조형물이 떠다녔다.
눈 속에서 '트로이카'(삼두마차)가 공중을 가로지르며 태양을 끌고 오자 러시아의 부활을 알리는 듯 새 봄이 돌아왔고, 모스크바 성 바실리 성당을 형상화한 알록달록 거대한 풍선들 사이로 화려한 군무가 펼쳐졌다.
공연은 러시아가 몽골에서 해방돼 바실리 성당을 세웠던 16세기를 기반으로 제작된 '겨울의 끝, 봄의 시작'으로 '표토르 대제' 주제 하에 펼쳐진 두 번째 무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테마로 열린 세 번째 무대로 진행됐다.
이어 근대 문명을 뜻하는 열차와 트랙터, 톱니바퀴 등을 통해 기술 발달로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를 무용으로 표현한 '미래를 향해', 현대의 러시아를 건설하는 내용이 담긴 '모스크바의 외침'이 이어졌다. 마지막 공연에선 헤비급 복싱 챔피언인 니콜라이 발루예프가 경찰 복장으로 나서 주목받았다.
◇마지막 성화 주자는 러시아 체육계 '전설'
개회 선언이 끝난 후에는 '평화의 비둘기'라는 제목으로 발레 '백조의 호수' 공연이 이어졌고, 발레 공연 이후 러시아가 자랑하는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러시아대륙을 상징하는 무대에 올라 올림픽 찬가를 불렀다.
프랑스 밴드 다프트 펑크의 곡 '더 게임 해즈 체인지드(The Game Has Changed)'가 깔리는 가운데 은하 공간에 동계올림픽 종목의 모습이 별자리처럼 연출되며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이어진 공식 행사에서는 드미트리 체르니셴코 소치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의 연설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올림픽 개회 선언이 진행됐다.
개회식의 최대 관심사인 성화 점화에서는 '미녀 테니스 스타' 마리아 샤라포바가 4만 관중 앞에 등장하며 관중들의 환호성을 불러왔다. 샤라포바는 성화를 러시아 레슬링 영웅인 알렉산드르 카렐린에게 넘겨줬고, 이후 성화는 러시아 리듬체조 영웅인 알리나 카바예바를 거쳐 피겨스케이팅 페어 부문의 올림픽 3연패 기록자 로드니나가 이어 받았다.
로드니나는 아이스하키 부문의 전설인 트레티아크에게 성화를 넘겼고, 이들은 최종 주자로서 성화대를 향해 함께 달렸다. 이들은 성화대 아랫 부분에 불을 정확하게 점화했다.
성화 점화와 함께 시작된 소치 동계올림픽은 폐막식이 열리는 24일 오전 1시까지 17일 간의 열전에 들어간다.
◇8일 오전 러시아 소치 피시트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개최된 소치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올림픽링이 완성되지 못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눈꽃이 원으로 바뀌는 형태로 올림픽링이 완성됐지만 오른쪽 위 한 눈꽃이 원으로 바뀌지 않은 것이다. (사진=로이터통신)
◇반기문·푸틴·시진핑·아베 등 각국 정상 참석, 한국 선수단 기수는 이규혁
이번 올림픽 개막식에는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드미트리 체르니센코 소치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대회와 관계된 여러 귀빈들이 참석했다.
또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 여러 국가 정상도 함께 했다. 반기문 UN(국제연합) 사무총장도 참석해 올림픽 개막을 축하했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등의 주요국 정상들은 불참했다. 러시아 언론들은 많은 국가의 정상이 러시아 국회가 통과시킨 반동성애법과 신성모독 금지법 등을 인권탄압으로 여기고 올림픽 개막식에 불참했다고 분석했다.
88개 참가국 중 한국은 60번째로 입장했다. 올림픽의 발상지 그리스가 제일 먼저 입장했고 개최국인 러시아가 가장 늦게 들어왔다.
한국 선수단의 기수는 이번 올림픽 참가 선수 중 최다 출전기록을 보유한 스피드스케이팅선수 이규혁(36·서울시청)이었다.
이규혁은 지난 1991년 처음 국가대표 선수로서 참가한 이래 세계 단거리 스프린터 중 최고 실력을 뽐냈지만 유독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ISU(국제빙상연맹) 월드컵 시리즈 정상에 14회 올랐고, 세계 스피드스케이팅 스프린트 선수권대회에서 우승컵을 4차례 들어올린 선수이기에 여전히 메달 획득에 대한 기대가 크다.
이규혁은 이번에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 1000m 등에 참가해 자신의 녹슬지 않은 기량과 노련함을 과시할 예정이다.
◇(왼쪽부터)토마스 바흐(Thomas Bach) IOC 위원장,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로이터통신)
◇한국 대표팀, 금메달 4개 등 10위 이내 목표
한국의 이번 대회 목표는 금메달 4개를 포함한 10위권 진입이다.
역대 동계올림픽 사상 최대규모인 71명(남자 41명, 여자 30명)이 출전하는 한국 대표팀은 아이스하키를 제외한 6개(스케이팅, 스키, 봅슬레이, 바이애슬론, 컬링, 루지) 종목에 출전한다.
한국은 2006년 토리노(7위, 금6·은3·동2), 2010 밴쿠버(5위, 금6·은6·동2) 올림픽에 이어 3회 연속 종합순위 10위 안에 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선수는 이번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피겨 여왕' 김연아(24)다. 김연아는 야후스포츠가 발표한 '소치 올림픽에서 주목할 선수 15명' 중 한 명으로 꼽혔고, 유로스포츠가 선정한 '소치 올림픽에서 주목할 스타 50인'에도 포함됐다.
밴쿠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금메달을 차지한 이후 1인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상화(25)와 밴쿠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1만m에서 각각 금메달을 따낸 모태범(25), 이승훈(26)도 이번 대회 메달이 기대된다.
지난 시즌 6차례, 올 시즌 4차례 열린 쇼트트랙월드컵에서 매번 1개 이상 금메달을 차지한 심석희(17)가 받아올 메달의 색깔도 관심을 모은다.
또 동계올림픽 최초로 스케이팅이 아닌 종목에서 메달 획득이 가능할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지난 2012년 세계선수권대회 4강에 오른 여자 컬링대표팀은 예선 당시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 팀인 스웨덴을 제치는 이변을 연출했다.
한편 러시아로 귀화한 전 국가대표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29·러시아명 빅토르 안)의 성적도 주목된다. 2002년 토리노 올림픽 1000m·1500m 개인전, 5000m 계주 등 3개의 금메달을 딴 안현수는 지난달 유럽 쇼트트랙선수권대회 4관왕으로 돌풍을 예고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