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지은기자]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미국 뿐 아니라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글로벌 중앙은행의 역할을 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그 100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의장이 탄생하게 됐다. 자넷 루이스 옐런(Janet Louise Yellen)이 그 주인공이다. 돈은 어려운 주제고 돈을 다룬다는 것은 그만큼 거친 일이다. 하지만 돈을 ‘머리는 차갑되 마음만은 따뜻하게’ 다루지 못할 일도 없지 않을까. 연준 의장이라는 왕관을 막 머리에 쓴 자넷 옐런은 이제 그 영예의 무게만큼이나 혹독한 비판과 가시밭길도 견뎌내야 할 것이다. 옐런호(號)의 본격 출범과 함께 선장 역할을 할 자넷 옐런의 과거를 재조명해보고 그가 이끌어나갈 연준의 현재와 미래를 내다본다.[편집자]
◇‘교실속의 학자‘에서 ’교수‘로..연준 10년차 베테랑 되기까지
자넷 옐런은 1946년 8월13일 의사인 아버지와 전직 교사 출신인 어머니가 꾸린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학업적 재능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빛났다. ‘교실속의 학자’로 불리던 그녀는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매주 토요일 수학을 공부하는 장학생으로 선발되기도 했다. 스스로 활동하기도 했던 학보사의 인터뷰에 적은 것처럼 오프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영화보기, 먹기, 뉴욕시 돌아다니기, 책 읽기 등을 취미로 가진 평범한 소녀이기도 했다.
'스타 학생‘으로 꼽혔던 옐런은 1967년 브라운대학교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대학교를 최우등(summa cum laude) 졸업한 그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James Tobin)의 지도 하에 1971년 예일대학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가 막 ’신참 경제학자‘로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옐런은 후일 스승인 제임스 토빈을 그의 ’지적인 영웅‘이라고 제시하기도 했다.
1971년부터 1976년까지 6년간 하버드 대학교에서 조교수로 일했던 옐런은 교수로서의 재임권을 따내는데는 실패했다.
연준 의장 후보이기도 했던 로런스 서머스가 이 때 옐런의 제자이기도 했다는 점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1978년부터 1980년까지는 LSE(London School of Economics)에서 강의를 맡았으며 이후 UC버클리 하스 경영대학원(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 Water A. Haas School of Business)의 강의도 맡았다. 당시 학생들은 옐런이 강의 노트를 직접 손으로 쓰는 등 꼼꼼함이 돋보이는 교수였다고 회상한다.
옐런이 처음 연준과의 인연을 맺은 것은 연방준비제도위원회(Board of Governors of the Federal Reserve Board)에 경제학자로 조언을 주기 시작한 때이다. 동료 경제학자이자 지금의 남편인 조지 애커로프(George Akerlof)를 만난 것도 이 때다. 오찬 모임에서 같이 식사를 한 뒤 사랑에 빠져 만난 지 6개월만에 결혼에 골인했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그들은 함께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한다는 전제로 정부의 정책이 필요없다는 경제 이론의 단점을 찾고, 중앙은행과 정부가 사람들의 경제생활을 개선시킬 수 있다는 이론을 보여주는 데 힘을 합했다. 애컬로프는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접한 적 있는 '레몬시장(The Markets for Lemons) 이론'의 창시자다. 애컬로프는 이 이론을 기반으로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4년 4월 옐런은 연준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이사로 지명된 것이다. 당시 연준 의장은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이었다. 1997년부터 3년간은 백악관 경제자문회의 의장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의장직 임명에는 자신의 제자이기도 했던 로런스 서머스와의 ‘궁합’이 가장 크게 고려됐다는 후문이다.
◇지역 연은 총재 리더십 빛낸 옐런, 주택거품 예견하기도
샌프란시스코 연준 총재로 재임하며 6개주의 살림을 챙긴 6년간 옐런은 남다른 '선견지명(先見之明)'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주택시장 가격 거품을 언급한 첫 번째 연준 총재였다는 점이 그 첫번째 성과다. 그는 재직 당시인 2005년 연설에서 연준이 자산 가격 버블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당시는 주택시장이 호황을 누리던 때로 아무도 주택 시장에 대한 우려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던 시기다.
◇샌프란시스코 연준 총재 재직 당시인 2005년 10월 연설문 (자료=연준 홈페이지)
옐런은 주택시장에 대한 불안감을 연준 회의를 통해서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실제 2007년 9월 열린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에서 그는 "주택활동의 둔화와 가격의 급작스런 하락은 실업을 가져오고, 이는 압류의 증가, 주택시장의 약세는 물론 소비 악화까지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 2007년 연준 회의에서 주택 가격 버블을 언급한 옐런(자료=연준 홈페이지)
옐런은 이어 “주택시장의 침체를 경제의 작은 일부분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신용 경색까지 가져올 수 있는 위험 요인”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리먼브러더스 붕괴 후 찾아온 금융위기 속에 미국 경제가 '침체기(recession)'에 빠졌다고 언급한 첫 연준 총재기도 했다. 그리고 침체기의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주도적으로 나선 연준의 '잔다르크'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버냉키 주도의 1차 양적완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그는 “현재 경제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기상황”이라면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해서 민간 신용시장을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노력이 빛을 발해 2010년 9월에는 연준 2위 서열인 연준 부의장으로 임명됐다. 당시 그는 “의회가 나에게 준 두 가지 책무를 잊지 않겠다”면서 “가격 안정과 고용 창출을 제 1의 소명으로 삼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옐런에게 목표는 ‘고용’과 ‘인플레이션’ 두 가지였다.
실제 그는 연준 부의장으로 재직하면서 연준 양적완화 정책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 때마다 이를 방어하는 역할을 하면서 3차 양적완화까지 성공적으로 자금을 풀어온 버팀목이 됐다. 그는 “2009년 초까지만해도 연준의 통화 공급이 부족상태”였다면서 “양적완화 정책은 연준이 제역할을 다하는 정상화 과정을 거친 것”이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실업률이 6.5%이하로 떨어질 때까지는 제로금리에 가까운 양적완화 정책을 이어가겠다는 연준 정책의 배경에 그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은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일이다.
◇옐런..여성리더십 대모될까
지난 28일(현지시간) 국정연설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여성이 성공해야 미국이 성공한다"고 밝혔다.
고용시장에서 여성에게도 동등한 기회와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런면에서 옐런의 연준 의장 임명은 여성 리더십이 미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을 한층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테리 오네일 여성연맹 의장은 "자넷 옐런의 연준 의장 지명으로 다른 여성들이 경제 분야 리더십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면서 "그동안 금융분야에서는 리더의 자리에 여성을 배제시키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옐런이 여성이라는 점이 향후 연준을 이끌어 나가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도 잇따르고 있다.
로라 J 크레이 소셜 사이컬러지 저널 저자는 “여성은 남성보다 도덕적 기준이 높다”면서 “남성이 여성보다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회적, 문화적 현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컨설팅 전문업체 맥킨지는 “기업에 비유해보자면 남성 리더들이 독점하고 있는 조직보다 여성과 남성이 골고루 지도층에 포진해있는 조직이 평균 56% 더 높은 수익률을 냈다”면서 “미국 정치에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옐런은 여성이라는 점 외에도 여러 면에서 연준 의장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준 의장으로 지목된 사람들 중 최고령인 67세라는 점, 연준 부의장 출신으로 연준 의장에 오른 첫 번째 사례라는 점 등이 그것이다.
1979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폴 볼커를 연준 의장으로 임명한 이후 처음으로 민주당 출신 의장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데이비드 매쉬 OMFIF 의장은 "폴 볼커와 같은 남성 지도자가 현재 연준에 산적한 현안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면서 "브루클린 출신의 부드러운 여성으로서 옐런이 충분히 해결해나갈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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