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역사적으로 여성은 주로 남자를 보조하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성들의 파워가 강해지면서 여성주도의 '우머노믹스'가 미래 경제의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우머노믹스(Womanomics)란, 우먼(Woman)과 이코노믹스(Economics)의 합성어로 여성이 경제를 주도해 나가는 경제현상을 말한다.
지난해는 각 분야의 여성리더들이 두드러지게 진출한 해였다. 올해에도 글로벌 기업들의 승진자들이 발표되면서 여성의 리더십이 부각되고 있다. 여성 리더들을 대표하는 섬세한 감성리더십이 리더십의 새로운 모델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뉴스토마토>는 여성이 리드하는 시대를 맞아 정치, 경제 면에 걸쳐 달라진 여성의 위상을 짚어보고 이러한 현상이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여성고용의 미래, 풀어야할 과제 등에 대해 분석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세계 정치권에서 여성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유럽 최대 경제규모의 독일, 중남미 ABC로 통하는 아르헨티나·브라질·칠레, 초고속 성장률과 인구수를 자랑하는 인도 등 다 나열하기엔 지면이 모자랄 지경이다.
여성의 달라진 위상을 확인시켜 주듯 지난해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전 세계 영향력있는 인물 72명 중 여성을 9명이나 포함시켰다.
여전히 미비한 수치이나, 지난 2011년·2012년 6명에 그쳤던 것을 감안한다면 일 년 새 여성의 위치가 향상됐다고 볼 수 있다.
◇알제리 부터 미국까지..세계는 女 정치인이 '대세'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여성이 참정권을 지니게 된 지 벌써 120년이 흘렀다. 이제 여성은 단순히 투표하는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리더를 자처하는 데까지 올라섰다. 점점 더 많은 여성이 세계 곳곳에서 고위직 공무원과 대통령, 총리의 직분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의회에 입성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는 추세가 두드러진다.
알제리는 오랫동안 안보 불안과 편견으로 여성의 정치 참여가 제한됐는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 어떤 나라보다 여성의 정치 참여율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실제로 유럽의회가 지난해 11월25일에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알제리는 여성 정치 참여율 세계 26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직전 년도까지 121위에 그쳤으니 일 년 만에 약 100계단 가까이 뛰어오른 것이다.
지난 2012년 1월 총선을 살펴봐도 여성의 달라진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총 462석으로 구성된 의회에 무려 146명의 여성 의원이 입성하며 전년의 8%에서 32%로 급증했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아이의 엄마로만 여겨지던 알제리 여성들이 이제는 한 나라의 대소사를 책임지는 어엿한 정치인이 됐다.
뉴질랜드도 여성 참정권을 일찌감치 인정한 나라답게 여성의 정치 참여율이 높다. 혼합형 비례대표제(MMP)제도가 도입된 1996년 이후 꾸준히 여성의 정치 참여가 증가해 현재는의회의 32%가 여성 인사로 구성돼 있다. 아울러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되는 '성(性) 격차지수' 또한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노르웨이에서는 장관급 여성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있다. 국방·재정·무역산업·환경·농업·문화· 교육부 등 이번에 새로 임명된 장관 중 53%가 여성이다. 지난 10월에 취임한 총리인 에르나 솔베르그도 여성이다. 이 정도면 노르웨이를 여성이 주도하는 나라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아일랜드는 양성평등의 본이 되는 나라다. 지난해 기준 의석수의 39.7%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EU 28개국을 전체를 놓고 봐도 여성의 정치 참여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럽의회 내 여성 의원 비율은 지난해 25%로 2005년 19%에서 증가했다.
자유의 나라 미국도 곧 첫 여성 대통령이 나올 것이란 기대감에 차있다. 비록 여성이 상원의 20%, 하원 내 17.9%를 차지하는 데 그치고 있지만, 영향력만 놓고 본다면 남성 의원들을 능가한다.
◇세계는 엄마 앓이 중?..여성 리더십, 유권자의 마음 사로잡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사진)는 아이 없는 엄마다. 배 아파 난 자식은 없지만, 8천만 국민이 그녀의 자녀다. 메르켈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국민으로부터 무티'(Mutti:엄마)란 애칭을 얻었다.
◇앙겔라 메르첼 독일 총리 (사진=독일 연방정부 홈페이지)
메르켈이 친정엄마처럼 믿을 만한 지도자라는 국민적 민심이 반영된 것이다. 지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2011년 유럽 부채위기 속에서도 메르켈은 고용을 확대하고 수출을 늘리는 등 독일을 성공리에 이끌어왔다.
실제로 지난 12월 독일의 실업률은 서동독 통일 이래 최저치인 6.9%로 집계됐다. 이는 유로존 평균인 12.1%에 크게 밑도는 수치다.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 추이를 봐도 그렇다. 지난 2007년 이래 계속 증가세를 이어가더니, 지난해 9월에는 유럽연합(EU)의 무역수지 초과 제한범위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6%를 넘어선 8%를 기록했다. 메르켈 집권기간 동안 미국과 이웃국들이 시샘할 정도로 수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런 경제 성장에 독일 국민들은 엄마란 애칭과 더불어 3선 연임이란 선물을 메르켈에게 선사했다.
지난해 9월 독일 총선에서 메르켈은 당당히 3선 연임에 성공했다. 그가 주도하는 보수연합이 41.8%의 표를 얻으면서 총리 등극이 확실시된 것.
3선으로 오는 2017년까지 총 12년간 정권을 잡게 된 메르켈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넘어 유럽의 최장수 여성 지도자로 이름을 남길 수 있게 됐다.
'칠레의 어머니' 바첼레트 또한 주목해야 할 여성 지도자다. 대통령 퇴임 당시 지지율 85%란 경이적인 기록을 내고도 선거법에 걸려 연임에 도전할 수 없었던 그가 다 풀지 못한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는 3월 컴백한다.
바첼레트는 이번 대선에서 무상교육 확대 등 복지제도를 확대하고 기업의 법인세를 높여 세수를 올리는 공약을 내세웠다. 특히,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그는 성난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상교육을 시행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다. 교육개혁에 대한 그들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이번에도 칠레의 어머니' 바첼레트가 자녀 된 국민들의 상처에 약을 바르고 그 위에 붕대를 동여매 줄 것이란 기대가 높다.
지우마 호세프(사진)는 브라질의 대처로 통한다. 부정부패 척결 등 그의 전임자들이 엄두도 내지 못했던 정책을 강단 있게 추진하면서 얻은 별명이다.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호세프에 대한 논평에서 "무뚝뚝한 성격의 소유자이나, 한 번 결심하면 과감하게 행동하는 인물"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사진=브라질 정부 홈페이지)
실제로 지난 2011년 1월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선출된 지우마 호세프는 고위층 부패 척결에 착수했다.
브라질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장을 가로막는 정치권 비리와 무사안일한 분위기를 없애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대통령 당선에 일등 공신이었던 장관들의 예산 관련 비리를 낱낱이 공개하는 등 제 살을 쳐내는 노력도 서슴지 않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비효율적인 정부 부처를 개편하는 한편, 업무수행 능력이 떨어지는 장관을 전면 교체해 깨끗한 정부를 요구했던 국민들의 열망에 부응했다.
또 치솟는 물가를 다스리기 위해 룰라 다 실바 전임 대통령 시절을 거치면서 방만하게 집행됐던 재정 지출 규모를 감축했다. 지난 2011년 2월 호세프 정부는 인플레이션 억제와 재무 건전성 강화를 위해 510억헤알(34조원) 규모의 재정지출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호세프의 정치 스승이자 퇴임 시 지지율 87%를 얻은 룰라 전임 대통령의 기존 정책에 이제 막 집권한 신임 대통령이 겁도 없이 손을 댄 것이다.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지만, 호세프는 자신이 남의 시선이나 사사로운 관계에 연연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점을 세상에 확실히 알렸다. 룰라 전 대통령과의 차별성 또한 덤으로 얻었다.
◇스타급 女 지도자들 '즐비'..클린턴, 차기 지도자로 '부상'
하늘을 봐야 별을 따고 로또를 사야 일확천금을 얻을 기회를 얻는 것처럼, 여성 수장들이 나오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색깔의 여성 지도자들의 지대한 노력이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총재로 알려진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프랑스의 외교관이자 변호사로 그 어떤 남성보다도 정·재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라가르드는 프랑스 재무장관을 역임한 바 있는데, 당시 그가 글로벌 위기 속에서 프랑스 경제를 잘 이끌어 다른 나라에 비해 타격이 적었다.
재닛 나폴리타노도 주목해야할 정치인이다. 그는 애리조나주 피닉스 변호사 출신으로 2003년에 애리조나 주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2006년엔 재선에 성공했다. 친기업 성향이 짙은 지역에서 민주당 소속 의원이라는 핸디캡을 두 번이나 극복한 것이다. 이후 그는 2009년부터 오바마 행정부의 국토안보부 장관으로 일하고 있다.
인도의 소냐 간디 국민회의당 당수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여성 정치계의 거두다. 그녀는 성차별이 심한 인도에서 금수입 제한 조치를 완화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등 정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소냐 간디는 지난해 포브스가 선정하는 영향력 있는 여성 9위에 오르기도 했다.
◇힐러리 전 미 국방장관
(사진=위키피디아)
이미 여성 정치계의 락스타와 같은 존재이나, 더욱 빛날 것으로 전망되는 인물도 있다. 바로 힐러리 다이앤 로댐 클린턴 전 미 국방장관(사진)이다.
각종 미국의 여론 조사 기관들은 힐러리를 강력한 대선 후보로 본다. 실제로 지난해 5월 퍼블릭 폴리시 폴링의 여론 조사에따르면 민주당 지지자의 63%는 힐러리 전 장관을 차기 민주당 후보로 지명해야 한다고 답했다. 조 바이든 부통령은 13%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힐러리가 오바마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다면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는 것이다.
◇여성 정치인 미래 밝지만.."더 큰 관심 필요"
이처럼 여성의 정계 참여가 늘어나는 전 지구적 현상은 남성 중심의 정치에 대한 실망감에서 비롯됐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부르킹스 연구소는 지난 11월8일에 낸 보고서에서 "유권자들은 미 연방정부를 비롯한 세계 각국 남성 정치권의 정쟁에 지쳤다"며 "이에 화합과 대화를 강조하는 여성 정치인에게 희망을 거는 이들이 늘었다"고 평가했다.
여성이 더 청념할 것이라는 기대 또한 그들을 의회와 수장의 자리로 올려 준 원동력이다.
지난 12월13일 미국의 시사 잡지 '타임'은 미 라이스대학교 정치학 조사팀의 연구결과를 인용해 여성 정치인이 남성보다 부패를 용인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라이스대 조사팀은 공공분야에 더 많은 여성이 들어가면 부패지수는 현저하게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스와니 헌트 하버드 케네디 대학 교수는 "적어도 올해부터 오는 2016년까지 여성의 해가 될 것"이라며 "여성 정치인들은 효과적인 정부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아직도 여성을 둘러싼 편견을 없애야 하는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아있다. 남성 정치인보다 여성 정치인의 패션이 유난히 주목받는 것도 그 같은 편견 중 하나다.
여성 스스로 정치 참여에 별 관심이 없는 것도 문제다. 차기 여성 지도자가 나올 가능성을 낮추는 부분이다.
지난 18일 캐나다의 몬트리올 가제트 신문은 여성의 정치참여를 위해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여성 대학 졸업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정치계에서 리더가 되려는 이들은 소수라는 것이다.
이같은 이유로 캐나다에서는 15~17세 여자 아이들을 대상으로 지도자 훈련을 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마리아 모우런 블록당 전의원은 "여자 아이들에게 성별은 정치를 하는데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도 차세대 여성 지도자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달 29일 USA투데이에 따르면 고등 교육을 받고 있는 여학생 중 63%가 단 한 번도 정계에 진출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43%의 남학생들만 그렇다고 답변했다.
맥스 그린 부이주립대학교 교수는 "다른 성과 다양한 연령대의 의견을 수렴할 수 없다는 것은 대의 민주주의에 심각한 문제"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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