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경화기자] 의료계 총파업을 놓고 내부갈등이 확산일로다.
대한병원협회가 먼저 등을 돌린 데다, 개원의들조차 이번 투쟁은 명분이 없다며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부 지방의사회 역시 총파업 결의는 의사협회 집행부 단독 결정이라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여론의 역풍 속에 지지기반마저 붕괴되면서 파업의 현실화는 녹록치 않아 보인다.
대한병원협회는 지난 14일 대한의사협회가 의료 총파업을 예고한 것과 관련해 “어떠한 경우든 병원 문을 닫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의협이 추진하고 있는 총파업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공식입장을 내놨다.
김윤수 병원협회 회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원격진료는 만성 경질환자, 도서벽지, 장애인과 거동이 불편한 노인 등에 대해서만 일정한 규정과 제한을 두고 시행하기 때문에 의협이 주장하는 의료민영화와는 상관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형병원의 이해를 반영한 결과다.
김 회장은 또 의료법인 자법인 허용과 관련해 “해석에 따라 다르겠지만 영리병원, 의료민영화와는 관계가 없다”면서 “얻어진 이익금은 어려운 의료법인에 재투자돼 (재무구조를) 안정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의협이 내세운 두 가지 명분 모두를 반대한 것으로, 이해에 따란 의료계 내부의견이 엇갈리는 등 단일전선을 꾸리기가 간단치 않음을 보여준다.
◇의료계 총파업을 놓고 내부갈등 조짐이 보이고 있다. 대한병원협회는 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고, 개원의들과 일부 지방의사회에서도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사진=이경화 기자)
의협의 최대 기반인 개원의들 역시 이번 총파업 실행에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원격진료와 의료법인 자법인 허용이 총파업을 결행할 만큼의 명분으로서는 취약하다는 반응이다. 여기에다 의약분업에 이어 리베이트 등 그간 제 밥그릇에만 몰두한 탓에 여론마저 냉기를 내뿜고 있어 위기감은 더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서초구 외과 P 개원의는 15일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총파업에는 그럴듯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이번에는 회원들의 싸늘한 반응이 확연하다”며 “(의협 지도부의)생각에는 동의해도 행동에 대한 의견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대의명분의 부재를 지적한 것.
인천 남동구 외과 A 개원의는 “생존권 문제로 가겠다는 것이 의협 측의 생각인 것 같다”며 “의료계와 정부 간의 깊은 골을, 파업보다는 대화로 원만히 풀어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투쟁의 본질에 낮은 의료수가에 대한 현실화가 있다는 안팎의 지적을 시인한 것으로, 이는 민영화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는 여론과는 동떨어져 있다. 또 철도파업에서 확인된 정부의 초강경 대응도 불안 요인 중 하나다.
앞서 지난 12일 전국의사 총파업 출정식에서 파주시 의사회 소속 안과 개원의 임동권 씨는 “대책 없는 파업 결정을 반대한다”며 “원칙 없는 파업 결정을 한 노환규 회장은 사과하라”고 총파업을 반대하는 피켓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임씨는 이 자리에서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쓰기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회원들에게 내용이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았다”면서 “저처럼 파업결정에 반대하는 회원들이 많다”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일부 지방의사회에서는 불만을 넘어 반발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한 지방의사회 관계자는 “의협 집행부는 총파업과 관련해 워크숍에서 자신들의 입장 관철에만 집중했을 뿐, 회원들의 의견을 무시했다”며 “워크숍 때 총파업 반대 강성 목소리도 나왔는데 모두 묵살됐다”고 폭로했다.
이 관계자는 “전면 총파업 실시를 두고 의료계 내부에서도 이처럼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의약분업 파동이 일었던 2000년과 같은 집단 진료거부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파업 실현 가능성을 낮게 점쳤다.
내부 이견조차 잠재우지 못하면서 전선은 이미 무너졌다. 정부와의 협의 과정에서 한두발 물러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분석이다. 의협 집행부가 제 목에 칼을 겨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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