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면서 경영환경을 둘러싼 대내외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생존에 대한 기업들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 같은 위기감은 새해 첫 업무를 알리는 시무식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삼성과 현대차, SK, LG, GS 등 국내 주요 그룹들은 2일 오전 신년하례식을 통해 새해를 맞았다. 각 그룹 수장들은 대내외적인 위기의식을 고취시키는 한편 새해 경영 화두로 핵심사업 강화와 미래성장 동력 확보를 제시했다.
◇재계 총수들 "지금이 위기..시간이 없다"
공통된 화두는 '위기'였다. 전차군단을 대표하는 재계 1, 2위인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도 위기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위기가 곧 기회'라는 평소 경영지론을 또 한 번 역설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가 굳어지고 시장이 위축됐다"며 "이런 와중에 글로벌 기업들과 사활을 걸어야 했고, 특허 전쟁에도 시달려야 했다"고 총평했다.
그는 "핵심사업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한편 산업과 기술의 융합화·복합화에 눈을 돌려 신사업 개척에도 중점을 둬야 하다"고 주문했다. 전자 등 선두산업에 대한 후발주자들의 추격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시간이 없다"며 후발산업의 분발도 촉구했다.
◇(왼쪽위부터)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왼쪽아래부터)구본무 LG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사진=각사)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세계 경제가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면서 업체간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며 "기술의 융·복합에 따른 산업의 변화로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한발 더 나아가 직면한 경영 환경이 위기 그 자체라고 인식했다. 구 회장은 "원화 강세와 경기 회복 지연 등 경제 여건은 여전히 어려운 데다 선도 기업의 독주는 더 심해지고, 다른 범주에 속하던 기업과의 경쟁도 많아졌다"며 "앞서 나가던 기업들도 한순간의 방심으로 기회를 놓치고 아성마저 무너지고 말았다"고 말했다.
동생인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은 "2014년은 위기를 뛰어넘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라고까지 표현했다. TV를 비롯한 주요가전의 수요가 여전히 부진한 가운데 스마트폰 사업마저 정상권 진입이 녹록치 않은 데 따른 위기감의 고취로 풀이된다.
허창수 GS그룹 회장도 "적지 않은 기업들이 대내외 경영환경에 어려움을 겪으며 뼈를 깎는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의 기본 실력과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주력사업인 해운의 유동성 악화로 그룹 전체가 위기에 직면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어려움을 표했다. 현 회장은 "더 이상 기존의 영업전략과 운영모델로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했다"면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다는 각오로 그룹의 명운을 거는 고강도 혁신을 추진해 달라"고 말했다.
◇수장 부재·유동성 위기..기업들 '비상체제' 돌입
수장이 부재 중이거나 구조조정에 돌입하는 등 비상체제에 돌입한 기업들은 명운을 건다는 심정으로 새해 각오를 다잡았다.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부재 중인 SK그룹은 김창근 수펙스(SUPEX)추구협의회 의장이 시무식을 주재했다. 김 의장은 "지난해 SK는 외형적으로 전년과 유사한 경영성과를 거뒀지만 반도체 사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업이 부진했다"며 "외부적으로는 세계경제 침체와 대기업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기대 수준이 높아져 어려운 한 해였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SK의 성장을 주도해 왔고 미래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해 열정을 바쳤던 최태원 회장의 경영 공백이 컸다"고 덧붙였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 작업에 돌입한 한진그룹은 올해 경영기조를 생존에 초점을 맞췄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사업체질 개선을 당부했다. 그는 "사업 목적과 방향을 제로베이스에서 점검하고, 사업 체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흑자를 달성할 수 있는 사업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유동성 위기가 그룹 전체로 번진 상황에서 아픔을 딛고 과거의 현대그룹 영예를 되찾기 위한 초석을 다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현대그룹은 이날 새로운 10년을 알리는 제2기 신경영 원년을 선포했다.
현정은 회장은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과 자산매각, 조직효율화 등의 자구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며 "특히 관습과 타성에 젖은 방만경영의 요소가 없는지 사업 전반의 프로세스를 세심하게 되돌아보고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향하자"고 주문했다.
한창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동부그룹도 각오를 다졌다. 경기 불황과 회사채 시장의 악화로 인해 실적 개선이 지연되고, 자금시장이 경색되면서 금융권으로부터의 구조조정 압박해 처해있는 실정.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창업 이래 유례없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면서 "구조조정을 하게 돼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구조조정을 계기로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내실을 강화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새먹거리 창출 관심..정부 창조경제 기조 '발맞춤'
이날 현대차와 SK그룹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들이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인해 구체적인 경영 목표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새로운 먹거리가 필요하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 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올해 경영 방침을 미래성장 기반 강화로 설정했다. 올해 글로벌 자동차 판매 목표를 전년보다 3.97% 증가한 786만대로 제시했다. 구체적 실천 방안으로는 차량연비와 안전성능 강화를 주문했다. 정 회장은 올해 경영방침을 '역량 강화를 통한 미래성장 기반 강화'로 제시했다.
정 회장은 그러면서 "그룹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기 위해 사업 구조와 중장기 성장전략을 더욱 체계화하고, 혁신적인 제품과 선행기술 개발에 전사적인 역량을 집중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SK그룹은 올해 300조원 기업가치 달성을 위한 관계사별 자율책임 경영 강화를 목표로 내걸었다. 김창근 의장은 "그룹 가치 300조원에 도전하는 2014년이 되자"며 올해 목표를 그룹 가치 상승에 담았다.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한 주문도 이어졌다. 주력시장이 포화상태에 접어들면서 미래 성장을 담보할 새로운 캐시카우의 발굴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아울러 협력사와의 상생과 창조경제 실현 뒷받침 등 경제민주화 흐름과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화답도 빼놓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은 "협력사는 우리의 소중한 동반자"라며 "모든 협력회사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도록 기술개발과 생산성 향상을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은 혁신기술 투자 확대를 통한 창조경제 실현 기여를 포함한 5개 과제를 주요 목표로 제시했다.
구본무 회장도 "사회와 함께 성장하고 호흡하는 대표 기업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면서 "잠재력 있는 협력회사와 힘을 모아 창조경제의 틀을 갖추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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