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유로존 경제가 일본이 앞서간 장기침체를 경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어, 올해 마지막으로 열리는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회의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CB가 물가하락을 막기 위해 미 연방준비제도(Fed)식의 양적완화나 장기대출프로그램(LTRO)을 단행하는 등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년도 인플레이션 예상치가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된다는 점도 투자자들의 이목을 끄는 부분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최근에 발표된 유로존 경제지표가 개선된데다 지난달에 이미 금리인하 카드를 써버린 터라 시장에 영향을 미칠 만한 정책상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저조한 인플레 우려 ‘여전’..물가 하락 · 소매판매 감소
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즈(FT)등 외신들은 5일 열리는 통화정책회의 이후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사진)가 통화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처음으로 공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에 한참 미치지 못한 가운데 각국 소매판매도 부진한 상황이라 ECB가 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지난 10월 유로존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0.7%로 전월의 1.1%에서 크게 하락해 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11월에는 이보다 호전된 0.9%로 집계됐으나,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지난달 ECB는 기준금리를 0.25%로 깜짝 인하했다. 지난 5월 0.75% 였던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수준인 0.5% 낮춘 이후 6개월 만에 또 다시 내려 잡은 것이다. 그만큼 물가하락으로 인한 경기침체 우려가 컸다고 볼 수 있다.
조나선 로인스 캐피털 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ECB는 금리 인하를 단행했으나,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추가조치를 해야한다는 압박감을 완전하게 씻어내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유로존의 장기침체 위험성은 국가별로 나누어 보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블룸버그의 조사에 따르면 소위 유로존 주변국으로 불리는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키프로스, 그리스 등의 소매판매는 지난 2010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2% 감소했다. 특히, 그리스는 21%, 스페인은 14%씩 각각 큰 하락폭을 기록했다.
이처럼 유로존 주변국을 중심으로 소매판매가 줄어드는 양상이 이어지자 유럽 경제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켜졌고 소매업자들도 걱정이 태산이다.
사라 헤이윈 스탠다드앤드차타드 런던지부 리서치 대표는 "그리스와 스페인 같은 국가들의 물가에 하방 압력이 가해지면서 경기침체(리세션) 위험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세계 최대 식품기업 네슬레의 부사장 로렌트 프레이시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유로존에 경제활동 침체(디플레이션) 위기감이 가득 차있다"며 "모든 이들이 작아진 파이를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털어놨다.
◇ECB, LTRO 도입 등 선제적 행동에 나선다
이와 같이 유로존이 일본식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할 수 있다는 우려감이 가시지 않아 ECB가 지난달 기준 금리를 낮춘 데 이어 다시 한번 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줄을 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다수의 유로존 애널리스트들이 유로존에 경기 부양책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물가상승률이 2%를 밑돌고 민간부문 대출은 취약하다”고 평가했다.
블룸버그 통신도 ECB가 통화정책회의에서 잠재적인 디플레이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대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EY 유로존 포어케스트의 마리 디론은 "ECB가 디플레이션의 위험성을 보다 분명하게 인식하고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페트르 프레이트 ECB 집행이사 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ECB가 자산매입을 단행 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저조한 인플레로 인한 경기침체 위기감이 짙어지자 전문가들은 ECB가 이번 회의를 통해 장기대출프로그램(LTRO)을 도입할 것으로 전망했다. 로이터폴은 ECB가 조만간 대규모 자산매입을 단행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CB는 신용경색을 막기 위해 지난 2011년 말과 2012년 초 두 차례에 걸쳐 LTRO프로그램을 추진한 바 있다.
조너선 로인스 이코노미스트는 “ECB가 이번 회의에서 3년물 LTRO를 주문한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라며 “LTRO는 은행들이 대출을 확대할 것이라는 약속만 있다면 시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물가상승 우려 '과장'..내년 인플레이션 전망이 중요
ECB가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최근 실업률이 간만에 하락했고 물가상승율도 소폭이나마 상승했는데 유로존 경제가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감이 다소 과장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10월 유로존 실업률은 전달 보다 0.1% 포인트 하락한 12.1%를 기록했다. 지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수치가 내려간 것.
루도빅 수브란 율러 허미스 이코노미스트는 "아직 유로존에 일본 스타일의 디플레이션이 찾아오진 않았다"며 "유럽이 경험하는 것은 디스인플레이션"이라고 분석했다.
디스인플레이션은 물가 상승률이 낮아지는 경우이고 디플레이션은 물가수준 자체가 하락하는 것이다.
ECB 위원들 또한 유로존이 겪고 있는 것은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아니고 물가 상승률이 잠깐 주춤한 ‘디스인플레이'이라고 강조해왔다. .
지난달 마리오 드라기 유럽 중앙은행(ECB) 총재도 "유로존과 일본의 공통점을 찾을 수 없다"며 유로존이 20년의 장기침체를 경험한 일본의 과거를 답습하고 있다는 세간의 우려를 일축했다.
또 기준 금리가 인하 된지 한달 밖에 안됐고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이 추가 금리인하를 비롯한 부양책에 반대하고 있어 기준 금리는 현행 0.25%를 유지할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최근 로이터 통신이 머니마켓 트레이더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전문가는 기준금리 동결 전망에 손을 들었다.
ECB가 미 연준처럼 양적완화를 단행할 가능성도 아직까진 희박하다는 분석이다. 물가상승률 지표 하나만을 보고 인플레 위험을 무릅쓸 정도까지 상황이 급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브느와 꾀레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위원회 이사는 지난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ECB가 미 연방준비제도(Fed) 같은 대규모 자산매입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더불어 유로존 주변국의 꽁꽁언 소비심리가 낮은 물가 덕분에 풀린 것이라는 전망도 ECB가 급진적인 정책을 취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 힘을 실었다.
앙겔 라보르다 스페인은행연구소(FUNCAS)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제 이득볼일만 남았다"며 "낮은 임금수준 탓에 물가가 저조한 것이며 이는 결국 수요증가를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너스 예금금리가 이번 회의에서 결정될 가능성 또한 희박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우드 아처 HIS 글로벌 인사이트 이코노미스트는 “ECB가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더라도 이번이 아닌 내년에 시행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CB의 정책이 현행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는 측에서는 이번에 처음으로 발표되는 내년 인플레이션 전망치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인플레 전망치에 따라 내년부터 ECB의 주요 정책이 변경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 분석가들은 내년 유로존의 인플레이션율을 1.3%에서 1.4%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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