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지윤기자] 태풍의 눈이 될 것인가. 찻잔 속 미풍에 그칠 것인가.
테슬라로 시작된 전기차 충격이 2차전지 등 관련산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벌써 증시는 대륙을 넘어 요동치고 있다. 관심은 한일전으로 압축된 소형 2차전지 시장 판도다. 이미 삼성SDI와 LG화학이 간판선수로 자리한 가운데 일본의 재기 다짐도 만만치 않아 경합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리튬이온 2차전지 시장은 지난 2010년까지 종주국인 일본 기업들이 우위를 점했으나 2011년부터 상황이 180도 급변했다. 삼성SDI와 LG화학이 연간 합계 점유율 40%를 기록하며 35.4%인 일본을 제치고 새로운 강자로 급부상했다. 특히 올 1월부터는 업계 3위였던 LG화학이 2위인 파나소닉을 추월하는 대역전극을 연출하며 판세는 한국으로 기우는 듯 했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 테슬라 열풍이 불어 닥치면서 2차전지 시장이 다시금 요동치고 있다. 시장의 변화는 3위로 추락한 파나소닉에게 재기의 발판이 되고 있다. 당장 업계 2위로 올라선 LG화학은 점유율 수성을 신경 써야 할 처지가 됐다. 물고 물리는 치열한 전장으로 비화됐다.
◇테슬라, 도쿄서 "파나소닉, 우선 공급업체 지위 유지" 강조
테슬라는 지난 19일 도쿄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파나소닉이 전기차 배터리의 우선 공급업체 지위를 계속해서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케빈 유 테슬라 모터스 아시아 태평양 지역 담당 디렉터는 이날 간담회에서 "파나소닉은 앞으로 우선 공급업체 위치에 계속해서 자리할 것"이라면서 파나소닉이 전기차 배터리의 주요 공급처가 될 것임을 재확인했다. 다만 '우선 공급'이 지니는 의미에 대한 즉답은 피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배터리 공급업체를 추가적으로 선정할 것임을 시사한 발언도 나왔다. 다만 공급업체 확보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당분간 파나소닉의 독점 공급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테슬라 측은 "파나소닉과 계약은 독점적인 것이 아니라, 한국의 LG화학와 삼성SDI와도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날 발언은 전날 한국에서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열린 기업설명회 내용과도 궤를 같이 한다.
제프 에반슨 테슬라 IR담당 부사장은 지난 18일 "삼성SDI, LG화학과도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최종 결정이 나기까지 수년은 걸릴 것"이라고 단서를 붙여 공급선 확대에 대한 신중함을 내비쳤다.
◇테슬라 등에 업은 파나소닉, 부활하나
관심은 소형 2차전지 업계에 미칠 파장으로 모아진다.
테슬라의 '모델S'는 중대형 2차전지를 채택하는 기존 완성차 업체와 달리 소형으로 분류되는 원통형 전지를 탑재한다. 노트북PC에 쓰이는 원통형 전지는 최근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보급의 확대로 내리막길로 돌아섰다.
그러다 최근 테슬라가 올 상반기에만 총 1만50대가 판매되는 등 돌풍을 일으키자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테슬라 돌풍으로 당장 올해 시장 2위 자리를 탈환했던 LG화학에 때 아닌 불통이 튀게 됐다. 파나소닉이 테슬라를 등에 업고 빠른 회복세를 보이면서 시장 지위가 위태롭게 된 것.
파나소닉은 소형 2차전지 사업부문에서 지난해 100억엔(한화 1056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올해는 테슬라 전기차의 판매 호조로 흑자전환이 예상된다.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파나소닉은 올 12월까지 테슬라에 총 2억개의 원통형 배터리를 공급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일본 시장조사기관 B3(구 IIT)가 올해 전망했던 출하량 4억3700만개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대규모다.
B3는 삼성SDI 4억5400만개, LG화학 3억3000만개가 출하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B3의 전망이 테슬라 돌풍에 앞서 나온 터라 출하량이 예상치를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도 업계에서는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가 기대 이상 선전하면서 파나소닉의 원통형 2차전지 출하량도 기존 전망치에 비해 크게 늘 것으로 보인다"면서 "일시적으로 2위와 3위 업체간의 점유율에도 미묘한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파나소닉 단일공급서 삼성SDI·LG화학 공급선 다변화할 것"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테슬라가 공급선을 다변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최근 배터리 안전성이 의심되는 사고가 잇따라 터지면서 삼성SDI나 LG화학으로 공급선 다변화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테슬라의 모델 S는 지난 6주 동안 3건의 화재 사고를 일으키며 지난 19일(현지시간)부터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이 긴급조사에 착수했다.
손영주 교보증권 연구원은 "전기차 배터리는 안전성 등을 감안해 적어도 2~3개의 업체로부터 공급받는 게 정석"이라면서 "최근 폭발사고를 계기로 추가적인 업체 선정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테슬라가 계획하는 생산규모에 비해 2차전지 제조사들의 생산규모가 턱없이 모자란 점도 국내 업체들의 수주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테슬라는 올해 2만대, 내년 4만대를 비롯해 오는 2020년까지 연간 50만대까지 생산 규모를 확대할 방침이다. 그러나 전세계 배터리 제조사들의 원통형 전지 연간 생산능력은 16억셀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테슬라의 전기차 1대 당 약 7000개의 배터리 셀이 사용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2020년까지 35억셀의 생산능력이 요구된다. 지금보다 생산능력을 두 배 가까이 끌어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다만 국내 업체들은 테슬라를 염두에 두고 증설에 나서기보다 추가 수주에 방점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가 태풍의 핵으로 떠오르긴 했지만, 테슬라 하나만 보고 생산 확대에 나서기엔 무리가 따른다"면서 "시장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테슬라의 전기차 '모델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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