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
[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재산보다 빚이 많은 부부가 이혼할 때, 일반적인 재산분할처럼 빚도 분할해 나눠 갚을 수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허모(43)씨와 오모(39·여)씨가 서로를 상대로 낸 이혼 및 재산분할 등 청구소송에서 오씨의 재산분할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가정법원 본원 합의부로 돌려보냈다.
이번 판결은 부부의 총 재산에서 채무액을 공제하면 남는 금액이 없을 경우, 재산분할을 허용하지 않았던 기존의 대법원 견해를 변경한 것이다.
그동안 대법원 입장에 따르면, 부부 한 쪽이 큰 액수의 빚을 지고 있는 반면 상대방은 그보다 적은 액수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경우까지도 재산분할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혼 후에도 결국 부부 한 쪽이 빚을 모두 떠안게 된다는 비판이 제기됐었다.
이와 관련해 이날 재판부는 "부부의 채무 총액이 재산 총액을 초과해, 재산분할을 한 결과 결국 채무 분담을 정하는 것이 되더라도 재산분할이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재산분할제도는 혼인 중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을 분할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부부 중 일방이 진 채무라도 그것이 공동생활 관계에서 생긴 것이라면 재산 분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채무의 성질, 채권자와의 관계 등 사정을 참작해 채무를 분담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인정되면 분담방법 등을 정해 재산분할 청구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채무의 분담을 정할 때 재산을 분할할 때처럼 재산형성에 대한 기여도 등을 중심으로 일률적인 비율을 정해 당연히 분할해야 한다는 취지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반면 이상훈·김소영 대법관은 "재산분할청구권은 혼인생활 중에 부부 공동의 노력으로 형성된 재산이 있어야 한다. 재산분할 제도는 부부 공동의 순재산이 있는 경우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므로, 채권자가 존재하는 채무를 부부 사이의 합의나 법원의 재산분할심판만으로 청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복잡한 법률적 문제가 파생된다"고 반대 의견을 냈다.
이어 "아내가 전업주부인 가정이 아직도 많은 우리 사회에서 남편이 실직이나 사업실패로 지게 된 빚을 아내에게 부담하게 하는 것은 부당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영한·김신 대법관은 "부부의 채무 총액이 재산 총액보다 많아도, 분할 청구인에게 순재산이 없는 반면, 상대방 명의의 순재산이 있을 땐 재산분할을 허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2001년 정당활동을 하는 허씨와 결혼한 오씨는 개인과외 등을 하며 생계를 책임져 왔다. 오씨는 남편의 선거자금 등을 대려고 지인들에게 2억7600만원을 빌리거나 보험사로부터 3000여만원의 대출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06년 오씨는 허씨의 외도장면을 목격했지만 친정어머니의 만류로 결혼생활을 이어갔고 허씨의 교육비까지 지원했다.
그러나 허씨는 2008년 아내가 교육비를 더이상 대지 못하겠다고 하자 집을 나갔고, 2010년 이혼소송을 냈다. 이에 오씨는 남편을 상대로 이혼 및 2억원의 재산분할 소송을 냈다.
앞서 1·2심은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라 오씨의 재산분할 청구를 기각하고 “허씨는 아내에게 위자료 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부부의 양성평등을 지향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향후 법원의 실무도 이번 판결의 취지에 따라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 법원에는 이혼시 재산 분배에 관한 광범위한 재량이 주어지고, 그 분할 방식도 비교적 자유로운 등 부부의 채무 분할을 허용하고 있다. 독일은 혼인했을 때보다 늘어난 재산이 있을 경우에 재산분할을 하도록 하고, 일본은 우리나라와 동일한 법체계를 취하고 있어 순재산이 없는 경우 재산분할을 허용하지 않는 입장이 아직은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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