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이번 정부 조직 개편의 핵심쟁점으로 부상한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개편 논쟁의 과정 역시 유별난 곳이다.
특히 방통위 관료들이 기구와 업무 축소에 누구보다 적극적이라는 점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이에 불똥을 맞게 된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이 최근 민주통합당의 주장을 거들면서 방통위 축소에 반대하고 나선 점도 이례적이다.
반대로 지상파, 그 가운데 공영방송은 방통위 개편으로 정치·자본권력에 의한 장악 우려가 한층 커졌다는 해석이 많은 데도 묵묵부답이다.
세 가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밥그릇’으로 장기화된 방통위 개편 과정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계철 방통위원장은 지난 1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이하 문방위)에 출석해 눈에 띄는 발언을 했다.
이 위원장은 “방통위 체제에서 정보통신기술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ICT 독립부처가 세워지진 못했지만 ICT 기능을 다 묶어서 미래창조과학부로 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ICT엔 방송, 통신, 방송통신 융합까지 다 포함된다”며 “이 셋을 전부 발전시킨다는 게 인수위의 개편안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경우 방송의 공공성, 독립성이 보장 가능하겠느냐는 지적이 일자 “가능하다고 본다”는 대답도 돌아왔다.
ICT 전담부처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선 “ICT는 우리가 세계 1위를 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라고 자신감을 비쳤다.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방통위가 해체수준으로 가게 됐다”고 우려를 쏟아내자 이 위원장은 방통위에 발목 잡힌 정보통신 업무를 미래창조과학부로 몰아넣고 밀어줘야 한다며 반박한 셈이다.
이 위원장은 이날 “차라리 방통위를 해체하지 그러느냐”는 말을 들어야 했다.
방통위의 업무 이관에 방통위 관료들이 앞장서고 나선 점은 개편 대상에 오른 여타 부처에 견줘 이상하게 비칠 법하다.
굳이 통상업무 분할·이관에 거세게 반발하다 역풍을 맞은 외교통상부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조직 축소를 최소화 하고 싶은 게 관료사회의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방통위 역시 인수위가 1차 정부 조직 개편안을 내놓았을 때는 충격에 휩싸였다.
당시 발표는 방통위 업무를 진흥과 규제로 나눈다는 내용이 핵심이었고 이에 따라 조직 축소는 불가피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통위가 곧장 입장을 바꿔 방송통신 업무 전반은 물론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ICT 업무도 미래창조과학부에 몰아넣는 것으로 인수위 보고를 마치면서 상황도 반전됐다.
인수위의 2차 발표는 방통위 업무 대다수와 과거 정보통신부 관할에 있던 우정사업본부까지 미래창조과학부에 이관하는 내용을 담았고 방통위는 즉각 환영논평을 냈다.
박근혜정부가 주력해 밀고 있는 미래창조과학부를 장악해서 방통위 이전의 구 정보통신부(이하 정통부) 모델을 복원한다는 계산 아래 진행한 일들이 일정 부분 먹혔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인수위 개편안에 맞춰서 발의한 방통위 설치법 개정안대로라면 ICT를 전담하는 2차관은 정통부 업무에 더해 과거 방송위원회 업무까지 챙기게 된다.
진흥과 규제는 분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감안해도 구분이 애매한 방송 규제, 방통융합 규제까지 미래창조과학부에 묻어가는 바람에 방통위는 방송담당기구로선 역대 최소규모로 쪼그라들 참이다.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장은 13일 국회 문방위 공청회에서 “조직 개편을 시스템 문제로 이해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있다”며 “방통위가 전부 싸갖고 미래창조과학부로 간다고 하는데 내가 들은 바로는 그 이유가 너무 충격적이다. 거기 우정사업본부가 가니까 기대하는 거 아니냐, 인사적체를 그렇게 해결하려하는 거 아니냐, 결국 우체국장 자리라도 어떻게 얻어 보겠다는 거 아니냐, 그런 지적이 떠돌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한배 탄 종편?..“방통위 분할 안 된다”는 이면은..
최근 조선·중앙·동아·매경 등 종편을 운영하는 거대 보수신문 4개 사가 야권을 편들고 나서 언론계를 당황시켰다.
보도비중은 달라도 야당과 학계, 시민단체 목소리를 빌려서 새정부와 여당의 현 방통위 개편 내용을 비판하는 방식은 동일했다.
중앙은 14일 사설에서 “방송정책은 방통위가 맡아야 한다”고 밝혔고 동아도 이날 사설에서 “방송 관장 부처를 둘로 쪼개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매경은 13일 사설에서 “미래창조과학부로 넘기는 분야는 순수하게 통신기술 발전과 관련된 영역으로 최소화" 해야 한다는 주문을 제시한 뒤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키로 예정된 유료방송 업무도 방통위에 남기라는 입장을 같이 담았다.
특히 이들 신문이 CJ를 노골적으로 겨냥한 목소리가 주목된다.
동아일보는 14일 사설에서 “CJ가 시장의 3분의 1로 되어 있는 유료방송시장 매출액의 상한 규제를 없애기 위해 다양한 로비를 벌이고 있는 것은 이제 비밀도 아니”라며 “여야 합의제 기구인 현재의 방통위가 시청권 보호 차원에서 이를 막았지만 미래부로 넘어가면 산업 논리에 따라 상한 규제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고 중소 방송사업자들은 우려한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CJ E&M의 비상을 두고 볼 수 없다는 게 종편 신문사가 주장하는 핵심인데 이는 표면상 방통위가 규제, 미래창조과학부가 진흥을 앞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달 인수위와 새누리당은 보도기능을 갖고 있는 방송만 방통위에 남기고 유료방송을 포함한 방통위 업무 전반을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어, 이대로 개편안이 굳어지면 종편은 지상파, 보도전문채널 등 몇 개 방송사와 더불어 규제 위주의 방통위 관할로 덩그러니 남게 된다.
민주통합당 관계자는 “그렇다고 장관이 맘대로 쥐락펴락 할 수 있는 독임부처 소속으로 들어가기엔 위험부담이 있으니까 유료방송채널의 경쟁자 CJ E&M을 포함해 방송정책 전반은 그대로 방통위에 두라는 주장을 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종편의 가세로 상황은 한층 복잡해졌다.
종편이 자사지면을 ‘활용’하는 방식의 잘잘못과 별개로 이같은 여론몰이에 탁월함을 보였던 이력이 방통위 개편에도 변수로 작용할지 업계가 주시하는 대목이다.
◇지상파의 이상한 침묵 “재송신, 광고, 허가권까지 장관 손에 넘긴다는데..”
종편의 노골적 여론몰이와 대비되는 행보가 지상파방송의 침묵이다.
인수위와 여당의 방통위 개편안은 지상파에 가장 위협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게 중론이지만 지상파는 공식적으로 무대응 상태다.
한국방송협회 관계자는 “내용을 모르지 않지만 회원사마다 입장이 다르다”고 말을 아꼈다.
인수위와 여당은 방통위 설치법 개정안 등을 통해 방통위엔 지상파 ‘허가 추천’ 역할을 맡기고 ‘최종 허가’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방통위와 미래창조과학부가 동등한 위상에서 독립적으로 자리하지 않는 한 장관의 허가가 요식행위에 머물진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인수위와 여당은 지상파 입장에서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재송신 정책도 미래창조과학부 관할로 두겠다는 방침이다.
무엇보다 방송광고 업무를 미래창조과학부로 넘긴다는 내용에 우려하는 시선이 많다.
수신료로 지탱하는 KBS까지도 광고재원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부처 장관이 지상파를 다루기 쉬워질 것이란 전망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지상파 노조가 미래창조과학부를 ‘구 공보처’로 규정하고 회사측의 적극적 대응을 촉구하고 나섰지만 지난해 임기를 개시한 공영방송 임원진은 아직까지 드러난 행보가 없다.
업계 관계자는 “방통위 개편과 관련해 성명 한 장 내지 않은 지상파가 케이블 쪽으로 입장을 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안다”며 “지상파의 이기적 속성을 모르지 않는데 이명박정부를 거치면서 비겁함이 추가된듯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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