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공정위 금산분리 압박에 '폭풍전야'
공정위, 비금융 계열사 의결권 제한 대폭 강화 방안 제시
삼성, 미래전략실 내 전담 TF 조직 움직임
2013-01-16 17:05:09 2013-01-16 18:18:11
[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정부조직 개편안이 발표되던 날 공정거래위원회가 기다렸다는 듯 '묵직한' 칼을 빼들었다. 금융사의 비금융 계열사 의결권 제한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제시하면서 금산 분리 고삐를 죄고 나섰다.
 
◇공정위, '단독 금융사'→'금융사'로 기준 확대 적용
 
공정위는 15일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그룹 내 금융사의 비금융 계열사 의결권을 현행 15%에서 5%로 제한하는 방안을 내놨다. 
 
주목할 대목은 기준을 ‘단독 금융사’에서 ‘금융사’로 확대, 적용토록 했다는 점이다. 금산 분리 강화 취지를 살려 재벌 총수가 금융사를 통해 계열사 전체를 순환 지배하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다.
 
인수위가 공정위 방안을 최종 확정할 경우 재벌그룹의 상징인 삼성그룹은 직격탄을 맞는다. 삼성이 입을 유·무형적 타격으로 한바탕 소용돌이가 휘몰아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와 학계마저 금산 분리의 가장 큰 피해자로 삼성그룹을 지목해왔다. 중간금융지주사 도입과 맞물릴 경우 그룹 재편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 삼성이 바짝 긴장하며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입을 예의주시하는 이유다.
 
물론 생명과 손보, 증권 등의 금융사를 거느린 한화그룹 또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과는 반대로 건설 등 비금융 계열사가 금융사의 지분을 대거 보유하고 있어 양측의 고리를 모두 끊지 않는 한 한화는 한숨 돌릴 여지가 크다. 김승연 회장의 법정 다툼에만 매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삼성, 일대 '회오리'..지배구조 변화 불가피
 
결국 공정위의 칼 끝은 재계 서열 1위인 삼성그룹을 정면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지배구조 변화마저 불러올 수 있다. 삼성으로선 순환출자 금지와 맞먹는 쓰나미에 맞닥뜨린 셈이다.  
 
현재 금융사인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 지분을 각각 7.53%, 1.26% 보유하고 있다. 단독 금융사 기준이 배제됨에 따라 이들 지분을 더하면 8.79%로 삼성전자 최대 주주다. 상한선인 5%를 넘는 3.79%는 의결권이 제한되는 셈이다.
 
결국 삼성그룹이 지금과 같은 수준의 의결권을 유지하려면 제한되는 3.79% 만큼의 지분을 이건희 회장 일가나 비금융 계열사가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15일 기준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222조7000억원으로, 무려 8조2399원(3.79%)의 자금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이 최근 삼성전자 지분을 7.2%로 늘린 상황이어서 연기금 주주권 행사마저 현실화할 경우 정부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되는 처지로 내몰리게 된다. 삼성그룹이 촉각을 곤두세우며 미래전략실 내 전담 태스크포스(TF)를 조직, 관련 대책을 강구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 측은 “아직 아무 것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라 뭐라 말하기 곤란하다”면서도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만은 맞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민주화 공약 중 금산 분리가 최대 현안”이라고 덧붙였다.
 
◇공정위 칼 현실화까지..넘어야 할 산 많다
 
물론 공정위 안이 현실화되기까진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박근혜 당선자는 대선 공약에서 금융사(보험 포함)의 비금융 계열사 보유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연간 1%씩, 임기 5년 동안 5% 이내로 묶겠다고 약속했다. 재벌개혁 방안 중 기존 순환출자는 규제하지 않는 대신 금산 분리 강화는 이뤄내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단독 금융사’라는 기준이 추가 명시되면서 실질적 효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 회장 등 특수관계인 지분과 분리됐을 뿐더러 규제가 미치는 곳도 삼성생명 하나로 그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삼성생명은 현행법 내에서도 4.8%의 의결권만을 행사하고 있다. 금산 분리 강화가 구호로만 그칠 뿐 유명무실하다는 지적과 맞닿는 대목이다.
 
순환출자에 이어 금산 분리마저 후퇴할 경우 박 당선자가 짊어질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관통한 시대흐름이 재벌개혁을 핵심으로 하는 경제민주화인 터라 정권 출범 초기부터 비판 여론에 발목을 잡힐 수도 있다.
 
김종인 전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경제민주화실천모임 등 당내 강경파의 시선도 박 당선자가 신경 써야 할 대목이다. 야권은 즉각 대내외 경제위기를 틈타 재벌 봐주기 본색을 드러냈다며 공격할 채비를 갖췄다.
 
◇진퇴양난에 빠진 朴, 재벌개혁 칼 빼드나 
  
결국 결단과 책임에 대한 몫은 오로지 박 당선자가 안고 가야 할 부분이다. 이는 내달 출범할 정권의 초기 명운을 결정할 수도 있다. 선택을 놓고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인수위와 당의 가교 역할을 하는 정무라인 한 관계자는 16일 “어쨌든 (대선) 공약은 지킨다는 것이 기본방침이다. 금산 분리도 그중 하나”라며 “다만 제기된 공정위 안은 검토 가능한 여러 안 중 하나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일부 부정적 기류도 존재한다는 얘기다.
 
당 정책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순환출자 금지를 놓고도 지주사 전환 대신 가공자본을 통해 형성된 의결권 제한이란 대안이 나왔으나 당선자가 거부했다”며 “공약집대로 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중간 금융지주사 설립에 대해서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이한구 원내대표 등 재계 이해를 한결같이 대변해 온 시장 친화론자들이 박 당선자의 신임 속에 득세하는 것도 이 같은 관측을 가능케 한 배경으로 보인다. 지금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매진해야 할 때지, 개혁의 칼을 꺼내들 때가 아니란 게 이들 주장이다.
 
한편 공정위는 전날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차단해 중소기업을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일명 '단가 후려치기'로 불리는 부당 단가 인하 요구에 대해 최대 10배에 이르는 배상금을 물도록 해 대기업의 횡포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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