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기자] 우리나라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 온 기획재정부의 '과천시대'가 약 30년의 역사를 마감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18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기획재정부 1급 이상 간부들과 함께 기획재정부 현판 철거 행사를 가졌다.
이로써 경제 사령탑인 기획재정부 역사로는 27년, 과천청사에 처음 입주한 경제부처인 건설부 기준으로는 30년의 과천시대는 막을 내렸다.
경제정책의 산실인 과천시대 역사는 건설부와 농수산부가 입주한 지난 1983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과천청사 2개 동이 추가 완공되고, 1986년 1월 재무부, 상공부, 동력자원부에 이어 같은 해 2월 경제기획원이 입주를 마치면서 본격적인 과천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시간이 흘러 거시경제를 총괄하고 개발연대를 주도한 기획원과 재무부 일부 기능은 지금의 기획재정부로, 상공부와 동자부는 실물경제 부처인 지식경제부로 합쳐졌다.
과천은 파워엘리트로 즐비한 경제관료들의 '집합소'이기도 했다. 당시 수장을 보면 김만제 경제부총리, 정인용 재무장관, 금진호 상공장관 등이 포진했다.
기획원 간부도 진념 차관보, 이진설 예산실장, 홍재형 대외경제조정실장, 강봉균 기획국장, 김인호 물가정책국장 등 훗날 부총리나 장관에 이름을 올렸던 경제관료들이 많다.
현재의 장관급인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 김석동 금융위원장, 임종룡 총리실장,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 등도 당시엔 20대 중후반이나 30대 초반의 열정 가득한 사무관이었다.
이에 따라 과천은 '경제행정중심지'나 '경제수도'라고 불리기도 했다.
과천시대가 열린 1986년은 우리 경제에도 호황기였다. 환율, 국제금리, 유가에 걸친 '3저 현상' 덕에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기 때문이다.
경제성장률은 1985년 7.5%에서 1986년엔 12.2%로 껑충 뛴 후 1988년까지 3년간 연평균 12% 안팎의 고도성장을 했다. 1986년엔 첫 경상수지 흑자를 냈고 국내총생산(GDP)도 100조원을 넘어섰다.
광화문시대의 마지막 해인 1985년과 작년의 주요 지표 변화를 비교하면 GDP는 85조7000억원에서 1237조1000억원으로 14.4배, 1인당 국민총소득은 205만원에서 2492만원으로 12.2배 늘었다. 수출액은 302억3800만달러에서 5521억3600만달러로 18.3배 증가했다.
또 과천시대는 1990년대 중반의 '반도체 호황' 뿐 아니라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카드 대란, 2008년 금융위기 등의 위기도 함께 겪었다.
박재완 장관은 "한 시대를 떠나보내려니 말 그대로 만감이 교차한다"며 "만감 중에서 굳이 한두 개 고른다면, 고마움과 자부심"이라고 소회했다.
박 장관은 "고마움은 지금의 한국경제를 만들어낸 국민, 기업, 그리고 선배 경제 관료에 대한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과천시대는 헌신과 열정의 시대"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경제에 대한 자부심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했고, 식민통치와 전쟁까지 겪은 나라가 이룩한 경제발전모델"이라며 "과천시대는 곧 개도국들에게 새로운 발전경로와 희망을 제시한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재정부는 오는 20일 오전 9시30분 세종청사 입주식과 오전 10시 세종청사 현판식을 열고 본격적인 '세종청사 시대'를 열게 된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