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대·중소기업간 공정거래 질서 확립을 위한 제도개선이 이어지고 있지만 중소기업의 불만은 여전했다. 29일 공정거래위원회와 중소기업중앙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2012 중소기업공정경쟁정책협의회'에서도 불만은 터져나왔다.
이날 업계별 중소기업을 대표한 참석자들은 회의를 주재한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에게 각종 대기업 횡포사례를 지적하며 건의사항을 쏟아냈다.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하도급법상 원사업자의 금지행위에 대한 징벌적인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 원사업자의 부당·불공정 행위로 피해를 입더라도 거래가 단절될 것을 우려해 신고나 소송 등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부당행위가 상당한 배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수준의 징벌적인 제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도 하도급법상 기술자료 유용에 대해서는 3배까지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로 하도급법 위반이 빈번하고, 수급사업자에게 영향이 큰, 물품 구매강제나 부당한 위탁취소, 하도급대금 감액, 부당결제청구, 기술자료 제공요구, 보복조치 등 원사업자의 금지사항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
하도급대금의 조정협상권을 협동조합에 부여해서 대기업과의 교섭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정보산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지난해 하도급법 개정으로 협동조합이 원사업자에 하도급대금 조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지만, 실제 협상은 약자인 수급사업자가 직접 수행하고 있어 실효성이 없고, 조정시까지 장시간이 소요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공정위와 대형유통업체가 합의한 판매수수료율 인하가 실제 현장에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국시계산업협동조합 관계자는 "공정위가 지난해 9월, 가매출, 부당감액 및 반품 등 불공정 행위를 시정하고, 백화점·대형마트·TV홈쇼핑 등 대형유통점의 판매수수료율 인하에 합의했지만, 실효성이 미흡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수료 인하대상을 중소기업기본법상 중소기업으로 적용하지 않고, 연간 거래액 50억원 미만인 업체에만 적용하면서 입점기업의 절반가량에 대해서만 수수료율 인하가 적용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수수료율 인하가 적용된 중소업체 중 86%가 연간 거래액 10억원 미만의 소규모 및 소액거래 업체여서 혜택의 폭이 좁다.
한국시계산업협동조합은 수수료 인하대상을 중소기업법상 중소기업으로 확대하고, 업종별 판매수수료율 공개, 판매수수료 인하 미이행시 법적 제재를 가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불경기에 허덕이고 있는 건설업계의 건의사항은 처절했다. 원사업자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하도급대금을 아예 못받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원사업자의 회생절차시 하도급 공사대금을 다른 채권보다 최우선 지급하도록 하도급대금 우선변제권을 인정하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실제로 최근 경영난을 겪고 있는 한 종합건설업체의 경우 초저가 하도급 등 불공정행위가 심각한 상황이고, 이 경우 하도급대금을 미분양 아파트로 지급하거나 전자어음으로 지급한 후에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꼼수를 통해 결국 자재나 장비하도급업자와 근로자들이 연쇄적으로 피해를 입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대한전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만 9개사가 이런 방식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1562개 하도급업체가 도산에 직면한 실정이다.
다국적기업의 불공정행위로 피해를 입은 사례도 언급됐다.
한국인터넷PC방협동조합은 다국적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사가 윈도우즈를 가정용과 기업용으로 나눠 판매하면서도 PC방이라는 한국의 특성을 겨냥해 임대와 대여를 위한 렌탈라이센스(RR)라는 별도의 개념을 도입해 과도한 비용을 책정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했다.
MS가 렌탈라이센스를 도입하면서 PC방, 숙박업소 등에 렌탈라이센스를 별도로 판매하지 않고, MS가 원하는 제품만 판매하며 불합리하게 높은 가격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MS는 렌탈라이센스가 포함된 PC방 전용상품을 처음에는 12만원대에 공급했다가 지속적으로 가격을 올려 지금은 20만원이 넘는 가격에 공급하고 있다.
한국인터넷PC방협동조합 관계자는 "다국적기업도 국내 중소기업과 공정거래를 할 수 있도록 사전적인 관리시스템이 필요하다"면서 "정기적으로 정부가 실태조사를 하고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오늘 여러분들의 말씀은 중소기업의 자립능력을 키우는데 밑거름이 되는 유의사항으로 받아들인다"면서 "그런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공정위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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