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주연기자] "금융소비자에 대한 안일한 민원처리와 소비자에게 피해를 떠 넘기며 부당이득을 취한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모른 척하는 금감원의 태도에 정말 화가 치밀어 오른다"
금융감독원의 금융소비자에 대한 민원처리 태도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금융소비자들은 대출사기 피해자에게 "경찰에 신고하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반복하거나 분쟁조정 신청인에게 "답변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금감원의 행정편의주의적 행태를 지적하며 금감원 존재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마저 제기했다.
일부에서는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입히며 부당이득을 취한 금융회사가 밝혀져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금감원의 소극적인 태도가 더욱 문제"라고 지적했다.
◇ 금감원, 대출사기 피해자에 "경찰에 신고하라"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이 모씨는 이달 초 대출중개업체에게서 보증 없이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 준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급전이 필요했던 이씨는 곧바로 대출을 요청했다.
대출중개업체는 2500만원까지 사용할 수 있는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주겠다며 50만원의 수수료와 250만원의 신용보증보험서 발급비를 요구했다.
어렵게 돈을 구해 송금했지만 며칠 뒤 대출중개업체 직원과 연락이 닿지 앟았다. 그제서야 사기 당했음을 눈치 챈 이씨는 금감원 서민금융종합지원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 연결은 쉽지 않았고, 1시간 이상 기다린 끝에 어렵게 연결됐지만 이 씨에게 돌아온 금감원 직원의 대답은 "경찰에 신고하라"는 것.
이씨는 "금감원이라면 뭔가 도움이 될만한 방법을 알려줄 것 같아 연락했는데 내 발품 팔아서 신고하라는 답변만 돌아왔다"며 "금감원이 왜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 분쟁조정 신청하자 "답변 올 때까지 기다려라"
분쟁조정 신청에 대한 늑장 대응도 금융소비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전라북도 익산의 한 보일러 운전업체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25억원(업체 추산)이 넘는 재산상의 손실을 입었다.
이 업체는 같은해 2월 H손해보험사에 기계, 화재, 영업배상 등을 한데 묶은 패키지 보험에 가입해 놓은 터라 곧 복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H보험사는 자체 사고조사 결과 "보험사의 배상책임이 없다"며 업체가 전문 컨설팅그룹에 의뢰해 피해를 입증한 보고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답답해 하던 이 업체 사장은 결국 지난 1월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민원을 접수한 지 열흘이 넘도록 금감원은 보험사와의 진행상황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기다리던 원씨가 금감원에 진행상황을 문의하자 "보험사에 자료를 요청했지만 아직 답변이 없다. 기다려라"는 무성한 답변만 귓전을 때렸다.
◇ "피해 본 소비자 수수방관하는 금감원"
금융소비자들은 금감원의 '묵묵부답'하는 업무 태도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하루하루가 힘든 날들인데 금감원이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다보니 금융소비자들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다.
직장인 김 모씨는 이달 초 한국소비자원에 근저당설정비 환급을 위한 피해구제신청서를 제출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008년 근저당비에 관한 표준약관을 개정하면서 지난해 7월부터 은행이 근저당비를 부담하고 있지만 그 이전에 근저당비를 낸 사람들에게는 소급적용을 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그 동안 은행들이 스스로 부담해야 할 비용을 소비자에게 떠 넘겨 금융소비자들이 피해를 본 것이므로 금융당국이 이에 대한 조치를 취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한국소비자원과 금융소비자연맹이 근저당비 반환 집단소송 지원에 나선 것과는 달리 금감원은 이와 관련해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김씨는 "반환 의지가 없는 은행들도 문제지만 금전적 피해를 본 소비자들을 수수방관하는 금감원이 더 문제"라고 꼬집었다.
◇ '적극적' 금융소비자보호 필요성 높아져
금융소비자들은 이에 따라 금감원이 눈앞에 닥친 금융애로 해소는 물론 앞으로는 근저당설정비 환급 소송에 나선 김씨처럼 '적극적'인 금융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보호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제시민단체 금융소비자연맹은 "금융회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인 금융소비자들은 그동안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피해를 본 사례가 많다"며 "이제라도 금감원은 금융회사의 부당이득으로 손해를 본 금융소비자들의 권리를 지키는 적극적인 소비자보호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소연에 따르면 최근 금융회사로부터 금융소비자가 입은 피해는 근저당설정비 전가를 비롯해 ▲펀드이자 편취 ▲증권사예탁금 편취 ▲생명보험사 이율 담합 ▲농협 등의 대출이자 부당적용 등 다양하다.
펀드이자 편취는 은행이나 증권사들이 고객의 펀드 가입시 가입자금이 예탁되는 기간 동안 발생한 이자를 고객에게 돌려주지 않고 금융회사가 취한 것으로, 최근 이런 문제가 알려지면서 은행들은 자본시장법 이후 기간에 대해서만 이자를 반환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금소연 관계자는 "금감원은 금융회사의 이 같은 태도를 알고 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으며 기본적인 실태파악도 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금융회사에 대한 공정위의 담합 적발로 금융소비자들의 피해가 드러났음에도 금감원이 나몰라라 하는 경우도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16개 생보사의 공시이율 담합을 적발하고 과징금을 부과했는데, 금소연은 이에 따른 금융소비자 피해액이 약 17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며 소비자들의 소송을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금감원은 "적발은 공정위, 판단은 사법부의 몫"이라며 외면하고 있다.
조남희 금소연 사무총장은 "생보사 이율 담합건과 함께 농협의 대출이율 부당 적용 등에 대한 민원도 상당수 접수되고 있다"며 "하지만 금감원은 이에 대한 적극적인 조사나 소비자 피해규모 확인 등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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