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설치된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4년간 주요 정책들이 난맥상을 겪으면서 한계를 노출해 왔다. 특정 매체 지원을 위한 종편 정책이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았고 통신 분야에서도 주요 정책이 국민적 냉소를 사거나 아예 실현되지 못하는 등 '무능' 논란이 계속됐다. 게다가 최근엔 최시중 위원장의 측근 정용욱씨의 대형 비리의혹 사건으로 치명타를 맞고 휘청대고 있다. 기대속에 출발했지만 결국 침몰로 끝날 운명에 놓인 방통위의 위기 원인과 미래를 전망한다. [편집자주]
“사실상 조선ㆍ중앙ㆍ동아일보와 매경 그리고 KT, 이렇게 5개사만 바라보고 움직였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의 지난 4년 정책을 돌아본 업계 평가는 냉정하다.
특히 방송계의 경우 방통위가 오로지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만 챙기다 보니 현안은 미루고 갈등은 키웠다는 지적이 많다.
이 와중에 방통위 고위 공직자를 중심으로 향응과 금품 수수 등 잇단 비리 의혹이 제기되면서 내부 단속조차 제대로 못했다는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다.
◇재송신 갈등 조정 실패에 시청자 피해만
실시간 송출되는 지상파 프로그램의 재송신 대가를 놓고 벌인 KBSㆍMBCㆍSBS 등 3사와 종합유선방송사업자(케이블SO) 사이의 갈등이, 지난해 11월 28일 지상파 HD방송 중단까지 치달았지만 사태 전후로 방통위가 보인 모습은 무기력했다.
방통위는 당시 재송신 제도 개선을 약속하며 직접 중재에 나서기도 했지만 결국 조정에 실패했고 770만을 헤아리는 가구는 6일 동안 불편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방통위는 협상테이블에 참석을 요구한 지상파방송사 사장단으로부터 ‘연락 두절’ 당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양쪽이 5년 가까이 갈등을 벌인 만큼 학계와 시민단체는 방통위가 의지를 갖고 진작 보완책을 마련해 시청권이 침해 되는 사태를 미연에 막았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방통위가 공언했던 재송신 제도 개선안은 지금껏 차일피일 발표가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보다 7개월 앞서 SBSㆍMBC가 KT스카이라이프와 재송신 요금 인상 문제로 다툼 끝에 자사 HD방송을 길게는 한 달 넘게 끊은 일이 있지만 방통위는 사태가 수습될 때까지 손을 쓰지 못했다.
뒤늦게 양쪽에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늑장대처’에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SBS가 월드컵ㆍ올림픽 경기 중계권을 2016년 분량까지 독점 확보하면서 지상파방송사끼리 다퉜던 2010년 중계권 분쟁도 방통위가 좀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었다는 지적이 많다.
업계는 방통위가 중재력을 발휘해 소송전까지 비화됐던 3사의 볼썽사나운 다툼을 막고 그 참에 보편적 시청권을 확립하는 역할을 했어야 한다는 비판을 내놨다.
◇종편 출범, ‘정책’은 없고 ‘정치’만 있었다
방통위는 사업자간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시장’과 ‘자율’에 맡긴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방통위가 시장 상황을 무시한 채 종편에 몰아준 특혜를 상기하면 이 같은 입장은 일관되지 않은 '변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방통위는 업계 자율 협상 관행을 무시하고 종편이 황금채널(지상파방송에 인접한 10번 전후 채널번호)을 배정 받을 수 있도록 케이블SO에 사실상 압력을 가했다.
위원장이 직접 광고주를 대면하는 자리에서 광고비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언급도 했다.
전문의약품 광고 허용, 방송통신발전기금 납부 유예도 조만간 종편을 대상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가 신규 사업자를 특정해 이만한 혜택을 준 일은 유사이래 없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사실 종편 사업자를 한꺼번에 4개나 선정한 일 자체가 시장 상황을 무시한 것으로, ‘정책’ 보다 ‘정치’에 가까운 처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학계와 업계는 국내 광고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신규 방송채널의 적정선을 많아야 1~2개 정도로 예상했지만, 방통위는 현 정부와 이념색이 비슷한 거대신문 4개사에 방송권을 나눠줬다.
강상현 연세대 교수(언론정보학)는 “종편은 그 자체로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방통위가 편의에 따라 왔다 갔다 하니 정책에 진정성이 안 보이고, 업계도 정책당국에 신뢰를 보내지 않고, 결국 방통위의 역할도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향응에 금품수수,.업무평가 꼴찌에 도덕 해이까지
방통위의 실제 공과는 초라한 성적표가 웅변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계열사 인텔리전스유닛(EIU)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방통위 출범 전 3위를 기록했던 한국 IT 경쟁력 지수는 2008년 8위, 2009년 16위, 2011년 19위로 급전직하의 추락세를 나타냈다.
방통위는 또 지난해 정부기관 업무평가 결과 38개 중앙행정기관 중 교육과학기술부, 국민권익위원회와 함께 핵심업무 부문에서 ‘미흡’ 등급을 받아 꼴찌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총리실은 방통위에 낙제점을 준 것과 관련, 재송신 분쟁을 해결하지 못하고 디지털 전환 실적이 미진한 점 등을 이유로 꼽았다.
방통위가 종편 출범과 함께 실적으로 추켜세우는 IPTV의 경우, KT가 위성방송과 결합한 상품(OTS)을 출시해 '400만 가입자'를 견인했을 뿐 볼만한 콘텐츠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무능에 더해 방통위 고위공직자를 중심으로 잇단 비리의혹이 불거지며 도덕성마저 치명타를 입었다는 점이다.
지난 2009년 티브로드의 큐릭스 인수ㆍ합병을 앞두고 신아무개 과장이 티브로드로부터 수백만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받은 것으로 알려져 곤혹을 치른 데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황철증 전 통신정책국장이 수천만 원대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이에 더해 최근 정용욱 전 정책보좌역의 수억대 금품 수수 의혹이 제기되면서 급기야 최시중 위원장의 비리 연루설까지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은 정 전 보좌역의 통화 내역을 입수, 정씨가 최 위원장에게 수사정황 등을 보고했을 가능성을 놓고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통위는 잇단 비리 의혹 제기에 연일 해명자료를 내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지만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최시중 위원장은 지난 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공식 사과하면서도 “(정 전 보좌역을 대상으로 제기되는 각종 의혹은) 제가 알기로 진실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