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동현기자] "발주처(국방부)에서 낙찰자를 알기 힘들도록 설계·운영 등의 비가격부분 평가항목을 정해놨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건설사들이 거의 차이가 나지 않게 입찰가격을 담합한 후 떨어진 회사에 돈을 주기로 했기 때문이죠."
김순종 공정거래위원회 카르텔조사국장이 최근 국방부 군 관사시설 공사관련 건설사 입찰 담합에 대해 설명하며 꺼낸 말이다.
공정위에선 건설사들의 공공입찰 담합은 계속돼 왔던 일이지만 이번 담합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진화된' 형태의 담합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존 입찰 담합은 주로 낙찰자를 정해 놓고 담합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 건의 경우 발주처에서 담합을 막기위해 공사입찰 평가항목에서 가격부분을 40%만 반영하고 건설계획 등 비가격부분을 60%의 가중치를 뒀다.
그러나 두 건설사는 고시된 사업비 646억원에 거의 근접한 가격으로 입찰하도록 해 누가 낙찰되더라도 높은 가격으로 공사를 수주할 수 있도록 하면서 낙찰자에게는 탈락자에게 공사설계비 10억원을 보상하도록 담합함으로써 발주처의 담합 저지 노력을 무력화 시킨 것이다.
김 국장은 "턴키공사의 경우 기술력 90%, 가격 10%의 비중으로 평가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도 낙찰자를 주로 정해둔 상태로 담합이 이뤄져 왔다"며 "건설사들의 담합이 점점 교묘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혀를 내둘렀다.
최근 공공입찰에서 담합했다 적발되는 사례는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5월에는
대우건설(047040)과
벽산건설(002530)이 대구도시공사가 발주한 공동주택 공사 입찰에서 담합해 대우건설이 낙찰되도록 했다가 공정위에 과징금을 물었다. 공정위는 대우건설을 검찰에 고발했고 현재 법인이 불구속 기소된 상태다.
6월에도 대명건설과 대주건설이 국방부가 발주한 공군원주관사와 병영시설 입찰에서 투찰 금액을 합의했다가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을 받기도 했다.
건설업계에선 입찰 담합이 고착화된 폐습이라 쉽게 뿌리 뽑히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건설업계에서 입찰 담합은 일종의 '동양식 문화'라는 말로 묵인돼 왔고 경제범죄라는 인식이 생긴지 오래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지금도 건설사들이 지하로 숨어들어 담합하는 사례가 계속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설사 관계자는 "재건축과 같은 민간발주의 경우에도 건설사들은 한편으로는 경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물밑 접촉을 통해 묵시적으로 분양가 조건 등의 하한선을 만들어 두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정부에서도 공공입찰 담합이 물가상승과 국가예산 낭비를 초래한다고 보고 공공분야 입찰 제도를 계속 강화하고 있다.
지난 9일 기획재정부와 공정위, 조달청 등은 관계부처 연석회의를 열어 담합 손해배상 예정제의 도입을 논의했다. 공공입찰을 할때 가격 담합 등 부당행위가 드러나면 전체 사업대금의 10%를 위약금처럼 배상하게 하자는 것.
담합 행위가 드러나 발주처가 해당 업체에 손해배상 소송을 내더라도 손해액을 둘러싸고 지루한 법정공방이 이어지는 것을 막아보자는 취지다.
또 공정위는 최근 입찰담합업체의 입찰참가 자격제한 기준을 '과거 3년이내 벌점 5점'에서 '과거 5년이내 벌점 5점 초과'로 변경하는 조치도 취했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사들은 그들만의 친밀한 관계를 이어가며 어떤 제도와 방법으로 담합을 막아도 제도의 허점을 공략해 `그들만의 낙찰`을 이어가고 있다"며 "진화하는 건설사를 정부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비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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