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 개막식이 끝나면 사람들은 두 파로 나뉜다. 지루하고 긴 3시간여의 개막식이 끝나고 가을밤의 삭풍을 견디며 개막작을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는 것보다 사람을 더 만나고 싶어 하며(영화제 와서 영화를 보는 거 아니라며, 그러는 거 아니라며, 그러면 못 쓴다며) 술집으로 직행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다들 벌벌 떨며(이상하게도 추석 전후에 열리는 부산영화제 개막 날의 밤은 유난히 춥다) 빨리 뜨끈한 어묵 국물에 소맥을 한잔 '때려 넣고' 싶어 한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중반에 접어든 지난 11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부산영화제는 올해로 31회째인데 20회 정도 될 때까지 영화인들이 주로 모이는 곳은, 지금은 없어진 그랜드 호텔 뒤의 오뎅 바 '미나미'였다. 일본식이었다. 가게 중앙에 큰 오뎅 테이블이 있고 '다찌' 주변으로 사람들이 둘러앉아 술을 마시는 곳이었다. 여기 가면 스타란 스타들은 다 볼 수 있었는데 그들도 오랜만에 사람들 시선 신경 쓰지 않고 마음 편하게 마실 곳이 필요했었고 그런 장소로 정해진 곳이 미나미였기 때문이다. 강수연도, 안성기도, 다 여기를 좋아했다. 많은 스타가 그 둘처럼 이제 유명을 달리했고 미나미는 없어지지 않았지만 이제 그곳을 가는 영화인들은 거의 없다. 그랜드 호텔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호텔은 2019년에 철거됐다. 영화제의 중심은 파라다이스 호텔과 해운대 시장 주변의 신축 호텔들로 완전히 옮겨 왔다. 이제 사람들이 가는 곳은 해운대 시장의 붕장어 집들이거나 해변 가까이에 있는 횟집들이다.
원래 부산영화제가 유명해진 것은 해양도시의 남루함 때문이었다. 현재의 해운대는 해변 전체에 데크가 깔려 매우 모던하고 편리하게 바뀌었지만 30여 년 전 영화제가 시작될 때는 그 해변을 따라 포장마차가 줄지어 성업했던 곳이다. 해외에서 온 영화인들은 집단 포장마차 풍경을 신기해했었다. 해안의 야시장이었고 실로 이국적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국 영화인들이 술 마시는 모습에 경악할 만큼 놀라곤 했다. 한국 사람들은 (지금은 꼭 그렇지는 않지만) 1차로 술을 끝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2차, 3차, 4차를 옮겨 다니며 마시고 심지어 해가 뜨는 아침까지 부어라 마셔라 했다. 해운대 해변에서 내가 술을 마시는지 술이 나를 마시는지 혹은 술이 술을 마시는지 분간이 안 되는 흐릿한 정신상태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는 것은 평생의 기억 속에 각인되는 일이었다. 해방감을 느꼈고 허락된 일탈을 경험하는 일 같은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한국 영화인들이 약을 했겠는가, (70년대 히피들처럼) 다소 난잡한 관계들을 추구했겠는가. 일상의 억압을 떨쳐 버리는 유일한 방법은 그저 술을 마시는 일이었다.
영화제 둘째날 안성기 추모의 밤이 열렸다.(사진=오동진)
올해 영화제에서 공로상을 탄 김동호 전 이사장이 포장마차를 순회하며 1차, 2차, 5차, 6차를 이끌던 장본인이었다. 김동호 옹의 그때 특징은 술을 끊었거나 원래 술을 못 마시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술을 마시도록 하는 것이었다. 평소 선글라스 너머의 눈빛을 짐작할 수도 없었던 중국 왕가위 감독이 '버텀 업'을 외치며 만취가 되는 모습은 부산영화제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기인으로 알려진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 감독 겸 배우는(그의 <하나비> <기쿠지로의 여름> 같은 영화는 이제 기억 속에서 슬슬 사라지고 있다) 술을 먹다 먹다 앉은 자리에서 쓰러지곤 했다. 그는 과거의 오토바이 사고로(그때도 음주 운전이었다) 안면이 마비된 상태였는데 그런 그가 마치 아수라 백작 같은 표정으로 술을 부어 마시던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 같으면 다케시가 김동호 옹의 몸쪽으로 고목처럼 쓰러지는 장면은 SNS에서 '짤'로, 쇼츠 필름으로 전파돼 조회 수가 백만을 넘겼을 것이다. 기타노 다케시는 현재 79세로 여전히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는 언제부턴가 부산에 오지 않는다. 김동호 옹은 올해로 89세이고 그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술을 멕여 놓고서는 정작 자신은 술을 끊었다. 그가 요즘 술자리에서 마시는 것은 녹차이다.
해변의 포장마차들이 도시 현대화 사업으로 모두 철거된 후에도 파라다이스 호텔 뒤쪽 교차로에는 으슥한 밤이 되면 포장마차 두 개가 열리곤 했다. 여기의 별미는 해장라면이었다. 라면에 오징어를 넣고 끓인 것인데 국물 맛이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미 3차쯤 달린 후에 부글거리는 속을 달래겠다는 요량으로 ‘여기서 라면 한 그릇?’ 하며 들렀다가 결국 다시 소주병을 까고 맥주에 들이붓기 시작하게 되는 곳이다. 술꾼들은 세상이 가진 모든 핑계를 줄줄 외우는 인물들인데 자신들이 그렇게나 술을 마시는 이유를 밤새 떠들어도 모자란 사람들이다. 술을 마시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술이 좋고 사람이 좋아서이기 때문이고 아직 그 술의 양을 버틸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해장라면 집에 어느 밤 '노친네' 둘이 들이닥친다. 고 유현목 감독이었고 한국의 1세대 평론가였던 고 변인식 평론가였다. 유현목 감독은 그때 80을 넘긴 때였다. 그의 영화 <오발탄>(1961)은 그야말로 전설이었다. 극 중 최무룡이 은행을 터는 시퀀스는 알프레도 히치콕의 서스펜스 영화를 보는 느낌일 만큼 현대적이었다. 변인식 평론가는 한국영화평론가협회를 창설한 인물이다. 둘은 형 동생 하면서 지냈다. 그 둘은 앉자마자 말했다. "주모 여기 소주 두 병!" 그들이 얘기한 주모, 포장마차 여주인이 말했다. "안주는요?" 유현목 감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안주는 무슨 안주!" 두 노친네는 소주를 각각 한 병씩 맥주 글라스에 콸콸 따르더니 원샷을 했다. 곧이어 감독이 다시 말했다. "주모 여기 소주 두 병 더." 아마도 수전증이었음이 분명했던 감독이 손을 심하게 흔들며 술을 주욱 들이켜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괜스레, 소주는 저렇게 마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게 했다. 포장마차 구석에서 숨죽이며 술을 마시고 있던 한 젊은 기자는 ‘주모’를 불러 꽁치 안주와 멍게 해산물을 주문해 사이드로 슬쩍 넣어 드렸다. 감독이 당장 일갈했다. "왜 시키지도 않은 안주를 가져 와?!" 그리고는 그리도 맛나게 먹었다. 그들도 다 세상을 달리 한 지 오래다.
해물라면 포장마차와 그 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그 주변에는 ‘극동국밥’집이 생겼는데 여기를 조심해야 할 것이 수육 7.0이라 쓰인 메뉴판을 보고 오 싸네 하며 시켰다가는 큰코다치기 때문이다. 7천원이 아니라 7만원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요즘 7천원짜리 수육이 어디 있겠는가. 유명 일간지의 한 기자는 술이 잔뜩 취해서는 수육이 7천원인 줄 알고 호기롭게 자신이 계산한다고 했고, 다음 날 아침 영수증을 확인한 후 울상이 됐다. 사람들에게 그는 말했다. "이제 올라가기 전까지 굶어야 할 듯요." 그날 그의 주머니에서는 후배 기자들에게 산 술값 영수증이 6장이나 발견됐다. 부산에 와서 술을 마실 때는 중간중간 정신을 차려야 하는 이유다.
영화계가 어렵고, 흉흉한 일이 많을 때, 요즘처럼 <암살자(들)> 관련, 이상한 핍박과 억압의 시스템이 작동될 때, 영화인들은 부산 같은 영화제에 더 모이곤 한다. 다들 이렇게 말한다. “가야지. 한번 모여야지.” 영화인들은 한국의 정치인들과 달리 한 번 단합했다 하면 평소 이견이 있었을지언정 두말할 것 없이 한목소리를 내는 걸로 유명하다. 과거 스크린쿼터 이슈 때도 그랬으며 가깝게는 이선균의 부당한 죽음 때도 그랬다. 필요하면 머리도 깎는다.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지언정 세상의 변화 과정에서 한 축을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영화를 하는 이유라고 믿는다. 영화는 늘 자본주의적이며 흥행을 갈망하는 영화인들이 결코 '좌파 빨갱이'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화인들이 바라는 것은 상식이며 많은 이들에게 고루 위안을 주는 일이다. 그들은 역사를 왜곡할 생각도 없고, 그럴 수도 없으며, 그저 영화에 맞게 역사를 윤색할 뿐이다. 이 윤색의 작법에는 윤리학이 작동한다. 해당 영화가 윤색의 윤리학을 넘어섰느냐 아니냐는 그 누구도 아닌 관객들이 가장 먼저 판단한다. 그런 '스피릿'이 이상한 정치 행위로 변질될 때 영화인들은 울분을 느낀다. 그 울분을 토로하고 나누는 장소가 영화제다. 영화제만 한 곳이 없다. 이번 부산영화제도 마찬가지였다. <암살자(들)>의 감독 허진호나 배우들은 올해 부산영화제에 오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위로주를 사주고 싶어 했다. 많이들 아쉬워했다.
영화 <암살자(들)> 논란과 관련, 영화인들이 부산에서 집회를 열었다.(사진=오동진)
부산영화제의 아침은 늘 느지막이 시작한다. 전날의 숙취를 잔뜩 품은 채 늦잠들을 잔다. 호텔 조식 쿠폰은 무용지물이다. 체크인 시 쿠폰을 받을 때는 ‘내 반드시 여기서 아침을 먹으리라’ 결심하지만 그걸 실천하는 영화인들은 거의 없다. 대체로 해운대 끝에 있는 복국집들을 간다. 할매복국은 연간 매출의 상당액을 부산영화제 때 뽑는다. 어제 못 만났던 사람들, 얘기를 많이 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대체로 아침(아점)을 먹는 복국집에서 만나서 회포를 푼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영화인들도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가 계산해주는 때가 많다. 그러니 이참에 복국이나 복 사시미로 낮술을 시작할 때도 많다. 거의 소주 각이다. 잘못하면 온종일 만취 상태로 지내게 된다. 그렇다고 영화인들이 영화제 내내 흥청망청 지낸다는 얘기는 아니다. 각자의 일정이 있고(포럼, GV, 각종 행사 등등, 무엇보다 마켓의 비즈니스 미팅) 하나하나 다 챙겨 낸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육신을 혹사한 상태지만 대체로 올바르게 일들을 수행해 낸다. 영화제를 지내고 각자의 일터로 돌아가서 몸살을 앓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부산영화제의 비상임 이사인 고영경 박사(파이낸셜 전공, 동남아 전문)의 인생 모토는 ‘인생은 체력전’이다. 부산영화제에 와서 그녀가 말했다. ‘영화제는 정신력’. 고영경은 고릴라브루잉에 앉아 10도짜리 IPA ‘올드스쿨’을 시켰으나 단종됐다는 말에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다음 날 아침 부산대에서의 특강이 있었음에도 비교적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였으며 특유의 시원시원한 말투로 한국이 돌아가는 현황에 대해 언변을 토해냈다. 그녀는 사회주의가 실패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다는 환상 때문이며 자본주의가 실패하는 것 역시 인간의 욕망은 제어할 수 없다는 오판 때문이라고 했다. 고영경은 다음 날 아침 7시 어김없이 일어나 특강을 하고 돈을 벌어 올라갔다. 영화제는 그런 곳이다.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지는 것을 깨닫고 다시 한번 배우고 돌아가는 곳이다. 중요한 건 언제 또 이렇게 술을 마셔 보겠느냐는 점에 흔쾌하게 동의하게 되는 곳이라는 것이다. 인생은 마치 아차 하고 지나치는 고속도로 램프 같은 것이다. 휙휙 지나간다. 그런 인생을 너무 엄격하고 재미없게 지내면 안 된다. 마실 수 있을 때 마시는 것이 좋다.
이제 너무 노쇠해진 임권택 감독에게 귓속말로 누군가 말했다. “저 사실 감독님의 <하류인생> 좋아합니다.” <하류인생>은 임권택 영화 중 비평 면에서나 흥행 면에서나 쫄딱 망한 작품이다. 멍한 표정으로 줄곧 앉아 있던 임권택 옹의 만면에 미소가 번졌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너가 인생의 하류를 알아? 잘 즐겨.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즐기고 놀아. 인생 별거 없어.’ 임권택 감독의 미소가 생각날 것이다. 영화제의 마력은 그런 해탈의 미소를 발견하는 일 같은 것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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