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산은 어떻게 세계를 뚫었나]③전쟁 특수냐 굳히기냐…4대 방산강국 도약 ‘시험대’
전쟁 장기화에 유럽 구매국들 한숨 돌려
생산기반 복원 속도…가격·납기 우위 약화
캐나다·루마니아·폴란드서 잇단 수주 고배
“차세대 무기·공급망 등 질적 경쟁력 강화”
2026-08-27 14:42:41 2026-08-27 15:23:59
[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독일과 프랑스 등 기존 방산 강국들은 이미 생산 기반 복원에 들어갔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2~3년 정도로 본다. 몇 년 뒤 ‘그때가 골든타임이었는데 놓쳤다’고 해서는 안 된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
 
“K방산을 끌어올렸던 동력은 결국 ‘전쟁 특수’였다. 유럽이 다시 빗장을 걸어 잠그면서 재래식무기가 파고들 틈도 줄어들고 있다.” (송방원 건국대학교 방위사업학과 겸임교수)
 
 
 
현대로템 K2전차 전술기동. (사진=현대로템)
 
돌아온 유럽…‘진짜 경쟁’의 시간
 
전쟁 초기의 다급함은 한풀 꺾였습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4년이 흐르면서 유럽 각국도 무기 수요에서 한결 여유를 찾았습니다. 전쟁 초기에는 비어가는 무기고를 채우기 위해 쫓기듯 무기를 사들였지만, 이후 한국 등을 통해 필요한 물량을 상당 부분 확보하면서 구매국 입장에서도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제는 가격과 현지생산, 산업 협력, 동맹 관계까지 꼼꼼히 비교할 여유가 생겼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방산 계약은 정치적 상황이나 내부 사정 등 여러 변수로 지연되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 일부 추가 계약이 계속 밀리고 있다”며 “이미 상당한 물량을 인도받아 전쟁 초기보다 시간적 여유가 생겼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K방산을 호황기로 이끌었던 유럽의 ‘빈틈’이 본격적으로 닫히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이 재무장과 방산 생산 기반 복원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3월 유럽연합(EU)은 ‘Readiness 2030’을 통해 2030년까지 최대 8000억유로의 추가 방위 투자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와 독일 등 주요 방산국에서도 기존 생산시설을 군수용으로 전환하거나 신규 방산 공장을 증설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의 생산능력이 회복된 이후입니다. 유럽산 무기의 대량생산이 본격화하면 K방산의 강점인 빠른 납기의 희소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생산량 증가로 규모의 경제까지 갖추면 가격 격차 역시 좁혀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 교수는 “유럽은 과거에 운영하던 생산시설과 설비를 다시 활용할 수 있어 복구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며 “샴페인을 터뜨리며 안이하게 있을 때가 아니다. 2~3년 뒤에는 지금의 경쟁 우위가 상당 부분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지난 7월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핼리팩스의 HMC 조선소에서 차세대 잠수함 프로젝트(CPSP)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수주 현장에선 우려가 이미 현실로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최근 대형 해외 방산 사업에서 한국 업체가 잇따라 고배를 마셨습니다. 지난 7월 캐나다는 최대 12척 규모 차기 잠수함 사업(CPSP)의 우선협상대상자로 한화오션 대신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스(TKMS)를 선정했습니다.
 
지난 5월 루마니아는 차세대 장갑차를 포함한 대규모 방산 사업을 독일 라인메탈에 맡겼고, 지난해 11월 폴란드 차기 잠수함 ‘오르카’ 사업에서도 한국은 스웨덴에 고배를 마셨습니다. 과거 K방산이 가격과 성능, 빠른 납기를 앞세워 시장을 뚫었다면 이제는 이 같은 강점만으로 수주를 장담하기 어려워진 셈입니다. 서혁 EPSS글로벌 연구소장(한국방위산업진흥회 전 센터장)은 “NATO는 경제공동체가 아니라 안보공동체”라며 “앞으로는 안보공동체끼리 무기를 사고파는 경향이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수출 공식 대수술의 골든타임”
 
전문가들은 앞으로 2~3년을 K방산의 향후 수출 경쟁력을 가를 ‘골든타임’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기간 기존의 양적 성장 모델을 질적 성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방산 4대 강국으로 본격 도약하려면 가격과 납기를 앞세운 양적 성장에서 벗어나 무기체계 고도화와 글로벌 공급망 진입 등 질적 경쟁력으로 수출 공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K2 전차와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등 기존 주력 수출 플랫폼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인공지능(AI)·드론·무인체계 등 차세대 무기 개발을 앞당길 필요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최 교수는 “현행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무기체계 개발과 스마트화·무인화에 방점을 둬야 한다”며 “예를 들어 2040년을 목표로 추진 중인 차세대 K3 전차 등 현재 계획된 사업도 5~10년씩 앞당겨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중소·중견기업의 글로벌 공급망 참여 확대도 과제로 꼽힙니다. 현지생산과 공동개발, 합작법인(JV), 유지·보수·정비(MRO) 등 장기적인 산업 협력으로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현지생산이 확대될수록 국내 생산 물량이 줄어들 수 있는 만큼 완성체 업체뿐 아니라 핵심 부품과 엔진, MRO를 담당하는 국내 중소·중견기업까지 해외 합작법인과 글로벌 공급망에 함께 진입시켜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이를 위한 규제 개선도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방산 기술 보호의 필요성은 있지만 정부가 보유·관리하는 기술을 지나치게 제한할 경우 중소·중견기업의 기술 개발과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한 중견 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보유한 기술 가운데 중소·중견기업에 공개되지 않는 것들이 일부 있다”며 “보호가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 아니라면 기업에 개방해 자체 기술과 결합할 수 있도록 해야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과 수출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정부 전략도 중요합니다. 수출금융이나 정상외교를 동원하는 수준을 넘어 장기적인 안보·산업 협력으로 지원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NATO와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협의체) 등 주요 안보공동체와 평소부터 관계를 쌓아 한국을 단순한 무기 판매국이 아닌 안보와 산업을 함께하는 파트너로 인식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 소장은 “사업이 나온 뒤 찾아가 우리가 무엇을 해주겠다고 제시하는 방식으로는 이제 한계가 있다”며 “평소부터 안보공동체와 협력 관계를 구축해 ‘같은 식구’라는 인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차세대 무기 개발을 위한 국내 수요를 정부가 선제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옵니다. 송 교수는 “새로운 무기를 수출하려면 군이 먼저 AI나 드론 같은 분야의 소요를 제기하고 기업이 개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기업은 만들고 싶어도 자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기업 전략보다 정부 전략이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끝>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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