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주하 기자] 정부가 국내 증시로 개인투자자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절세 계좌를 활용한 '머니무브'에 나서고 있습니다. 해외투자금을 되돌리는 국내시장 복귀계좌(RIA)에 이어 장기자금을 국내 시장에 유치하기 위한 생산적금융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추진하고 있지만 기존 ISA 혜택 축소 논란에 대통령이 제동을 걸면서 제도 재설계가 불가피해졌습니다. 시장에서는 기존 투자자의 혜택을 지키면서 국내 투자에 충분한 유인을 제공하는 동시에 국내 증시 자체의 투자 매력을 높여야 지속적인 자금 유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개인투자자의 자금을 국내 자본시장으로 유도하기 위한 세제 지원책을 잇따라 추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제도가 올해 도입된 RIA입니다. RIA는 해외주식을 매도한 뒤 국내 주식이나 국내 주식형 펀드 등에 재투자하고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해외주식 양도소득세 부담을 낮춰주는 제도입니다. 해외주식에 투자한 이른바 '서학개미'의 자금을 국내 시장으로 되돌리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정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개인의 장기 투자자금을 국내 증시에 유치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 3일 발표한 세제개편안에 생산적금융 ISA 신설 방안을 담은 것입니다. ISA는 예·적금과 펀드, 상장지수펀드(ETF), 국내 주식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하나의 계좌에서 운용하면서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절세계좌입니다. 계좌 안에서 발생한 이익과 손실을 합산한 순이익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손익통산'이 적용됩니다. 일반형은 순이익 200만원까지 비과세하고 초과분에는 9.9%의 세율로 분리 과세합니다.
생산적금융 ISA는 이 같은 절세 기능을 국내 투자와 보다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국내 상장주식과 국내 주식형 펀드, 국민성장펀드,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등을 투자 대상으로 하고 세제 혜택을 강화하는 방식입니다. 반면 국내 증시에 상장된 해외지수 ETF 등은 투자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기존 ISA가 다양한 금융상품을 담을 수 있는 범용 자산관리 계좌라면 생산적금융 ISA는 국내 자본시장 투자에 초점을 맞춘 목적형 계좌인 셈입니다. RIA가 이미 해외주식으로 이동한 자금의 복귀를 겨냥했다면 생산적금융 ISA는 앞으로 형성될 개인의 장기투자 수요를 국내 자산으로 끌어오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다만 생산적금융 ISA와 함께 제시된 기존 ISA 개편 방안에는 제동이 걸렸습니다. 정부는 기존 ISA의 계약기간을 최대 5년으로 제한하고 사용하지 않은 연간 납입 한도를 다음 해로 넘길 수 있는 이월 제도를 폐지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현재 ISA는 연간 2000만원까지 납입할 수 있으며 사용하지 않은 금액은 다음 해로 이월할 수 있습니다.
기존 ISA의 장기 절세 기능과 투자 편의성이 줄어든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투자자 반발도 커졌습니다. 특히 국내 상장 해외지수 ETF 등에 장기간 투자해 온 가입자들을 중심으로 선택권이 줄어든다는 불만이 제기됐습니다. 결국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제동을 걸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일 참모진 회의에서 ISA 개편안을 둘러싼 투자자 반발 등을 보고받은 뒤 "정확하게 준비도 하지 않고 왜 그렇게 한 것이냐"며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도 "정책이 국민이 처한 상황을 따라가야지, 거꾸로 국민의 삶을 기성 제도에 억지로 꿰맞추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생산적금융 ISA를 통한 국내 투자 활성화라는 취지를 살리면서 기존 가입자의 혜택과 선택권도 보장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습니다. 시장에서는 기존 ISA의 혜택을 축소해 자금 이동을 유도하기보다 생산적금융 ISA 자체의 경쟁력을 높여 투자자의 자발적인 선택을 이끌어내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자본시장 연구원은 "세제 혜택으로 자금의 방향을 일시적으로 돌릴 수는 있지만 장기간 국내 증시에 머물게 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며 "결국 투자자가 세제 혜택이 없어도 국내 시장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업가치와 주주환원, 투자자 보호 등 시장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사진=뉴시스)
김주하 기자 juhah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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