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금융 대전환)③해외는 채무자를 제도권에 붙잡는다…상담·조정·지역금융의 힘
영국·아일랜드, 채무상담에서 예산관리·채권자 협상까지 연결
독일·프랑스, 조기 예산상담과 지역금융망으로 금융 배제 막아
한국 서민금융, 대출 공급 넘어 생활 회복·재기로 전환해야
2026-06-24 15:20:13 2026-06-24 17:07:51
[뉴스토마토 이지우 기자] 해외 주요국의 서민금융 정책은 단순한 대출 공급보다 상담과 예산관리, 채무조정, 법적 보호, 지역 금융을 한 흐름으로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빚 문제를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소득 감소와 실직, 질병, 폐업, 주거비 부담이 겹친 생활 위기로 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도 서민금융진흥원·신용회복위원회 통합론을 계기로, 기관 통합 여부를 넘어 상담 이후 필요한 지원이 끊기지 않는 기능 연계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24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영국, 아일랜드, 독일, 프랑스 등 해외 주요국은 금융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방식에서 공통적으로 '상담 이후의 연결'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채무자의 추가 대출, 상환 부담 조정, 복지 지원 및 법적 보호 필요성을 한 번에 진단하고 다음 절차로 이어주는 방식입니다. 이는 서민금융의 역할이 개별 금융상품 공급을 넘어 채무자의 생활 회복과 재기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영국·아일랜드, 추심 압박 낮추고 예산관리까지 원스톱 지원
 
가장 눈에 띄는 사례는 영국의 '브리딩 스페이스(Breathing Space)'입니다. 영국·웨일스는 채무자가 전문 채무상담을 받는 동안 최대 60일간 채권자의 추심과 법적 집행, 이자·수수료 부과를 멈추도록 하고 있습니다. 채무자가 빚 문제를 외면하거나 추심 압박에 밀려 더 나쁜 선택을 하기 전에, 상담을 통해 상환 계획이나 채무 해결 방안을 찾을 시간을 주는 구조입니다. 연체가 발생하면 독촉과 수수료 부담이 빠르게 쌓이는데, 이 압박을 일정 기간 멈춰 채무자가 자신의 소득과 지출, 부채 규모를 정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영국은 상담으로 들어가는 공적 입구도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머니헬퍼(MoneyHelper)'는 정부 지원 기반의 무료·중립 금융 안내 서비스로, 빚 문제를 겪는 이용자가 무료 채무상담기관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상담이 필요한 사람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하는 길잡이 역할입니다. 여기에 브리딩 스페이스가 결합되면서 정보 제공, 상담 연결, 추심 중단, 채무 해결 절차가 한 흐름 안에서 작동합니다. 또한 저소득·저자산 채무자를 위한 채무구제명령(DRO)은 장기간 빚을 갚기 어려운 채무자에게 별도 구제절차를 제공합니다.
 
아일랜드의 금융상담·예산관리서비스(MABS)는 서민금융 원스톱 상담의 대표 사례로 꼽을 수 있습니다. MABS는 채무 문제와 예산 관리를 함께 지원하는 무료·비밀보장 상담 서비스입니다. 이용자의 소득과 지출을 점검하고, 부채 문제를 정리하며, 필요한 경우 채권자와의 협상도 지원합니다. 단순히 빚이 얼마인지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용자가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이나 권리를 놓치고 있지 않은지도 함께 살핍니다.
 
MABS의 강점은 채무를 생활 문제와 분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채무자는 돈을 못 갚는 사람이기 전에 소득이 줄었거나, 의료비·주거비 부담이 커졌거나, 실직과 가족 돌봄 문제를 겪고 있는 생활인입니다. MABS는 이 점을 전제로 예산을 다시 짜고, 채권자와 협상하며, 필요한 지원을 찾도록 돕습니다. 한국의 서민금융 상담도 대출 가능 여부만 판단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소득·지출, 복지 권리, 채무 상황을 함께 진단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독일, 지역금융 인프라와 공공 채무상담으로 재기 지원
 
독일 사례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공공 지역 저축은행인 '슈파르카세(Sparkassen)'를 중심으로 한 지역 기반 포용금융 구조이고, 다른 하나는 별도의 지역 기반 채무 상담 체계 '슐드너베라퉁(Schuldnerberatung)'입니다. 슈파르카세는 채무조정 기관은 아니지만, 지역 주민과 중소기업, 소상공인을 장기적으로 상대하는 금융기관입니다. 지역 안에서 예금을 받고 지역에 자금을 공급하는 구조를 통해 금융 접근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지역 주민과 기업의 거래 이력, 사업 흐름, 지역 경제 상황을 장기간 축적하면서 관계금융을 형성하는 점이 특징입니다.
 
다만 슈파르카세는 빚을 직접 조정해 주는 장치라기보다, 금융 취약계층과 중소기업이 제도권 금융에서 완전히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지역 금융 인프라에 가깝습니다. 중앙기관 중심의 서민금융이 놓치기 쉬운 지역 기반 관계금융의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공공 채무상담소를 뜻하는 슐드너베라퉁은 별도의 재기 지원 장치입니다. 채무자가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담소인 지역 소비자 상담센터는 재정 상담뿐 아니라 심리사회적·법률적 상담까지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과다 채무는 주거, 가족관계, 정신건강, 고용 문제와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담도 복합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독일의 사례는 채무 상담이 단순히 채권자에게 얼마를 갚을지 계산하는 절차가 아니라, 채무자가 다시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도록 돕는 사회적 지원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프랑스의 예산상담센터(PCB)는 과다채무 예방형 상담 창구입니다. PCB는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무료로 예산관리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국가 인증 기관의 상담 서비스입니다. 가계 예산을 점검하고, 지출 구조를 다시 짜며, 과다 채무 상태로 악화되기 전에 필요한 절차를 안내합니다. 이미 과다 채무 상태에 놓인 경우에는 채무조정 신청 절차와 서류 준비 등을 지원하는 역할도 합니다. 채무자가 완전히 무너진 뒤 법적 절차로 넘기는 것이 아니라, 예산관리 단계에서 조기에 개입하는 방식입니다.
 
한국 서민금융, '상담 이후의 원스톱 재기 경로'가 성패 가른다
 
이들 사례의 공통점은 '기능적 원스톱'입니다. 채무자를 단순히 돈을 갚지 못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상담 단계에서 소득·지출·복지 권리·법적 절차·상환 가능성을 함께 진단합니다. 또 추심 압박을 낮추거나 채권자 협상을 지원해 채무자가 회복할 시간을 확보합니다. 이는 한국의 서민금융 전달 체계도 단순 대출 공급을 넘어, 상담 이후 필요한 지원이 끊기지 않는 재기 경로로 설계돼야 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신복위 관계자는 "채무 문제는 취약계층이 겪는 생활 위기의 원인이자 결과로 나타나는 복합적 문제"라며 "해외 주요국 사례도 채무 상담이 단순히 빚을 조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복지·고용·주거·법률 지원 등과 연계될 때 실질적인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김은경 신용회복위원장 겸 서민금융진흥원장은 "서민금융 전달 체계 논의의 핵심은 기관 중심의 개편이 아니라 수요자 중심의 혁신이어야 한다"며 "금융 취약계층이 한 번의 상담으로 자신의 상황에 맞는 지원을 종합적으로 안내받고, 필요한 서비스를 끊김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이용자 중심의 원스톱 서비스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신용회복위원회는 연체 기간에 따라 신속채무조정, 사전채무조정, 개인워크아웃 등 채무조정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미지=신용회복위원회)
 
이지우 기자 jw@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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