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양균 기자] 보건복지부가 109 자살 예방 상담 인력을 확충한다며 전국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 예산 중 불용액의 우선 사용을 추진했다가 논란이 일자 이를 철회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복지부는 “자살 예방 상담 인력 예산 확보가 시급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취재를 종합하면 정신건강 사업 증진 예산 가운데 매년 10억원가량의 불용액이 발생합니다. 복지부는 자살 예방 상담 인력 충원의 시급성을 고려해 이 돈을 우선 사용하겠다고 밝혔고, 우려가 제기되자 결국 결정을 철회하게 된 겁니다. 복지부 자살예방정책과 관계자는 “안 쓰인 예산을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냈지만, 오해가 있었다”며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 입장에서는 사업 중간에 예산을 조정한다는 점이 납득이 안 됐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당초 알려진 하반기 예산 6.9% 일괄 삭감 등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복지부의 설명입니다.
이는 복지부가 지난달 31일 ‘자살예방상담전화 109’의 응대율을 높인다며 현재 103명에서 200명까지 즉시 충원하겠다는 발표와 관련이 있습니다. 복지부는 이재명 대통령이 같은 달 6일 국무회의에서 국내 높은 자살률을 언급하며 “대한민국의 현재 위상을 보건대 이렇게 자살자가 많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국민이 통화 연결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방안을 동원해 신속히 보완하라고 지시하자, 한 달도 안 돼 해당 조치를 내놓았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6일 국무회의에서 국민들의 자살 상담 강화를 지시하자, 같은 달 31일 보건복지부는 109 상담 인력 확충을 발표했고, 이를 위한 예산 확보를 이유로 이달 각 시군구 정신건강복지센터 불용 예산 사용을 추진했다 우려가 일자 이를 철회했다. 사진은 지난달 6일 국무회의 당시 모습. 이재명 대통령 뒤로 정은경 복지부 장관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대통령실)
정은경 장관은 상담 인력 충원에 대해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개편을 통해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단 한 통의 전화도 놓치지 않는 상담 체계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지만, 그 방편으로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 예산을 삭감키로 한 것 아니냐는 불만이 제기된 겁니다. 이를 두고 정신의학계에서는 “중앙의 일회성 상담 전화를 강화한다고 지역의 연속 상담 시스템을 약화시킨 탁상행정”이라는 빈축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국내 자살 예방 상담 번호 중 ‘109’는 연속 상담을 제공하지 않는 일회성 전화 상담이고, ‘1577-0199’는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전화를 받아 연속 상담이 이뤄지는 방식입니다. 보기에 따라 일회성 상담 전화를 강화한다고 지역 연속 상담 시스템을 약화시키는 예산 조정 결정이 이뤄진 것으로 비춰졌던 겁니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부에서 자살 예방 사업 예산이 늘고 있고 인력도 증원되고 있어 지역의 정신건강복지센터 전달 체계도 시너지가 날 수 있다”며 “그간 정신건강 복지 인력이 자살 예방 업무도 겸임해 온 만큼 함께 예산, 인력, 기능 확충을 고려하고 있으며 지역의 정신건강 복지 체계가 약화되리란 것은 오해”라고 설명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최준호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한양대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학회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입장에서는 일회성의 상담 제공보다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지속적인 사례 관리가 더 효과적이라고 본다”며 “복지부의 한정된 예산 운영 고충도 이해되지만, 효율성을 더 고려해야 했다”고 조언했습니다.
대통령 의지, 주무부처도 따라야
통계청의 2024년 사망 원인 통계에 따르면 그해 자살 사망자 수는 1만4872명으로 전년보다 894명(6.4%) 증가했으며, 하루 평균 자살 사망자 수는 40.6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자살 사망률(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은 29.1명으로 전년 대비 6.6%(1.8명) 늘어났습니다. 남성 자살자 수가 여성보다 2.5배 많았고, 남성 자살률은 41.8명, 여성 자살률은 16.6명으로 각각 전년 대비 남성 3.5명, 여성은 0.2명 늘어났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2025 국가자살예방전략'을 통해 자살률을 2029년 19.4명, 2034년에는 17.0명 이하로 낮춘다는 목표입니다. 올해 자살 사망자도 1000명을 감축한다는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지난해 자살 예방 예산 562억원은 올해 26%(708억원) 증액되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이후 국정 철학과 정책 우선순위가 예산과 제도 전반에 본격적으로 반영되는 첫해입니다. 자살 예방 정책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앞선 사례처럼 주무부처의 이른바 ‘갈지자 행보’가 나왔을 때 파장도 이에 비례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김성완 전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국가 정책은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자살 예방이 국가 과제 우선순위인 만큼 그에 상응하는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살 예방을 위해서는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대한 정부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복지부 관계자는 “자살 예방의 핵심축은 정신건강으로, 어떻게 함께 보강할지 전략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며 “자살 예방을 강조한다고 정신건강 사례 관리를 등한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양균 기자 kyu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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