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멸콩’이 반복되는 이유
2026-06-04 06:00:00 2026-06-04 06:00:00
‘멸콩’ 정용진씨(신세계그룹 회장)가 지난달 26일 ‘5·18 탱크데이 사건’에 대해 사과했지만 상황 인식은 여전히 본질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서로를 이해하자”는 말은 뭔가. 5·18에 탱크라는 말을 할 수도 있다는 것 아닌가. 그간의 반복적 도발과 현재의 상황 인식을 보니 그는 공동체 해악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정씨뿐이 아니다. 5·18광주항쟁 모욕자나 세월호 참사 능멸자들이 조롱과 악행을 일삼고 도발을 지속하는 건 ‘보호받아야 할 양심이나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스타벅스의 ‘5·18 탱크데이’ 사태가 터지자 국민의힘 의원 김민전씨는 “탱크는 커피 같은 액체를 담는 그릇”이라며 정씨와 스타벅스를 두둔하고 나섰다. 김씨는 미국 유학까지 다녀왔다는데 그릇 탱크와 무기 탱크도 구분하지 못하는가. 공기(空氣)와 공기(公器)도 구분 못하거나 안 하는 사람이, 백골단의 국회 기자회견을 주선해 준 사람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직을 수행해도 좋은가.
 
정씨가 일련의 도발에서 얻으려는 게 꼭 커피 판매나 돈뿐일까. 끊임없이 다양하게 도발함으로써 일베 무리의 대표인 양 인식되고픈 건 아닐까.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걸 보면 그의 가치관이나 상식-사고 체계에 반공동체적 소지가 다분하다고 생각된다. 어느 개인의 사적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차원에서 조치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를 법의 영역에서 살펴봐야 한다. 
 
왜 정씨와 그가 대주주인 기업의 패륜적 행위 때문에 우리 공동체가 반복적으로 상처받고 분노해야 하나. ‘행위에 책임이 따른다’는 건 사회화가 시작되는 의무교육 기관에서 가장 먼저 가르치는 사항이다. 법과 제재가 필요한 이유를 다 아는데 왜 관대함이 지나쳐 저런 일이 반복되도록 방조했는가.
 
부랴부랴 요란 떠는 정부 부처의 구매 조사나 불매 지시 같은 ‘전두환식 냄비 대응’ 말고, 정씨를 포함한 행위자들을 의법 조치함으로써 패륜 상습화의 소지를 없애는 게 타당하다. 
 
정부 부처의 일제 조사 같은 대응은 뉴스 제목 하나 뽑기에는 그럴싸해 보일지 모르나 그 즉흥성 때문에 또다시 일과성으로 흐지부지되기 십상이다. 그간 이런 대응을 숱하게 봐왔기에 ‘의례적 행정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익숙하게 봐와서 역치가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태여서 근본 해결책이 못 된다. 스타벅스 불매 여부는 시민 개개인의 판단에 맡기고, 정부는 법 위반을 따져 집행하면 된다. 2014년, 단식 중이던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서 치킨을 먹어대며 조롱하던 태극기 부대들 사진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사자명예훼손이나 모욕죄가 왜 있는가. 어물쩡 넘겨왔기에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법무장관이 무슨 용단이나 내리는 것처럼 대검에 “스타벅스 기프티콘 구매 내역 조사 후 보고하라”고 지시하거나, 행안부 장관이 “공무원들은 스타벅스 이용을 자제하라”고 하달함으로써, 경종을 울렸으니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처벌해야 할 때 제대로 처벌하지 않고 호들갑성 일과 조치로 대응해 왔기에 멸콩에서 자꾸 커졌다. 5·18이 그냥 우연히 골라지는 숫자인가. “마케팅 담당자의 과잉 의욕이 빚은 실수”라며 말뿐인 사과로 유야무야 지나가면 도발은 또 자행될 것이다. 
 
전국민중행동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스타벅스 불매운동 전국화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정용진 회장과 부적절한 마케팅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독일의 ‘나치 처벌 시효 철폐’를 부러워하기만 했을 뿐, 우리는 실질적으로 뭘 해왔나. 이번 탱크데이 사건은 표현의 자유 영역이 아니라 그 이전의 문제, 즉 인간성과 공동체의 근본에 관한 사안이다. 인륜·패륜은 봉건시대 케케묵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어느 시대에나 관통되는 기본 정체성의 문제고, 문명사회가 수호해야 할 기본 가치다. 정씨와 정씨 소유 기업은 그걸 건드리고 도발한 것이다. 반복적으로. 그래서 반공동체적 해악 분자라고 문두에 썼다. 
 
입으로만 되뇌어 왔기에 실효는 전무했던 ‘일벌백계’ 말고 일벌일계, 현행법에 정해져 있는 만큼만이라도 철저하게 집행해 공동체의 의지를 분명히 세워야 한다. 괴물은 저절로 자라지도, 저절로 없어지지도 않는다. 몸의 상처나 감염을 소독하지 않으면 염증이 악화된다는 건 일상생활에서 잘 알고 지키면서, 사회 병리에는 왜 그 당연한 걸 지키지 않나. 내 몸이 아니기에? 실수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게 문제다. 사람다워진다는 게 뭔가.
 
이강윤 정치평론가,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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