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석 기자] "매일 이용하는 삼성역 지하에 철근이 누락된 공간이 있다니 이용하기 무서워요. 쿵쿵거리는 공사 소리가 날 때마다 무섭습니다."
"서울시가 고의로 숨긴 것이라면 서울 시민의 안전을 선거와 맞바꾼 겁니다."
지난 18일 서울 시민들이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삼성역 2호선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지난 18일 밤, 서울 강남구 삼성역 2호선 승강장에서 퇴근길 지하철을 기다리던 안재윤(54)씨는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삼성동에 있는 회사에서 일하는 덕분에 삼성역은 눈감고도 지하철을 탈 수 있을 만큼 익숙한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삼성역 지하에서 진행 중인 수도권급행철도(GTX)-A 공사 중 철근이 빠졌다는 언론 보도를 접한 뒤로 이곳은 더 이상 안심하고 이용할 수 없는 공간이 된 겁니다.
발디딜 틈 없는 삼성역…철근 누락 소식에 "사고 나지 않길"
이날 삼성역에는 늦은 시간임에도 지하철을 이용하는 수백 명의 시민들로 안해 발을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5분이 되지 않는 배차 간격마다 수많은 시민들이 지하철역을 오갔고, 서로의 어깨를 부딪치는 일은 일상다반사였습니다.
문제는 현재 삼성역 지하에서 진행 중인 GTX-A 공사 과정에서 철근이 누락되는 심각한 부실이 확인됐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2월부터 삼성역 일대 지하에서는 경기도 파주시 운정중앙역과 서울역까지, 서울 수서역과 경기도 화성시 동탄역까지로 분리된 채 운영 중인 GTX-A 선로를 연결하고, 복합환승센터가 들어서는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지난 15일 국토교통부는 복합환승센터 지하 5층 GTX 승강장부에서 주철근 2열을 설치해야 하는 기둥 80본 가운데 50본에서 주철근이 1열만 설치된 사실을 파악했습니다. 구조적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기둥들이 매일 수십만 명의 무게를 떠받치고 있었던 셈입니다.
안씨는 "공사하는 과정에서 하중을 견뎌야 할 기둥에 철근이 없었다는 게 말이 되느냐. 안전불감증 때문에 '괜찮겠지'하며 현대건설과 서울시가 방치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며 "매일 수 많은 사람들이 삼성역을 이용한다. 그저 큰 사고가 발생하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했습니다.
실제 삼성역 내부는 시민들이 안심할 만한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지하에서 진행 중인 GTX-A 공사로 역사가 울릴 정도로 큰 공사 소음이 발생하고 있었으며, 역사 천장에는 각종 파이프와 전선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쿵쿵거리는 공사 소음이 발생할 때마다 몇몇 시민들은 주위를 둘러보며 안전한지 살피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박동현(28)씨는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승강장에 서 있으면 몸이 흔들릴 정도로 큰 공사 소음이 들린다"며 "코엑스 등을 방문할 때마다 삼성역을 이용하지만 안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철근 누락이 발생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삼성역 인근 지하 수도권급행철도(GTX)-A 공사 현장. (사진=뉴시스)
지선 때문에 숨겼나…전문가 "대형 인명피해 이어질 수도"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가 철근 누락 사실을 일부러 숨기려고 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김은수(35)씨는 "6월에 지방선거가 있다 보니까 오세훈 서울시장이 표심을 잃지 않기 위해 철근 누락 사실을 숨긴 채 시민들에겐 알리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며 "지난해 11월 현대건설이 철근 누락 사실을 서울시에 알렸다고 하던데, 만약 서울시가 보고를 받고도 고의로 숨긴 것이라면 서울 시민의 안전을 선거와 맞바꾼 것"이라고 했습니다.
몇몇 시민은 이른바 '순살 아파트'라고 불린 붕괴 사고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지난 2023년 4월 인천시 서구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지하주차장 1층과 2층 지붕 층이 붕괴된 사고입니다. 당시 사고는 철근을 빼먹은 콘크리트가 하중을 견디지 못해 발생했습니다.
강성범(60)씨는 "철근이 빠진 콘크리트는 건물 하중을 견디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미 순살 아파트 사건으로 알려졌다. 지하에서 하중을 버티는 기둥에 철근이 누락됐다면 불안해서 어떻게 삼성역을 이용하나"라며 "공사를 진행한 현대건설도 문제이지만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서울시의 책임도 무겁다고 본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울 열린데이터광장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삼성역 지하철 승차 인원은 6만5571명이고 하차 인원은 6만5276명입니다. 총 13만847명에 달합니다. 서울 종로구 인구(13만6716명)에 버금가는 숫자입니다. 철근 누락으로 인한 붕괴 등 사고가 발생한다면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위험이 큰 겁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철근은 콘크리트가 버티지 못하는 하중을 견디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철근이 누락된 콘크리트 기둥은 쉽게 처지거나 붕괴될 수 있다"며 "만약 철근이 빠진 사실이 완공 이후 알려졌다면 자칫 연쇄 붕괴로 인한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이라도 누락된 사실이 알려져서 다행이며 안전 조치가 신속히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이번 철근 누락 사건에 대해 곧 조사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18일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사실관계 등을 토대로 입건 전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보고를 받았다"며 "이 사안에 대해서는 면밀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국토부는 서울시가 지난해 11월 현대건설로부터 최초로 보고 받은 점을 파악하고 서울시 등에 대한 감사를 착수했으며, 보강에 나설 방침입니다.
박진석 기자 ptba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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