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반도체 전쟁)③“K반도체, 위기와 기회의 교차점…핵심은 ‘연속성’”
최기영 반도체공학회장의 ‘쓴소리’
‘슈퍼사이클’ K반도체, 메모리 편중
대만 TSMC처럼 상생 구조 갖추고
수요 키워 선순환 구조를 마련해야
2026-05-12 14:10:33 2026-05-12 16:56:01
[뉴스토마토 안정훈·이명신 기자] “지금의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은 우리나라에게 좋은 기회이지만, 이를 못 살리면 위기로 되돌아올 것이다. K반도체는 위기와 기회의 교차점에 서 있다.”
 
지난 4일 반도체공학회 집무실에서 만난 최기영 반도체공학회장은 K반도체의 현주소에 대해 이같이 밝혔습니다. 인공지능(AI)발 슈퍼사이클로 K반도체가 메모리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록을 세우고 있지만, 시스템 반도체를 비롯해 전반적인 생태계는 뒤처져 있다는 진단입니다. 특히 중국이 중장기 플랜을 세워 자국 반도체 사업을 일으키고, 대만이 TSMC 주도로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한 것처럼 K반도체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선 ‘연속성’이 핵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최기영 반도체공학회장이 지난 4일 반도체공학회 집무실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이명신 기자)
 
설계 역량 중요한데…점유율 3%
 
K반도체에 대한 최 회장의 평가는 냉정했습니다. 그는 “메모리는 전체 반도체 시장의 3분의 1 정도이고, 미국 마이크론을 제외한다면 메모리 시장의 약 70%를 장악한 수준”이라며 “시스템 반도체의 경우, 전 세계 시장에서 많이 올라가야 3% 정도다. 우리나라 시스템 반도체가 지금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지금 같은 (메모리 중심) 구조가 고착화될까 걱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특히 AI 발전으로 차세대 반도체는 메모리와 프로세스가 융합되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으며, 설계와 소프트웨어(SW) 역량도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시스템 반도체 역량을 시급하게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최 회장은 “향후 반도체는 시스템 반도체와 메모리가 융합되는 형태로 발전될 것”이라며 “이때 시스템 반도체 설계 능력이 중요한데, 지금이 생태계를 키워나갈 굉장히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습니다.
 
최 회장은 초기 시장인 신경망처리장치(NPU)에 승부처가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그는 “NPU는 새로 시작하는 분야로, 전 세계적인 출발선이 그렇게 차이나지 않는다”면서 “우리나라에게도 충분히 기회가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중, 10년 정책도 척척…‘연속성’ 본받아야
 
문재인정부 시절 2019년부터 2021년까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지낸 최 회장은, 첫 현장 방문 일정으로 지능형 반도체 기업 텔레칩스를 방문할 정도로 AI 반도체 육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당시 리벨리온, 퓨리오사 등 AI 반도체 기업들에게 정부 지원을 결정해 유니콘 기업들을 성장시키기도 했습니다. 현재 리벨리온은 국민성장펀드의 1호 투자자로 낙점돼 6400억원 규모의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를 마무리했으며, SK텔레콤·Arm과 AI 인프라 협력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현 정부 역시 정부 주도의 AI 산업 육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K엔비디아 육성 프로젝트’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최 회장은 해당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중국 시장과 비교하며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시스템 반도체는 메모리와 달리 정말 오래 기다려야 한다”면서 “설계 영역은 처음에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고, 장기간의 투자·지원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구글의 텐서처리장치(TPU)가 업계의 주목을 받는 7세대 제품을 제작하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것처럼, 장기간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그는 중국의 ‘연속성’과 ‘추진력’을 본받아 K반도체 생태계를 육성해야 한다고 바라봤습니다. 최 회장은 “중국이 정말 잘하는 건 10개년 단위의 장기 정책을 끈질기게 한다는 것”이라며 “벤처 기업들의 스케일업이 빠르게 일어나고, 성장세가 보이니 인력들이 ‘신나서’ 열심히 하는 선순환의 구조를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팔 비틀어서라도 생태계 키워야”
 
과거부터 K반도체의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는 지적은 이어졌지만, 메모리 중심으로 발전한 K반도체는 소위 ‘허리급’ 기업이 부족한 현실입니다. 실제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 시가총액을 비교했을 때, 국내 기업 중 기업가치가 100억달러에서 1000억달러 사이의 허리급 기업은 장비업체인 한미반도체뿐입니다. 중국 9개, 대만 5개와 비교하면 차이가 큽니다.
 
특히 시스템 반도체는 단일 기업에 대한 투자보다는, 파운드리(위탁생산)·소프트웨어·수요 기업 등이 함께 참여하는 협력 구조가 필수입니다. 이에 최 회장은 상생 구조의 사례로 대만 반도체 생태계를 꼽았습니다. “대만 미디어텍의 경우 시스템 반도체에서 세계 10위 안에 드는 회사”이라며 “벤처에서 허리급 기업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는데, TSMC가 키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대만 반도체 산업 시가총액 2위인 미디어텍은 보급형 스마트폰용 반도체와 사물인터넷(IoT) 제품 분야에서 시장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AI 시대의 K-반도체 비전과 육성전략 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특히 반도체 생태계 조성을 위한 ‘속도전’을 펼치기 위해선 정부가 수요처를 마련해주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습니다. “과격한 표현이지만, 팔을 비틀어서라도 국산 칩을 넣게 해야 한다”는 게 최 회장의 지적입니다.
 
중국이 자국 수요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것처럼, 정부 주도의 AI 반도체 육성 전략이 필수라는 겁니다. “캠브리콘의 칩은 기술적으로는 오래됐지만, 정부가 칩을 쓰게 해주니 중국 내에서 엔비디아를 대체한다는 얘기도 나온다”면서 “우리나라도 정부가 노력하고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꼬집었습니다.
 
이는 현장의 목소리이기도 합니다.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는 지난 1월 ‘경제성장전략 국민보고회’에서 “엔비디아 도입에 쓰이는 예산의 10분의 1만이라도 국산 AI 반도체의 대규모 실증과 실증 인프라 구축에 투입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건의하기도 했습니다.
 
시스템반도체의 경우 설계 인력의 중요성이 높은 점을 고려하면, 최 회장은 생태계 구축을 서둘러야 반도체 인재들의 해외 유출을 막고 산업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 수 있다고 바라봤습니다. 보상을 높일 뿐만 아니라 인프라와 교육 환경을 갖추면, 인재 유출을 막고 외국에서 인재 유치도 가능하다는 전망입니다. 
 
아울러 반도체 인력이 자신의 커리어와 연구 역량을 중요시하는 만큼, 인력 간 네트워킹을 활성화할 수 있는 학회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최 회장은 “산학연, 대기업과 중소기업, 젊은 연구자와 대가들의 소통의 장을 마련해 주는 게 학회의 역할”이라며 “국가 GDP 성장률의 반 이상을 기여하는 반도체 산업의 역량 확보를 위해 반도체공학회도 네트워킹과 연구 역량을 도모하는 역할을 강화해 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안정훈·이명신 기자 si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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