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수정 기자] 정부가 경제 재도약을 위해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조성에 나선 가운데, 금융회사가 기술 기반 중소기업 투자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금산분리 규제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습니다. 현행 금융규제가 민간 금융자본의 전략산업 투자 확대의 걸림돌로 여겨지는 만큼, AI·반도체·바이오 등 국가 전략산업 중심의 단계적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한국신용카드학회가 8일 오후 서울 은행회관에서 '소비자 후생 제고 및 생산적 금융 활성화를 위한 금융규제 완화' 세미나를 개최했다. (사진=신수정 기자)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8일 한국신용카드학회가 개최한 '소비자 후생 제고 및 생산적 금융 활성화를 위한 금융규제 완화' 세미나에서 금융회사가 기술기업 투자에 적극 나서기 위해선 현행 금산분리 체계의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금산분리는 1982년 은행법 개정을 계기로 도입된 제도로, 산업자본의 금융 지배와 재벌의 사금고화를 막기 위해 비금융회사의 은행 지분 보유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현재 비금융회사의 은행 지분 보유 한도는 원칙적으로 4%이며, 금융위원회 승인을 받더라도 의결권 행사에는 제약이 따릅니다.
김 교수는 이러한 금융규제가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장기 투자 확대 국면에서 구조적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제 재도약’ 정책의 핵심 축으로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조성을 추진 중인 만큼, 금융권의 투자 기능 확대를 검토해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국민성장펀드는 향후 5년간 AI·반도체·바이오·이차전지·미래차·방산 등 첨단 전략산업에 지분투자와 초저리대출 등을 공급하는 정책으로, 민간 금융권 자금을 함께 활용하는 구조입니다.
그는 "국내 중소벤처기업 지원 역시 직접 투자보다 정책대출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2016년 투자용 기술금융 평가가 도입됐지만 제도적 제약과 리스크 부담으로 실적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 전략산업에 한정한 단계적 규제 완화 방안도 제시했습니다.
한국신용카드학회가 개최한 '소비자 후생 제고 및 생산적 금융 활성화를 위한 금융규제 완화' 세미나의 마지막 순서인 종합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신수정 기자)
현재 기업형 벤처캐피탈(CVC)은 지주회사 완전자회사 형태로만 설립 가능하고, 외부자금 조달 비중과 해외 투자 한도 등 각종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금융회사의 비금융회사 출자 역시 15~20% 수준으로 제한되며 일정 지분율을 넘을 경우 금융당국 승인이 필요합니다.
김 교수는 "전략산업에 대해선 외부자금 조달 한도와 해외투자 제한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간 공동 위탁운용(Co-GP)을 허용하면 산업 전문성과 금융권 자금 운용 역량을 결합할 수 있다"며 첨단전략산업특별법과 벤처투자촉진법 개정 필요성도 제기했습니다. 또 비상장주식과 벤처투자에 최대 400% 수준의 위험가중치가 적용되는 현행 건전성 규제 역시 투자 확대를 제약하고 있다며 "AI·반도체 등 국가 전략산업 투자에는 위험가중치 우대 규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글로벌 카드사들은 이미 단순 결제사업자를 넘어 기술 투자자 역할까지 확대하고 있습니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AMEX), 비자(VISA), 마스터카드(MASTERCARD) 등은 2010년대 중반 이후 벤처캐피탈(VC) 조직을 앞세워 지급결제는 물론 보안·인증·AI·데이터 분석·핀테크 분야까지 공격적으로 투자 범위를 넓혀왔습니다.
아멕스는 2011년 1억달러 규모 투자금을 기반으로 Amex Ventures를 설립한 이후 지급결제뿐 아니라 여행·외식·B2B(기업간 거래) 결제·고객 로열티 서비스 등 그룹 핵심사업과 연계된 영역으로 투자 범위를 확대했습니다. 핵심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을 인수·합병(M&A)하거나 관련 기업에 단계별(Series B~E) 투자를 단행하며 고객 경험 확대와 신규 서비스 발굴에 집중했습니다.
투자 회수 구조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도 AI 기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기업인 Capillary Technologies에 투자한 뒤 일부 지분 매각을 통해 단계적 회수에 나섰고, 피투자 기업의 IPO와 전략적 매각 등을 병행했습니다. 실제 AMEX 지난해 영업수익은 804억6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8.4% 증가했고, 순이익도 108억3000만달러로 7.0% 늘었습니다.
비자는 카드 발급보다 결제 네트워크 사업에 집중하는 구조인 만큼 결제 인프라와 금융기술 강화에 초점을 맞춘 투자 행보를 보였습니다. VISA는 자체 투자와 VISA Ventures, VISA Fast Track 프로그램을 통해 AI 기반 이상거래 탐지, 클라우드 기반 코어뱅킹, 카드 발급 플랫폼 등 핵심 기술 기업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디지털 자산·AI·임베디드 금융 기업에도 투자하며 사업 영역을 확대했습니다. 오는 2027년까지 아프리카 디지털 경제에 10억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습니다.
마스터카드는 지급결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보안·데이터 분석·AI 기술 투자를 확대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AI 기반 사이버 보안 기업과 핀테크 기업 인수에 적극 나섰고, 모바일 결제와 글로벌 송금 플랫폼, 중소기업 금융지원 서비스 등 지급결제와 연계된 분야 중심으로 투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4년부터 운영 중인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Start Path를 통해서는 AI와 데이터 분석, 지속가능 에너지 분야 스타트업까지 발굴 범위를 넓혔습니다.
이들 공통점은 단순 재무 투자보다 본업과 연결된 전략적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급결제와 보안, 데이터, AI 등 기존 금융서비스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장기 투자를 이어가며 미래 수익원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기업공개(IPO), 지분 매각, 전략적 매각 등 다양한 방식의 회수 체계를 구축해 투자 선순환 구조도 마련했습니다.
반면 국내 금융권은 여전히 대출 중심 사업구조와 엄격한 금산분리 규제에 묶여 있어 글로벌 금융사들처럼 전략산업 투자 확대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김 교수는 "글로벌 금융사들은 단순 결제 중개에 머물지 않고 AI·보안·핀테크·데이터 분야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통해 미래 성장동력을 선점하고 있다"며 "국내 금융권도 대출 중심 투자 구조를 벗어나 기술기업과 전략산업에 대한 장기 투자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신용카드학회가 8일 오후 은행회관에서 춘계세미나를 개최했다. 사진은 발제를 나선 학계 등 전문가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 (사진=여신금융협회)
신수정 기자 newcrystal@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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