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마Ⅱ(은퇴한 사람들의 해외 마을 만들기)는 단순한 은퇴자 주거 모델이 아닌, 초고령 사회와 기후위기 시대에 국가와 개인이 함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새로운 국가 전략입니다. 해외 거점에 형성될 은퇴자 커뮤니티는 항공·관광·헬스케어·부동산 산업을 잇는 신수요를 만들고, 동시에 한국 기업과 스타트업의 교두보가 됩니다. 거점도시는 결국 한국형 개발협력(ODA), 글로벌 공급망 전략, 문화 교류의 실제 인프라가 됩니다. 은사마Ⅱ의 1차 거점은 라오스 비엔티안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두 도시 거주자들의 기고를 통해 이 전략의 향후 전개 방향을 살펴봅니다. 본 기획에서는 한국 기업의 극동 러시아 진출 교두보이자 항만·물류·관광·에너지 산업이 교차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펼쳐지는 한러·유라시아 교류의 현장을 함께 들여다봅니다. (편집자 주)
기고문의 마지막 글을 정리하며, 그동안 제가 써온 글들을 다시 읽어봤습니다.
한국과 러시아 연해주는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곳에서 오랜 시간 함께해 왔습니다. 연해주는 기후만 놓고 보면 한국의 강원도와 닮아 있고, 서로의 바다와 자연환경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유사한 환경 속에서 생산되는 식자재 역시 자연스럽게 비슷한 특성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두 지역은 전쟁과 가난, 정치·경제적 위기라는 공통된 경험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와 정부의 체제 변화, 한·러 경협 사업, 한국의 국제통화기금(IMF) 위기와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사태 등 위기의 순간마다 양국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를 극복해왔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례를 통해 두 나라가 위기를 기회로 바꿔온 과정을 돌아봤습니다.
제가 써온 글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단어는 '세계지도'와 '길'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인 블라디보스토크를 단순한 극동의 작은 항구도시로 볼 것이 아니라, 한국과 함께 유라시아 대륙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자 연결 지점으로 바라보자는 취지였습니다.
또한 최근 들어 아쉽게도 희미해지고 있는 한국 정부의 '9개의 다리(나인 브릿지)' 정책을 되짚으며, 양국 간 연결고리를 어떻게 다시 살릴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봤습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섬 해안 전경. 북태평양을 따라 형성된 절벽과 해안선이 특징이다. (사진=위키미디어 커먼스)
길은 사람들이 오갈 때 의미가 생깁니다. 사람들이 자주 다니다 보면 원래 길이 아니었던 곳도 자연스럽게 길이 됩니다. 제가 여러 번 언급한 루스키섬에는 절벽을 따라 이어진 아름다운 트래킹 코스가 있습니다. 북태평양 바닷가 절벽길에 위치한 이 길은 사람들이 오가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오솔길입니다. 지금은 연해주 시민들이 즐기는 대표적인 산책 코스가 되었고, 해외 관광객들도 찾는 명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국 TV 프로그램에도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습니다.
반대로, 필요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길도 있습니다. 아직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북극항로'가 그런 길이고, 우주로 향하는 하늘 위의 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길이 곧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길이 끊기거나 멀어지면 서로 간의 소통은 불가능해집니다. 소통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데서 시작되며, 상대에 대한 우호적 관심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이러한 소통이 없다면 협력, 상호 발전, 지역 안정, 나아가 세계 평화와 같은 긍정적 가치도 우리 삶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점에서 감히 한국 정부에 제안드립니다. 우선 '하늘길'부터 다시 열어주시기 바랍니다. 불과 2시간이면 가깝게 닿을 수 있었던 인천과 블라디보스토크 직항 노선이 4년째 중단된 상태입니다. 현재도 페리를 통한 왕래와 화물선 운항은 이어지고 있고, 중국 등 제3국을 경유한 무비자 이동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가 직항 노선 재개를 망설일 이유가 있는지를 다시 한번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 금융기관에도 요청드립니다. 양국 간 대금 결제 시스템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응해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도 한국산 제품은 러시아에서 활발히 판매되고 있고, 러시아 역시 농수산물과 액화천연가스(LNG) 등 자원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많은 러시아 국민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등 양국 간 교류 또한 이어지고 있어 통화 결제와 송금 업무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거래는 불법적인 사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금융 서비스 분야에서는 다소 경직된 대응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과 투자기관에도 말씀드립니다. 지금의 러시아는 35년 전 한국 정부로부터 차관을 받았던 때와 같은 절망적인 경제 상황은 아닙니다. 그러나 극동 지역과 일부 산업 분야에서는 여전히 한국의 투자와 사업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러시아와 한반도의 상호 발전에 중요한 촉매제로서 양국 모두에게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고 장치혁 고합그룹 회장이 그랬듯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지속 가능한 사업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호텔, 교육시설, 농업 프로젝트 등 비교적 접근이 쉬운 분야의 초기 투자부터 시작해 해외연수원, 문화·스포츠 시설, 산업 교육센터, 자연 연계 체험형 관광사업, 양국 간 교환학생 프로그램 등으로 이를 확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는 양국 간 소통을 회복하는 손쉽고도 현실적인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과거 한·러 경협 사업의 경험을 돌아보면, 한국의 적극적인 투자는 결국 한국에도 경제적 이익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성과는 러시아 정부와 국민에게도 의미 있는 보상으로 이어졌습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 전경. 한국과 극동 러시아를 잇는 주요 항공 관문이다. (사진=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
마지막으로 한국의 일반 시민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특히 경험과 역량을 갖춘 은퇴자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극동 러시아를 방문해 보십시오. 가벼운 마음의 여행으로 놀러 오셔도 좋고, 여유가 있다면 한 달 살이로 머물러보는 것도 좋습니다.
여러분이 각 분야에서 쌓은 오래된 경험과 지식은 현지에서 충분히 가치 있게 활용될 수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든 선생님이 될 수도 있고, 재능 기부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방면에서 제2의 직장 생활을 시작할 수도 있으며, 사업가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는 새로운 기회이자 또 다른 삶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한 걸음이 한국과 러시아의 끊어진 길을 다시 잇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질 그 길은 향후 높고 크게 비상할 새로운 동북아시아 연결의 거대한 활주로가 되어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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