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금융감독원이 고위험 금융상품 판매 규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은행권이 요구해온 신탁 규제 완화와 투자일임업 허용 논의는 후순위로 밀리고 있습니다.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사태 이후 은행 창구의 고위험 상품 판매 관행에 대한 경계감이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당국은 판매 규제 완화보다는 소비자보호 체계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20일 '소비자위험대응협의회'를 첫 개최하고, 금융권 전반의 고위험 상품 설계·제조와 판매, 사후관리 등 실태 점검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공유했습니다. 협의회는 금융상품 판매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비자 피해를 사전에 점검하고 대응하기 위해 정례 회의를 개최합니다. 이번 회의에서는 홍콩ELS 사태 이후 드러난 불완전판매 문제를 계기로 고위험 상품 판매 전반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특히 은행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예·적금 중심 채널이라는 기존 인식과 달리 실제로는 고위험 상품 판매 비중이 상당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소비자보호 점검 대상도 ELS에 국한되지 않고 확대될 전망입니다. 최근 은행권에서 확대되고 있는 상장지수펀드(ETF) 신탁 판매, 주가연계예금(ELD) 등 유사 고위험 상품 역시 주요 점검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입니다. ETF를 신탁 형태로 판매하는 구조는 고객이 은행과 신탁 계약을 체결한 뒤 은행이 자금을 운용해 증권사 등을 통해 투자하는 방식으로, 일반 증권계좌 거래 대비 수수료 부담이 크고 상품 구조가 복잡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금감원의 소비자 보호 기조가 구체화하면서 은행권 숙원으로 꼽혀온 신탁 규제 완화 논의는 동력을 잃는 모습입니다. 은행들은 그동안 특정금전신탁의 운용 자율성을 확대해 ETF나 개별 주식 등으로 투자 범위를 넓혀달라고 요구해 왔습니다. 다만 당국은 고위험 상품 판매 채널로서의 은행 역할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규제 완화를 논의하기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입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인구 고령화와 노후 자산관리라는 키워드로 신탁제도 손질이 필요하다고 건의했지만 현 정부 출범 이후 배드뱅크 설립 등 포용적금융에 무게를 두면서 논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습니다.
은행권 투자일임업 허용 역시 사실상 논의가 전무한 상태입니다. 은행은 투자일임 업무를 수행할 수 없어 지속적인 수익률 관리가 필요한 장기투자상품 가입 고객에 대해 적절한 서비스 제공이 불가능하다며 투자일임업 전면 또는 일부 허용을 건의한 바 있습니다. 당국 내부에서는 판매 책임과 운용 책임이 결합될 경우 이해상충 우려가 커질 수 있다는 신중론이 여전히 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금감원이 소비자 보호에 방점을 찍은 만큼 고위험상품 기획 설계 판매 관행 손질에 무게를 두고 있는 모습입니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이후에도 반복된 대규모 손실 사태가 이어진 가운데 금소법 시행령 개정에 따른 이행실태 점검하고 적합성·적정성평가 강화, 손실가능성 등 우선기재 추가 등을 들여다 본다는 방침입니다.
금융권에서는 당국 기조 변화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자산관리 시장에서 은행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규제 합리화가 필요하지만 현재는 소비자 보호 이슈에 논의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당분간은 리스크 관리 중심의 영업 기조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 시내의 한 시중은행 영업부에서 고객이 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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