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반도체산업 육성·지원을 위한 이른바 ‘칩스3법’(반도체 특별법, 조세특례제한법, 산업은행법 개정안)의 진용이 갖춰졌다. 지난해 2월과 8월 각각 통과된 보조금 지급과 세액공제, 파격적인 금융지원 방안에 이어 정부가 재정적·행정적으로 반도체산업을 지원하는 특별법까지 마련된 것이다. 반도체산업이 인공지능(AI) 시대 필수 분야로 부상한 데 따른 것으로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겠다는 절박함의 산물인 셈이다.
K-칩스법은 미 바이든 행정부 때 통과된 칩스법(CHIPS Act)을 모델로 하고 있다. 하지만 막대한 혈세를 쏟아부어서 지원한다는 점 외에 공통점을 찾긴 어렵다. 미 칩스법의 한 축인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항목이 K-칩스법에는 전무한 까닭이다. 미국의 칩스법에는 ‘공짜 점심’이 없다.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예상보다 과도한 이익을 거둘 경우 그 일부를 국가가 환수하는 ‘업사이드 공유(Upside Sharing)’ 조항이 대표적이다. 1억5000만달러(약 2000억원) 이상의 직접 보조금을 신청하는 기업이 대상인데, 초과 수익의 일정 비율을 환수해 미국내 반도체 생태계 재투자하는 것이 원칙이다.
또한 공장 노동자들을 위한 보육 서비스 제공과 소외계층, 여성, 유색인종, 참전 용사 등 사회적 약자 채용 계획도 의무화했다. 국가 예산이 주주들의 배를 불리는 데 쓰이지 않도록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5년 동안 자사주를 매입할 수 없고, 과도한 배당을 통해 공적 자금이 유출되는지 감시한다. 용수와 전력 문제를 정부가 책임지도록 한 한국과 달리, 기업이 해당 주 및 지방정부와 협력해 지역 인프라(도로, 용수, 전력 등) 개선에 기여할 것을 권장했다. 결국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그 혜택이 노동자와 지역사회, 그리고 국가 재정으로 선순환되어야 한다는 철저한 상호주의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반도체 특별법)이 가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반면, 한국의 칩스3법은 오로지 ‘지원’에서 시작해 ‘지원’으로 끝난다. 세제 혜택과 재정 지원은 대폭 강화됐지만, 통과된 칩스3법 어디에도 쏟아붓는 혈세에 대한 반대급부는 보이지 않는다. 국회 법안 논의 과정에서 지원에 걸맞은 기업의 책임을 물은 의원이 없었다는 점도 한 원인으로 보인다. 무서운 일이다. 물론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강화가 국가적 과제라는 점에 이견은 없다. 다만 특정 산업에 대한 특혜성 지원이 사회적 합의를 얻으려면, 그 수혜자가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답도 함께 제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K-칩스법은 기업의 경쟁력 제고가 곧 낙수효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과거 개발 연대식의 관성적 믿음에 기대고 있는 것만 같다.
미 칩스법처럼 보육 서비스 제공이나 약자 채용 대목은 저출산과 양극화라는 한국 사회 고질적 문제를 완화하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대규모 반도체 공장이 들어설 때 기업이 인근 보육 인프라를 책임지도록 한다면, 보조금이라는 세금이 실질적 복지 모델의 확산으로 연결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시간은 있다. 특별법 시행령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명문화하면 된다. 크게 지원하되, 그 책임 또한 묻는 것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이다. 반도체 강국이라는 목표가 기업만의 잔치가 아닌 국민 모두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국가적 성취가 되기 위해선, '책임 없는 지원'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진정한 전략산업 육성은 기업의 곳간을 채워주는 것만이 아니라, 그 기업이 국가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기여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오승훈 산업1부장 grantorin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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