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병은 고령화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의학적·사회적 난제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러나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병을 앓고 있는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대해서조차 그동안 명확한 답을 내놓기 어려웠습니다. 뇌 영상 검사나 뇌척수액 검사는 비용 부담과 접근성의 한계가 컸고, 중증 환자일수록 연구 참여 자체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한계를 혈액검사로 보완한 대규모 역학 연구가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노르웨이 전 국민 코호트를 기반으로 한 이번 연구는 알츠하이머병의 실제 유병 규모뿐 아니라, 교육 수준에 따른 위험 분포까지 새롭게 조명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서울 서초구 동작대로 인근에서 열린 서초구치매안심센터 주최 실종 치매환자 발견 모의훈련에서 가상 치매환자가 길거리를 방황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인산화된 ‘타우’ 단백질 수치 측정법
2025년 12월 17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된 이 연구는 노르웨이 트뢴델라그 건강 연구(HUNT) 자료를 기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자료는 1984년 시작된 장기 추적 코호트로, 약 25만 명의 건강 정보와 생체 시료를 축적해 온 세계적인 역학 연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연구진은 이 가운데 58세 이상 성인 1만 1486명의 혈액 샘플을 분석해, 알츠하이머병의 핵심 병리와 연관된 pTau217(인산화된 ‘타우’ 단백질) 수치를 측정했습니다. pTau217은 뇌 속 아밀로이드 플라크 축적을 반영하는 혈액 바이오마커로, 최근 알츠하이머 진단 연구에서 가장 주목받는 지표로 꼽힙니다.
분석 결과 70세 이상 인구의 약 10%가 인지기능 저하와 함께 pTau217 상승을 보이는 ‘알츠하이머 치매’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기존 서구권 백인 인구를 대상으로 한 유병률 추정치와 대체로 일치하는 수치입니다. 또한 70세 이상 인구의 또 다른 10%는 경도인지장애(MCI)와 함께 pTau217 수치가 상승해 있었으며, 나머지 10%는 인지 증상은 없지만 pTau217이 높은 ‘전임상(preclinical) 알츠하이머’ 상태로 분류됐습니다.
연령대별 분석에서는 기존 추정을 뒤흔드는 결과도 확인됐습니다. 85~89세 연령층에서 알츠하이머 치매와 병리를 동시에 가진 비율은 약 25%에 달했습니다. 이는 이전에 제시된 서유럽 추정치(남성 약 7%, 여성 약 13%)보다 훨씬 높은 수치입니다.
프랑스 소르본대 니콜라 빌랭(Nicolas Villain) 교수는 <네이처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연구에 대해 “아름다운 노르웨이 연구에서 나온 매우 중요한 성과”라며, 혈액 기반 바이오마커가 신경퇴행성 질환의 역학 연구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번 연구는 혈액검사가 알츠하이머 역학 연구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음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 한계 역시 분명히 드러냅니다. 연구 대상자 가운데 치매 진단을 받았음에도 pTau217 수치가 낮은 경우가 약 19%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해당 환자들의 인지 저하가 알츠하이머가 아닌 다른 형태의 치매, 혹은 복합 병리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건강한 뇌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뇌.(이미지=NIH)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제이슨 칼라위시(Jason Karlawish) 교수는 <네이처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혈액검사는 연구와 임상 진료에서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잘못된 손에 들어갈 경우 큰 해를 끼칠 수 있는 종류의 검사”라고 경고합니다. 증상이 없는 사람에게 ‘알츠하이머 병리 가능성’을 통보하는 문제는 윤리적·심리적 논란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연구에서 가장 주목받은 또 하나의 결과는 교육 수준과 pTau217 수치 간의 연관성입니다.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혈중 pTau217 수치가 유의하게 높게 나타났습니다. 칼라위쉬 교수는 “이 발견은 정말 놀랍다”고 말합니다. 교육이 알프하이머 예방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학계에서는 이 효과가 혼란 요인인 사회경제적 요인에 얼마나 기인하는지 여전히 논쟁 중입니다. 그는 노르웨이가 강력한 사회 복지 프로그램과 보편적 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교육 효과 자체를 관찰하기 더 쉽다고 지적하면서 “진짜 핵심은 교육과 평생 동안 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있다”고 말합니다. 흡연, 수면, 운동, 체질량지수(BMI) 같은 생활습관 요인이 pTau217 수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인지 저하, 다양한 원인 규명 필요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pTau217 혈액검사가 임상 진단 도구로 승인됐으며, 알츠하이머협회 역시 이를 공식 진단 보조 수단으로 채택했습니다. 다만 단일 바이오마커만으로 질병을 정의하는 데에는 여전히 신중론이 우세합니다.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 캠퍼스(UCSF)의 신경과 의사 길 라비노비치(Gil Rabinovici) 교수는 “인지 장애를 가진 많은 사람들은 알츠하이머병과 다른 형태의 치매를 동시에 앓고 있다”라며 “미래는 단일 지표가 아니라, 여러 혈액 바이오마커를 조합한 패널 진단이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알츠하이머뿐 아니라 혈관성 치매 등 다양한 병리를 동시에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이번 노르웨이 연구는 혈액검사가 알츠하이머의 ‘보이지 않던 규모’를 드러내는 데 결정적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사회에서 알츠하이머 규모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통계는 뇌 건강 유지를 위해 공중보건이나 개인의 노력이 배가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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