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혁신기업에서 로비기업으로 전락한 쿠팡
2025-12-22 06:00:00 2025-12-22 06:00:00
쿠팡은 신데렐라와 같은 기업입니다. 2010년에 청년 창업가인 김범석 대표가 설립해 15년 만에 국내 최대의 유통 기업으로 발전했습니다. 처음에는 티켓몬스터, 위메프와 같이 소셜커머스로 출발했습니다. 인터넷 동호회나 친목회가 단체로 구매하면 가격을 할인해주는 쿠폰을 발급하는 사업입니다. 그래서 이름을 쿠팡(Coupang)으로 붙였습니다. 그러다 일본 손정의의 비전펀드에서 거액의 투자를 받으며 디지털 소매상으로 전환해 과감하게 직매입과 직배송을 실행하여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오픈마켓이나 쇼핑몰의 단순한 중개업만 수행하며 변방에 머물던 전자상거래가 주도적 유통 채널로 성장하는 데 쿠팡이 크게 기여했습니다. 방대한 점포망을 무기로 유통시장을 지배해온 전통적 유통 대기업들을 능가하며 유통업의 판도를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꿔놓았습니다. 
 
2021년 뉴욕증시에 상장한 쿠팡은 시가총액 411억달러(약 61조원)를 자랑하는 굴지의 소매 기업으로 우뚝 솟았습니다. 쿠팡의 2025년 매출액은 신세계그룹과 롯데쇼핑을 합친 것보다 많은 50조원 이상으로 예상됩니다. 똑같이 시작했지만, 판매 대금을 정산하지 못해 파산 선고받은 티메프(티켓몬스터·위메프)와 비교하면 천지 차이의 운명입니다. 
 
국내 유통업을 평정한 쿠팡은 이용 고객 수가 3370만명으로 성인 한국인 대부분이 애용합니다. 한국의 아마존을 꿈꾸며 쿠팡을 창업한 김범석 대표가 추구한 “쿠팡이 없으면 어떻게 살았을까?”(How did I ever live without Coupang?)라는 목표를 실현했습니다. 
 
이제 소비자들은 쿠팡 없이 하루도 살 수가 없습니다. 핸드폰만 있으면 언제든 원하는 것을 집에서 받아볼 수 있습니다. 장보기 불편하거나 시간이 없는 주부, 노약자, 직장인, 소상공인들이 쿠팡을 이용해 편리하게 쇼핑합니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던 시절에 다른 나라처럼 생필품 사재기 광풍이 불지 않았던 것도 쿠팡 덕분입니다. 
 
쿠팡에 대한 소비자들의 충성도는 단적으로 와우멤버십에서 나타납니다. 쿠팡이 2018년에 월회비 2900원으로 시작한 와우멤버십은 현재 7890원으로 3배가량 올랐는데도 해지율은 매우 낮습니다. 충성고객 기반을 바탕으로 쿠팡은 쿠팡잇츠(음식배달), 쿠팡플레이(OTT), R.LUX(럭셔리 뷰티·패션) 등의 신사업으로 확장하며 성장세를 가속하고 있습니다.
 
그런 쿠팡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간간이 쿠팡을 둘러싸고 나오는 소식은 실망스럽기만 합니다. 로켓배송을 구현하기 위해 물류센터 노동자와 배송기사들을 가혹하게 몰아붙인다거나 납품 중소기업의 인기 제품을 자사 PB로 만들어 가로챈다는 기사가 나오면 쿠팡도 다른 대기업과 별반 다를 바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소비자들은 쿠팡에 대해 변함없는 지지를 보냅니다. 노동단체가 쿠팡의 새벽배송을 금지하려고 시도했지만, 소비자들이 나서서 막아주었습니다.
 
하지만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대량으로 유출된 사건을 통해 드러난 쿠팡의 실체는 충격적입니다. 해킹 사건은 얼마든지 터질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사태를 다루는 쿠팡의 접근 방식이 놀랍기만 합니다. 쿠팡의 창업자이자 실질적 지배자인 김범석 의장은 미국인이라는 신분을 내세워 전면에 나서지 않습니다. 권한만 누리고 책임은 안 지는 재벌 총수를 보는 느낌입니다. 해킹 사태로 경영진이 교체되며 새롭게 CEO로 부임한 해럴드 로저스 대표는 미국 모회사의 법률 고문인 변호사라고 합니다.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미국인 변호사를 해결사로 보낸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대관 로비 조직을 대대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검찰·공정위·노동부 등의 규제 부처 전직 공무원과 국회 보좌관 출신들을 수십 명이나 채용해 비밀리에 대관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무엇을 잘못하고 얼마나 숨길 것이 많길래 이 정도로 많은 로비 인력이 필요한지 궁금합니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 대표가 지난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열린 쿠팡 개인정보 침해 사고 관련 청문회에 참석해 있다. (사진=뉴시스)
 
이런 쿠팡을 보면 어떤 기업이 떠오를까요? 쿠팡은 스스로를 테크기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과연 최고경영자는 외국에 거주하고 변호사를 대신 앞에 내세우며 뒤에서는 전직 공무원들을 고용해 로비하는 기업이 테크기업인지는 의문입니다. 젠슨 황이 이끄는 엔비디아나 일론 머스크가 CEO를 맡고 있는 테슬라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AI와 자율주행 등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는 테크기업과 대관 로비에 집중하는 쿠팡은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빠르게 몸집이 커져서 초심을 잃고 재벌 대기업처럼 행동하는 쿠팡을 보는 국민은 씁쓸합니다. 신데렐라가 왕자와 결혼해 욕심 많은 왕비로 변한 모습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대관 로비의 기초는 여론에 있습니다. 우호적 여론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아무리 돈을 부어도 로비는 소용없습니다. 
 
제조업과 달리 유통업은 소비자의 신뢰를 먹고 사는 업종입니다. 소비자들이 떠나기 시작하면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특히 전자상거래는 클릭 몇 번만으로 쉽게 이탈할 수 있습니다. 쿠팡을 지지하는 소비자들이 얼마나 인내할지 두고 볼 일입니다. 역사적으로 유수한 선도기업들이 자만에 빠져 안주하다 도태된 사례는 무수합니다. 쿠팡도 다시 정신 차려 혁신을 추구하지 않으면 반짝 성공 신화에 그칠 수 있습니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격언이 다시금 새롭게 다가옵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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