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유 기자] 서울 강서권 상권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던 홈플러스 가양점이 오는 28일부로 문을 닫습니다. 대형마트가 지역 기반 상권의 중심축으로 기능하던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번 폐점은 단순한 하나의 점포 철수 이상의 의미인데요. 납품 중단 사태로 촉발된 영업 차질, 장기화된 매출 부진, 그리고 인수·합병(M&A) 불확실성이 한꺼번에 덮치면서 가양점은 결국 문을 닫는 결정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11일 홈플러스는 앱 공지를 통해 가양점 폐점을 공식화했습니다. 1997년 문을 연 본점 강서점 인근에 자리 잡은 가양점은 20여년 넘게 서울 서부권 소비자들의 장보기를 책임져온 핵심 거점이었죠. 한때는 주변 상권을 견인하며 강서의 든든한 발로 불렸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실적 악화와 대대적인 구조조정 여파 속에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홈플러스 가양점이 28일 폐점을 앞두고 고별 세일에 돌입했다. (사진=이지유 기자)
영업 악화의 직접적 원인은 협력사들의 잇따른 납품 중단이었습니다. 삼양식품이 지난달 말 주요 라인업 납품을 멈춘 데 이어 아모레퍼시픽이 미수금 문제로 8월부터 공급을 끊었는데요. 다만 삼양식품은 12일부로 다시 납품을 재개했습니다.
실제 12일 기자가 방문해보니 매장 곳곳의 진열대는 이미 빈 공간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신선식품 코너는 일부 품목이 빠져 있었고 생활·뷰티 코너에는 인기 제품들의 진열선이 휑하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마트 직원 A씨는 "그동안은 어떻게든 물량을 메꾸며 버텼는데 최근엔 아예 들어오는 게 없으니 정리가 시작된 것처럼 보인다는 얘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27일부로 입점 업주 전원 철수…"소송도 고민했지만 의미 없더라"
입점 점포들은 27일을 마지막으로 모두 철수합니다. 본사는 "27일 영업 종료 후 내년 1월11일까지 철거를 완료해달라"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홈플러스 가양점 내 의류 매장. (사진=이지유 기자)
가양점에서 의류 매장을 운영해온 'ㅅ' 업주는 "우리는 지난 10월30일에 겨우 입점했는데 한 달도 안 돼 폐점 소식을 들었다"며 허탈해했습니다. 그는 "이미 고별 매진에 돌입해 마지막 재고 정리에 나섰다. 들어오자마자 나가다니 어안이 벙벙하지만 그래도 직원들 월급은 줘야 하니까 가능한 한 빨리 정리 판매 들어갔다"고 말했습니다.
8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어린이 전문 서점을 운영해 온 'ㄱ' 서점 역시 급히 새 둥지를 찾아야 했습니다. 서점 대표는 "폐점 공지를 받고 며칠 동안 밤새 주변을 뒤졌다"며 "결국 바로 건너편 자이타워로 이전하기로 했는데 이사 비용과 셋팅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털어놨습니다.
이어 "아이들 책을 보러 오는 지역 고객들이 많아서 이 동네를 떠날 순 없다"며 "갑작스러운 폐점만 아니었어도 연말은 책 판매가 제일 좋은 시기였는데 올해는 사실상 망했다"고 전했습니다.
일부 업주들은 폐점이 불법적 절차라는 판단 아래 공동 대응이나 소송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홈플러스의 회생 또는 파산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결국 대부분이 정리 수순을 받아들였습니다.
남은 업장들도 혼란…"영업해도 되나" 본사에 문의 중
가양점 내 키즈 테마파크 'ㅁㅅㅌ' 역시 혼란 속에 영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매장 관계자는 "폐점 소식이 나오자마자 본사 측에 계속 운영 가능한지 문의한 상태"라며 "혹시 몰라서 수색 이마트로 내년 2~3월께 이동하는 방안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뛰어놀던 공간이 순식간에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고객들도 정말 문 닫느냐며 계속 묻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외부 고객들 또한 갑작스러운 폐점 소식에 어리둥절한 반응인데요. 인근 주민 김모(44)씨는 "강서점과 가양점 둘 다 장 보러 자주 갔는데 가양점은 넓고 한산해서 특히 좋아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또 다른 주민도 "마트가 사라지면 생활 동선이 다 바뀌는데 여기는 단순한 쇼핑 시설이 아니라 아이 학원, 병원, 카페까지 한꺼번에 다 연결된 생활권이어서 더욱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홈플러스는 가양점을 포함한 일부 지점 상태를 영업 중단으로 표기하고 있지만 현장 분위기는 이미 폐점으로 기울어 있는데요. 진열대 정리, 철수 공지, 일부 코너의 운영 중단 등은 사실상 폐점을 향한 마지막 단계입니다. 직원들은 고객들보다 먼저 현장 변화의 속도를 실감하고 있었죠.
가양점 직원 B씨는 "요즘은 손님보다 철수 문의가 더 많다"며 "개점 초기부터 근무했던 직원들도 있는데 다들 말은 안 해도 마음이 많이 무너져 있다"고 했습니다.
홈플러스 가양점 내 어린이 서점. (사진=이지유 기자)
업계에서는 이번 가양점 폐점이 단순한 점포 철수에 그치지 않고 서울 서부권 상권 전체에도 적잖은 파장이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강서·가양 지역은 이미 대형마트 경쟁이 심화한 데다 온라인 소비 확산까지 겹치며 구조적으로 오프라인 기반이 약해졌다"며 "이번 폐점은 변화의 신호탄일 뿐 앞으로 추가 조정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가양점의 마지막 한 달은 종종 마트보다 이사 현장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박스에 물건을 담고 벽면을 뜯고, 간판을 내리는 소리가 이따금 매장 전체에 울렸는데요. 남은 점주들은 서로 신세를 묻고 다른 자리 구하는 소식을 공유하며 짐을 정리하고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ㄱ' 서점 직원은 "여기에서 아이들이 책을 읽고 자라며 부모님들이 추억을 쌓았다"며 "가양점이 없어진다니 아직도 낯설다. 특히 서초동 등 멀리서 오는 고객들도 많은데 갑작스런 폐점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라고 전했습니다.
이지유 기자 emailgpt1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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