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떠보니 아침/ 햇살은 공평하다”
우식이 쓴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우식은 영화 <사람과 고기>에서 1킬로에 60원 하는 박스 폐지를 주워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노인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가 시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가 쓴 ‘청춘’이라는 시 한 편이 낭송된다.
우식의 말처럼 햇살은 정말 공평할까? 이 시를 우식이 젊은 시절에 쓴 거라면 그럴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한다. 그의 젊음은 경제가 성장하던 시대 속에 있었으니까. 그런데 노인이 되어가면서도 우식은 똑같이 생각했을까? 아닐 것이다. 시인이 원래 배고픈 직업이라 해도 무전취식을 해야 할 만큼 가난해질 줄은 몰랐을 것이다.
노인 빈곤의 문제는 사실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통계상으로는 대한민국 부자 상위 10%가 50대 후반에서 60대 중반에 집중되어 있지만, 이것은 극소수의 이야기일 뿐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나이 듦은 자산의 축적이 아니라 빈곤으로의 추락을 의미한다. 젊어서는 자녀 교육과 집 구매에 올인하고 은퇴 후엔 소득이 사라진다. 그 와중에 의료비는 계속 증가한다. 요즘 같은 물가에 국민연금만으로는 기본적인 생활조차 버겁다. 집 하나는 남지 않냐고 하겠지만 영화 속 형준처럼 집이 있어도 소득이 없으면 그 역시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을 수 없다.
사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문제가 노년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청년 세대도 예외가 아니다. 청년 세대 내부의 격차는 더욱 극명하다. 얼마 전 스물한 살의 한 여자 아이돌이 한남동 유엔빌리지의 137억원짜리 고급 빌라를 전액 현금으로 매입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됐다. 이 소식은 단순한 연예 뉴스를 넘어, 많은 청년들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비애를 안겨주었다. 같은 나이의 청년들은 최저임금 알바로 월세를 걱정하고, 취업에 성공해도 3000만원 안팎인 대졸 초임으로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저축은 꿈도 못 꾼다. 이들에게 같은 또래가 100억원이 넘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현실은 ‘노력하면 된다’는 구호를 무색하게 만들 뿐이다.
박근형·예수정·장용 주연의 영화 <사람과 고기>는 노년의 빈곤 문제를 현실적으로 그렸다는 평을 받았다. (사진=트리플픽쳐스)
이것을 단순히 개인의 능력 차이로만 설명할 수 없다. 인기 스타의 수입은 개인의 재능이기도 하지만 거대 자본과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반면 똑같이 열심히 일하는 수많은 청년들은 구조적 불평등 속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흙수저’를 벗어나기 어렵다. 영화 속 세 노인이 ‘강요당한 채식주의자’가 된 것처럼 청년들 역시 고기를 포기하고, 외식을 포기하고, 연애를 포기하고,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다. 그들의 검소 역시 선택이 아닌 강요다.
“왜 그러셨어요?”
“…….”
무전취식의 이유를 묻는 경찰의 질문에 우식은 답을 하지 못했다. 우식 대신 우리가 큰 소리로 대답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햇살은 공평한 거라고. 원래 햇살은 그래야 하는 거라고.
그러려면 70세 노인이 고기 한 점을 위해 일탈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21세 청년이 100억원의 격차 앞에서 절망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공평한 햇살을 위해 햇살 아래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공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영화 <사람과 고기>는 답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 자신이, 또한 우리의 자식들이 나이 들어 살아갈 사회의 방향과 모습에 대해. 영화는 끝났고 우식의 시 낭송도 멈췄지만 현실의 우식들은 여전히 거리에 있다. 100억짜리 빌라의 통창 앞이 아닌 폐지가 쌓인 어느 골목길에서 따뜻한 햇살 한 줄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목청껏 웃고 싶어서/ 목놓아 울어본다”
‘청춘’의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내 소망은 우식이 웃기 위해 울지 않는 것이다. 우식도, 나도, 나아가 우리 모두.
이승연 작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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