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이 문명과 라오인이야기)(30)라오인의 시간은 우리와 무엇이 다를까?
'좋은 집'에서 맞는 라오인의 죽음
열다섯 살이면 어른이 되는 나라
시간을 가진 마지막 인류
2025-11-11 06:00:00 2025-11-11 06:00:00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반도. 일반적으로 태국과 베트남을 떠올리게 합니다. 온화한 기후 탓에 전 세계 최고의 휴양 국가이자 관광 국가로 알려진 곳입니다. 하지만 이들과 맞닿아 있는 인도차이나반도 유일의 내륙 국가 '라오스'. 낯선 만큼 모든 것이 어색하지만 그 속살을 살펴보면 의외로 우리와 많은 부분이 통할 수 있을 것 같은 친숙한 곳이기도 합니다.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의 글로벌 프로젝트 '은사마'가 주목하는 해외 거점 국가 라오스의 모든 것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좋은 집'
 
라오인은 상가(喪家)를 '흐안 디'라고 한다. 라오어로 흐안은 집이라는 명사이고, 디는 좋다라는 형용사다. 라오어는 형용사가 뒤에서 명사를 꾸미는 어순을 갖고 있어 직역하면 '좋은 집'이라는 뜻이다. 망자가 화장되기 전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공간을 좋은 집이라 부르다니 처음 들었을 때는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외국인은 라오스의 장례식과 결혼 잔치를 바로 구분하기 어렵다. 호상(好喪)만 있는 것이 아닐 테니 그 안에는 여러 곡절과 사연이 있겠지만, 상가에서 우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문상객도 애통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 개인적인 감정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가다듬는다. '좋은 집'에서 비통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논리적으로 무례한 일이 아니겠는가. 
 
라오스의 상가가 잔칫집과 다른 점은 술상을 차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 우리의 장례 풍속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은 문상객들이 카드놀이를 한다는 점이다. 문상객들은 대부분 화장이 끝날 때까지 상주들과 밤낮으로 망자를 함께 지킨다. 과거 장지까지 따라갔던 우리네 풍속과 크게 다르지 않다. 
 
라오인은 한국인보다 죽음을 훨씬 담담한 자연현상으로 받아들인다. 라오인들은 경조사 중에 '좋은 집'에 함께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부조 문화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형편에 비해 부조금을 많이 낸다. 보시(布施) 문화의 영향이다. 궂은 일은 더 많은 발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관념이 작동한다. 
 
신기한 것은 아이가 태어난 집을 '흐안 깜'이라 부른다는 점이다. 깜은 카르마(업보)의 라오어식 발음으로, 새 생명이 태어난 집을 '업이 있는 집'이라 부르는 것이다. 불교도로서는 당연한 생사관이지만 우리 관념과는 결이 달라 신선하게 다가온다. 
 
라오 아이들은 언제 성년이 될까
 
등교하는 라오스 청소년들. (사진=우희철)
 
라오인의 성년 기준은 열다섯 살이다. 학령 인구로 따지면 중학교 5학년이다. 라오스는 중학교·고등학교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중등교육만 7년 과정이다. 초등학교가 5년이므로 중학교 5학년은 한국의 고등학교 1학년과 같은 나이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2023년 라오스의 중등학교 진학률은 67%지만 5학년에서 7학년까지 후기 중등교육 진학률은 학령 인구의 36%에 불과하다. 라오스 청소년은 열다섯 살이 되면 60% 이상이 학교를 떠나 농촌에서 농사를 짓거나 도시로 나와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사회적으로 이미 한몫을 담당하고 있으니 스스로 어른 행세를 하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다. 
 
제도 교육이 보급되기 이전 전통사회에서 어른이 되는 나이는 훨씬 더 빨랐다. 여성은 생리를 시작하면 새로운 농업 노동력을 생산할 수 있으므로 어른으로 간주하는 것이 당연했다. 오늘날에도 농촌이나 소수민족 사회에서는 열다섯 살 아래라도 혼인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중학교를 다니지 않는 30% 이상의 청소년들은 조혼을 하게 된다. 10대에 부모가 되고 40대가 되기 전에 할아버지·할머니가 되는 경우도 많다. 
 
20대 초반의 라오 여성에게 나이를 물어보면 즉답하지 않고 '나이가 많다'며 한참 뜸을 들이다가 대답을 해준다. 이들이 나이가 많다고 여기는 기준은 스무 살이다. 서른이 넘어서야 결혼하는 한국이나 유럽과는 아주 딴판이다. 과거 우리 전통사회에서도 과년(瓜年)이 열여섯 살이었던 때가 있었듯 라오스에서 과년은 열다섯 살이고 '노처녀'의 기준은 스무 살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독립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한국 청소년이 세계적으로 가장 늦게 성인이 된다. 학령 인구의 75% 정도가 고등교육을 받고, 남성들은 군복무까지 마쳐야 겨우 사회에 진출하는 객관적 조건이 존재한다. 그와 별개로 한국 특유의 과잉 교육열과 자식에 대한 과보호 역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6일에 만나자는 말은 영원히 만나지 말자는 말과 같다
 
라오스 달력. 서기로 표시하고 완씬일을 선명하게 표시했다. (이미지=제국몽)
 
라오스에서 연호는 서력과 불기를 같이 쓴다. 태국은 불기를 쓴다. 2025년은 라오스 불기로 2568년이다. 전통 라오스력은 한 달이 28, 29, 30, 31일이 아니라 반으로 나누어 같은 달이 두 번 돌아간다. 음력으로 작은 달은 29일이므로 15일 한 번, 14일 한 번, 큰 달은 15일이 두 번이다. 그러므로 전통력에는 16일부터 31일까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라오스에서 육체노동자를 고용해야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날이 있다. 달이 보이지 않지만 생성되는 날과 보름달이 뜨는 날이다. 이 이틀을 '완씬'이라고 하고 영어로는 'Buddha’s Day'로 번역한다. 이때 전통산업이나 육체노동자들은 쉰다. 기독교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날 라오인들은 절에 간다. 절 앞에는 천수국으로 꽃탑을 만들어 파는 상인들이 줄지어 진을 치고 공양객을 유혹한다. 과거 삭망(朔望)이라 해서 초하루와 보름에 간단한 제를 올렸던 우리 풍속과 비슷하다. 
 
라오스에서 공사 기간은 한없이 늘어질 수밖에 없다. 공휴일, 한 달에 두 번 있는 완씬일, 우기이자 승려들이 절에서 머무르며 외출을 자제하는 하안거 기간 3개월, 사실상 업무가 한 달 정도 마비되는 신년 축제를 포함한 각종 축제, 그리고 지역마다 1년에 하루를 정해 진행하는 마을 잔치까지….
 
이런저런 이유로 일하는 날보다 쉬는 날이 더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라오스를 시간이 멈춘 나라라고들 하지만, 근대화란 피할 수 없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럼에도 라오스가 시간이 쉬어가는 나라인는 점은 분명하다. 
 
라오스 타임
 
라오스 달력. 서력 날짜와 라오스 전통력을 함께 표기해 두 체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미지=제국몽)
 
해방 이후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이 외국 사전에 실렸다는 카더라 통신이 돌았을 정도로 한국인은 시간관념이 없었다. 한국인을 역성들고자 하는 이들은 전통 시간이 2시간 단위인 12간지 시간대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당시 한국인이 가장 많이 했던 변명은 교통 문제였다. 
 
라오인의 시간관념에서는 하루를 크게 네 구간으로 나눈다. 새벽과 아침, 점심, 오후, 밤. 두 시간보다 더 듬성듬성하다. 약속을 잡을 때는 네 개도 많다고 여기고 주로 두 개만 사용한다. 아침과 오후. 라오인이 시간을 어기게 된 모든 죄는 바이크와 자동차가 뒤집어쓴다. 
 
라오스 타임은 사람을 환장하게 만든다. 늦더라도 나타나 주기만 하면 고마운 일이다. 라오인은 면전에서 벌어지는 불편한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시세가 조금이라도 불리해지면 아예 나타나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는다. 미안하다는 사과는 인색하다 못해, 죽기 전에 유언으로 남길 작정인 사람들 같다. 웃으면서 온갖 변명을 하고, 자기 잘못은 터럭만큼도 없다. 
 
영국인도 산업혁명에 뒤졌던 독일인을 게으르다고 타박하던 때가 있었다. 시간관념이 없는 것은 정도 차이는 있어도 '시간을 쪼개는' 근대 이전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유발 하라리는 농업혁명이 인구를 증가시키고 문명을 탄생하게 했지만 역사상 최대 사기 사건으로 인류를 노동, 계급,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몰아넣었다고 평가했다. 인간 비극에 초점을 맞추면 근대 문명은 인류에게 시간을 앗아간 것일 수도 있다. 라오스에서의 여행은 시간을 가진 마지막 인류를 만나러 과거로 돌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라오스=프리랜서 작가 '제국몽'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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