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금융당국이 수백억원 규모의 금융사 내부통제 사고에 대해 후속 처리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사의 보고 의무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금융사가 금융사고를 당국에 신고하는 과정에서 늑장 보고하거나 즉각적 신고 대신 축소·은폐하는 행위가 만연하기 때문입니다.
금융 사고 늑장 보고·은폐 만연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벌어진 은행권 주요 횡령·배임 사고 적발과 처리 과정에서 늑장 보고, 사건 축소·은폐 등 행위가 문제가 됐지만 관련 건으로 행정 제재를 받거나 형사 처벌을 받은 사례는 전무합니다. 내부통제 감독이 금융사의 자율적 시정 노력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정작 금융사들은 책임을 회피하거나 제재 감경을 위해 관련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 규정을 보면 금융사는 임직원이나 소속 임직원 이외의 자가 위법·부당한 행위를 함으로써 금융기관 또는 금융거래자에게 손실을 초래하게 하거나 금융 질서를 문란하게 한 경우 이를 즉시 금융감독원(감독원장)에 보고해야 합니다.
문제는 금융기관이 자체조사를 이유로 금융당국에 보고를 늦게 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규정이 마땅치 않다는 점입입니다. 현행법에서는 사고 인지 시 지체 없이 보고하도록 하고 있지만, 자체조사를 언제까지 마쳐야 하는지 등을 포함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금융사고 보고 대상 및 보고 시기 관련 사항은 금감원장이 따로 정하는 바에 따른다고만 명시돼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금융사고 규모와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금감원 정기검사 또는 수시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늑장 보고 의혹이 불거지고 그럴 때마다 금융사들은 "자체조사를 하느라 보고가 늦어졌다"고 해명하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금융사 입장에서는 자체조사 후 위법행위를 적발한 것이 인정되면 추후 제재 감경 사유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당국은 금융사가 회사와 임직원의 불법·부당행위를 자체적으로 시정하거나, 당국에 자진 신고하고 검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 과징금 또는 과태료를 감경해주고 있습니다. 이 감경 비율은 지난 2020년 30%에서 50%로 확대됐습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인지하자마자 보고를 할 정도로 파악이 되는 사고는 바로 보고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추가적으로 확인한 후 보고를 하는 등 사고별로 다르게 진행된다"며 "그 과정에서 보고 시기가 즉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사각지대가 발생하기도 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당국이 모든 것을 수시로 알아채는 것보다는 금융사 자율적으로 적발하고 처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내부통제 강화 취지"라며 "금융사고 보고가 다소 늦더라도 자체 적발 후 보고가 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본다"고 했습니다.
금융사들이 금융사고를 인지한 이후 금융당국에 늦게 보고하거나 사건을 은폐·축소하는 행위가 만연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인센티브로 자정 유인해야"
지난 2023년 적발한 BNK경남은행의 3000억원대 횡령 사고, 대구은행(현 IM뱅크)의 불법 계좌 개설 등도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자체조사 등을 이유로 보고가 지연돼 당국이 사고 파악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두 은행은 금융사고 정황을 미리 파악했지만 자체조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당국에 즉시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이들 은행은 "위반 사실이 명확해진 뒤 보고하려고 했다"며 부인했습니다.
우리은행도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친인척 부당 대출 사고 관련으로 늑장 보고 의혹을 받았습니다. 우리은행 경영진이 부당 대출 문제를 인지한 시점은 2023년 9월쯤인데, 수사기관에 관련자들을 고소한 것은 시간이 한참 지난 이듬해 8월입니다. 당시 금감원이 금융사고 미보고 등을 문제 삼고 검찰 고발까지 나섰으나, 최종적으로는 무혐의로 결론이 났습니다.
금감원 검사 직전 내부적으로 사건을 은폐 또는 축소하려는 행위도 문제가 됐습니다.
지난 1월 적발된 기업은행의 800억 규모 부당 대출 사고에서는 금감원 검사 직전 기업은행 직원들이 부당대출 관련 파일과 사내 메신저 기록을 삭제한 것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기업은행은 삭제한 자료가 고객 정보나 부당 대출 관련 자료가 아니라 내부 참고용으로 작성된 문서였으며,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봐 내부적으로 자체 판단해 삭제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2019년에도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의 대규모 손실 사태와 관련, 하나은행이 전수조사 자료 등을 금감원 검사 직전 삭제한 것으로 드났습니다. 금감원이 '디지털 포렌식'을 진행해서야 삭제된 자료를 복구할 수 있었습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위법행위를 적발하고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자기보호 본능이 작동하는 것은 어느 정도 고려를 하는 부분"이라면서도 "여러 가지 기록 삭제 정황이 있더라도 형법에서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조직적인 은폐 정황이 있어야 처벌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서은숙 상명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금융사고 늑장·허위 보고는 신뢰를 훼손하는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에 처벌 강화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제재 강화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보완책으로 금융사고 적시 처리 시 제재 감경, 검사 주기 완화 등 인센티브 구조를 만든다면 보고 체계의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습니다.
금융사고 발생시 금융사의 보고 의무를 강화하기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서울 영등포구의 한 은행 대출창구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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