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검찰이 대장동 민간업자들을 '별건 수사'해 얻은 진술로 이재명 대통령을 재판에 넘겼다는 사실이 법원에서 인정됐습니다. 검찰이 이미 기소된 민간업자들을 다른 혐의로 조사한다는 핑계로 불러 압박했다는 겁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을 공범으로 지목하는 진술들을 받아냈지만, 법원은 검찰 수사 방식이 잘못됐다며 증거로 인정하지 않은 겁니다.
지난달 31일 선고된 김만배씨(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등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 사건 1심 판결문을 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조형우)는 '기소 후 작성된 검사의 피의자 신문조서와 참고인 진술조서' 일부를 증거로 쓸 수 없다고 결정했습니다.
형소법 개정에도 '버릇 못 고친' 검찰
검찰이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을 수사하면서 대장동 일당에게 적용한 혐의는 배임입니다. 검찰은 2021년 11~12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김만배씨, 남욱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정민용 변호사 등 5명을 기소했습니다.
하지만 일당에 대한 기소한 후에도 검찰은 수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법원에서 배임죄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중에도 피고인들을 공직자의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로 조사했습니다.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공소사실은 혐의 이름만 다를 뿐 배임죄와 똑같은 사실관계를 기초로 합니다. 다른 혐의로 수사하는 척하면서 사실상 배임죄 수사를 계속한 겁니다.
검찰은 1심 재판부에 이해충돌방지법 조사 때 작성된 피고인들의 피의자신문조서 등을 배임죄 추가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아울러 2023년 1월엔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로 피고인 전부를 추가 기소했습니다. 3개월 뒤인 4월엔 대장동 일당의 공소장을 대대적으로 변경, 배임행위 주체로 이 대통령과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비서실 정무조정실장을 추가했으며 주요 구성요건을 상당 부분 변경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는 검찰이 이 대통령을 배임죄 공범으로 재판에 넘긴 시기(2023년 3월)와 맞물립니다.
검찰의 이런 수사·기소 방식은 별건 수사 관행을 막기 위해 개정된 형사소송법 취지에 어긋납니다. 2020년 개정된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2022년 1월 기소된 사건부터는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해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공판에서 그 내용을 인정할 때만 증거로 쓸 수 있도록 했습니다. 검찰이 별개의 사건을 수사한다는 핑계로 피고인을 다시 조사하고, 그 조서를 증거로 활용하던 관행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였습니다. 그런데도 검찰은 개정법이 금지한 별건 수사 관행을 그대로 반복한 겁니다.
검찰 '별건 수사' 관행에 제동 건 법원
1심 재판부는 검찰이 별건 수사를 벌였다고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는 “검사는 피고인들을 배임 사건으로 공소제기한 뒤 별건인 이해충돌방지법사건 등 수사과정에서 피고인들에 대한 피의자신문 조서를 작성해 배임 사건 추가 증거로 제출했다”며 “이해충돌방지법 수사 과정에서 작성된 검사 피신조서가 배임 사건 기소 후 추가 증거로 제출된 경우, 사실상 배임 사건에 관해 작성된 검찰 피신조서를 배임 사건 기소 후 제출한 것과 마찬가지 실질을 가지는 것으로 보아 그 증거능력을 판단함에 있어 엄격한 잣대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배임 사건은 2023년 1월 이해충돌방지법 사건 공소제기 후 약 3개월 만에 대대적인 공소장 변경신청이 이뤄졌는데, 이로써 배임 사건에 관해 공범인 배임 주체(이재명·정진상의 추가), 임무배임행위, 인과관계, 손해액과 재산상 이익 액수 등 배임죄의 주요 구성요건요소에 관해 기존 공소사실이 대폭 변경됐다"면서 "이는 사실상 새로운 기소라고 볼 만큼의 전면적인 공소사실의 변경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이해충돌방지법 수사를 빌미로 배임사건 공소장 변경을 위한 수사도 함께 이뤄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2026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재판부는 검찰이 법정 밖에서 피고인들을 압박해 진술이 뒤집었다고 했습니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배임죄 증언을 하던 시기에도 그들을 소환, 이해충돌방지법에 관한 수사를 했기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남욱·정영학·정민용에 대한 이해충돌방지법 검찰 조사는 피고인들이 배임 사건에 출석해 증언하던 시기와 맞물리거나 근접한 시기에 이뤄졌다"며 "이미 증언한 증인인 피고인들을 법정 밖에서 다시 추궁하는 측면이 있고, 이러한 점에서도 그 조서를 그대로 증거로 제출받는 것은 공판중심주의. 직접심리주의에 반하게 될 위험이 있다"고 했습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조사 과정에서 다른 피고인들의 증언에 비춰 진술 내용을 추궁하거나 향후 있을 증언 방향을 암시하는 등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점에 비춰 보더라도 피고인들의 이해충돌방지법 검찰 피신조서 등을 구법(2020년 개정 전 형사소송법) 규정에 따라 그대로 제출받는 것에 관해 일정한 제한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대장동 사건에 관한 1심 판결문이 검찰의 별건 수사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고 평가합니다. 박판규 변호사(법무법인 LKB평산)는 "별건 수사 관행을 막기 위해 형사소송법이 개정됐는데, 검찰은 그걸 우회해 또다시 별건 수사를 벌였다"며 "재판부가 개정된 형사소송법 취지에 따라서 증거 배제 결정을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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