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김성은 기자] 민주당이 3일 현직 대통령의 형사재판을 중단시키는 이른바 '재판중지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재판중지법의 연내 처리 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추진 방침을 공식화했지만, 단 하루 만에 입장을 바꾼 겁니다. 민주당의 입장 변화에는 대통령실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론의 역풍을 우려한 대통령실이 사실상 제동을 건 셈입니다. 이에 따라 민주당 내 강경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추진된 재판중지법이 폐기 수순을 밟을 전망입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대통령 의사 반영된 듯…'재판중지법 폐기' 수순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민주당의 사법 개혁 처리 대상에서 재판중지법을 제외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의 재판은) 헌법상 당연히 중단되는 것이니 입법이 필요하지 않고 만약 법원이 헌법을 위반해 종전의 중단 선언을 뒤집어 제기하면 그때 위헌심판 제기와 더불어 입법해도 늦지 않다고 판단한다"며 "대통령을 정쟁의 중심에 끌어들이지 말길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앞서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브리핑을 통해 "민주당은 당 지도부 간담회를 통해 국정안정법(재판중지법)을 추진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박 수석대변인은 재판중지법 추진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재판중지법 추진 철회의 사유에 대해 "(당 내부에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성과와 대국민 보고대회 등에 집중할 때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당 지도부 간담회를 통해 (철회를) 결정하고 대통령실과도 조율을 거쳤다"고 했습니다.
민주당은 전날까지만 해도 재판중지법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속도전을 예고했습니다. 박 수석대변인은 전날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재판중지법을 '국정안정법'으로 칭하겠다며 "이르면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불과 하루 만에 '철회'로 입장을 바꾼 겁니다.
결국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민주당에 전달된 것으로 보입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원래부터 이 대통령은 자신과 관련된 법안이 추진돼서 정쟁의 대상이 되는 것을 싫어한다"며 "이 대통령의 이러한 의사를 갖고 당과 조율에 나섰고, 당 지도부가 (재판중지법 추진을 철회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해서 (당이) 추진하지 않는 것으로 발표한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재판중지법'은 대통령이 재임 중 형사재판을 받는 경우, 임기 종료 시까지 재판을 중지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해당 법안은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한 차원에서 민주당을 중심으로 추진됐습니다. 김용민 민주당 의원이 지난 5월 초 해당 법안을 발의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지만, 6월 초 이 대통령이 취임한 후 본회의 처리 직전 보류됐습니다.
이후 지난달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나온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이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 재개에 대해 "이론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고 답한 것을 계기로 재판중지법에 다시 불이 붙었습니다. 이에 김용민 의원이 지난달 26일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재판중지법 재추진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민주당에선 이때까진 '개인 의견'으로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나 지난달 31일 대장동 개발 비리에 연루된 김만배·유동규씨 등에 대해 유죄가 선고된 이후 민주당의 분위기는 또다시 급변했습니다. 이후 민주당은 전날 재판중지법의 연내 처리 가능성을 시사하며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냈습니다. 다만 대통령실의 제동으로 단 하루 만에 해당 법안에 대한 추진 의사를 접게 됐습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4일 시정연설에도 '악영향'…사법 리스크만 '부각'
재판중지법은 일단 철회됐지만, 이번 논란을 계기로 일어날 후폭풍이 상당합니다. 당장 이 대통령의 경주 APEC 정상회의 성과가 묻힐 위기에 처했습니다. 대통령실은 지난 주말에 끝난 APEC의 외교적 성과들을 부각할 시점인데, 오히려 재판중지법 추진이 정치권의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면서 이 대통령의 외교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여기에 4일 진행되는 시정연설에도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이 대통령은 내년도 예산안에 관한 방향을 설명하는 시정연설에 나설 계획인데요. 다만 재판중지법을 둘러싼 여야의 대립이 더욱 극심해진 가운데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이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진행될 전망입니다. 현재 분위기라면 이 대통령을 향한 국민의힘의 피켓 시위도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만 부각되는 모양새입니다. 민주당이 재판중지법을 제외한 사법 개혁에 드라이브를 건 상황에서 언제든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가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주요 피고인들도 중형의 선고를 받으면서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가 재차 정치권의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김성은 기자 kse5865@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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