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씨를 도와 비상계엄의 절차적 요건을 갖춘 정황이 법정에서 증언으로 드러났습니다. 한 전 총리가 윤씨에게 “기다려달라”, “(비상계엄) 요건을 갖춰야 한다”, “정족수를 맞춰야 한다”고 말했고, 이 말을 들은 윤씨가 국무위원들을 추가로 소집했다는 겁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방조, 위증,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등 혐의 사건 4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진관)는 27일 내란 우두머리 방조 등 혐의를 받는 한 전 총리의 4차 공판기일을 열었습니다.
공판엔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과 김정환 전 대통령실 부속실 수행실장이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검찰청 직원 출신입니다. 윤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윤씨와 검찰에서 오래 일한 인연을 계기로 대통령실에서까지 근무하게 됐습니다. 윤씨를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한 측근들로 꼽힙니다. 두 사람은 법정에서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이들 진술에서도 한 전 총리가 윤씨의 비상계엄 선포를 도운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이날 두 사람의 진술을 종합하면, 윤씨는 지난해 12월3일 오후 7시46분쯤 삼청동 안가에서 대통령실로 돌아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을 용산으로 부르라고 지시했습니다. 이후 한 전 총리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김영호 전 통일부 장관 등 안보·내치 관련 장관들도 불렀습니다.
그런데 김 전 수행실장에 따르면, 한 전 총리는 대통령실에 도착해 윤씨에게 “기다려달라”, “요건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전 수행실장은 한 전 총리가 윤씨를 “만류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한 전 총리가 만류한 구체적 사실관계를 들진 못했습니다. 재판부가 “비상계엄을 멈추라는 취지냐, 기다려달라는 취지냐”고 묻자 김 전 수행실장은 “기다려달라는 취지”라며 한 전 총리가 비상계엄을 반대하는 발언은 들은 적 없다고 답했습니다.
강 전 부속실장은 “한 전 총리가 (국무회의) 정족수를 채워야 한다”고 말했다고 김 전 수행실장으로부터 들었다고 법정 증언했습니다. 다만 김 전 수행실장은 ‘정족수’란 단어를 듣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윤씨는 한 전 총리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 국무위원을 추가로 부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김 전 수행실장은 “(윤씨가 한 전 총리로부터) 그 말(‘요건을 갖춰야 한다’)을 듣고 추가로 국무위원들 부르라고 했다”며 “국무위원 6명을 불러줬다”고 말했습니다. 윤씨가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안덕근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경제 관련 장관 6명을 추가로 부르라고 지시했단 겁니다. 한 전 총리가 윤씨를 도와 비상계엄의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게 했다는 의심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한 전 총리는 그동안 윤씨의 비상계엄 선포를 적극적으로 반대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윤씨를 종일 수행했던 김 전 수행실장은 한 전 총리를 비롯해 국무위원들이 비상계엄을 반대한 발언을 듣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김 전 수행실장이 비상계엄을 반대했다고 지목한 인물은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뿐입니다. 김 전 수행실장은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을 때 “정진석 전 비서실장이 김용현 전 장관에게 ‘역사에 어떻게 책임질 거냐’라며 노발대발 화를 냈다”고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 그는 “대통령이 정 전 실장에게 ‘나를 설득하려 들지 말라’, ‘실장님은 나서지 말라’고 하자 정 전 실장이 ‘대통령님 (계엄)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소리쳤지만 윤씨를 막을 순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한편 재판부는 이날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 혐의를 추가하는 특검의 공소장 변경을 허가했습니다. 아울러 재판부는 다음 달 변론을 종결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이르면 올해 안에 한 전 총리 1심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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