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소리) 귀여운 맹금류, 비둘기조롱이
2025-10-10 10:23:02 2025-10-11 00:39:00
비둘기조롱이 어린 새가 공중에서 잠자리를 낚아채려고 발톱을 드러내고 있다.
 
날렵하고 빠른 맹금류이지만, 귀여운 곤충 사냥꾼 비둘기조롱이(Amur Falcon)는 들녘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가을철에 아주 적은 개체수가 한반도를 찾아옵니다. 러시아 아무르강 유역, 중국 헤이룽장성 습지, 몽골 습지에서 번식해 멀리 남동부 아프리카까지 약 1만4560km를 이동해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이들의 주된 이동 경로는 중국 남부, 인도차이나반도 북부, 인도 북부를 횡단해 인도양을 넘어 아프리카 대륙 동쪽을 따라 월동지인 남아프리카까지 비행합니다. 따라서 주 이동 경로의 변방에 위치한 한반도를 거쳐 가는 숫자는 아주 미미하지요. 
 
몸길이 약 29cm, 날개 길이 70~72cm인 비둘기조롱이는 아주 작은 매과 맹금류로, 공중에서 잠자리 같은 곤충을 사냥합니다. 매과 동물의 특징인 빠른 속도, 뛰어난 시력, 잽싼 방향 전환 능력을 두루 지녔고, 황조롱이처럼 제자리 비행도 곧잘 합니다. 암수 깃털의 구분이 다른 매과 동물보다 뚜렷하고, 수컷이 암컷보다 작은 것은 동일합니다. 어린 새는 암컷의 깃털과 흡사하지만 눈 위에 하얀 눈썹 선이 있어 쉽게 구별할 수 있지요. 
 
매년 10월 초순, 가을걷이를 기다리는 벼가 황금 물결을 이룰 때, 경기도 파주시 공릉천 주변의 농경지에 가면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비둘기조롱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논길 따라 늘어선 전깃줄에 멧비둘기처럼 보이는 새들이 나란히 앉아 있으면, 그들은 대부분 비둘기조롱이입니다. 하지만 공릉천 주변을 다 살펴봐도 전체 개체수는 50여마리가 넘지 않는 소집단입니다. 전깃줄에서 사방을 살피다가 잠자리가 하늘을 날면 빠른 속도로 날아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낚아챕니다. 
 
가을철 잠시 머무르는 비둘기조롱이 유조가 파주 황금 들녘에서 잠자리 사냥을 하고 있다. 
 
이 지역 터줏대감 까치들은 가을 진객을 몰라보고 텃세를 부립니다. 때때로 까치 무리와 비둘기조롱이 무리가 집단으로 싸움을 벌이지만, 비행 실력이 뛰어난 비둘기조롱이들이 대체로 피하는 편입니다. 아프리카까지 먼 여행을 해야 하는데,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피하는 것이지요. 
 
광활한 아무르 습지와 몽골 습지에서 풍부한 곤충을 포식하며 번식하는 비둘기조롱이는 총 개체수가 60만마리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아프리카 월동지를 다녀오면 개체수는 급감합니다. 큰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비둘기조롱이가 중간 기착지인 인도 북동부에서 인간들에게 대규모 희생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2012년 인도 나갈랜드주 지방에서 12만마리 이상의 비둘기조롱이들이 학살당했다는 뉴스에 전 세계 시민들이 경악했어요. 보도된 뉴스에 따르면, 비둘기조롱이 이동기 때 그물을 쳐서 하루에 1만마리 이상을 포획해 구워 먹는 지역 풍습이 있고, 심지어 두 마리에 미화 1달러 정도로 판매까지 했다는군요. 
 
전 세계 여론의 비난이 일자, 인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NGO들이 나서서 비둘기조롱이 보호 활동을 하고 있어요. 인도 나갈랜드주 팡티 지방의 나가족 사람들은 과거 비둘기조롱이를 잡는 전문 사냥꾼에서 보호 활동가로 변모하고 있어요. 주 정부는 비둘기조롱이 보호자로 변신한 사냥꾼들에게 보조금을 지원하고, 이동 기간에 비둘기조롱이 보호를 위한 지역 축제를 열고 있어요. 호수 주변에 장관을 이루는 비둘기조롱이 무리 덕분에 관광객이 몰려오고, 지역 경제에도 큰 보탬이 되고 있답니다. 생명을 죽여 얻는 작은 돈보다, 생명을 살리면서 고소득을 얻는 큰 행복을 지역 주민들이 깨닫기 시작한 것이지요. 
 
유라시아 대륙 북동부에서 대각선으로 남아프리카까지 무리를 지어 대장정을 하는 비둘기조롱이의 보호를 위한 국제 협력이나 국제 연구는 아직 미미합니다. 이동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번식지, 기착지, 월동지에서 위성 추적 장치를 부착해 조사하고 있고, 기후변화와 경작지 확대가 비둘기조롱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위성 추적 장치를 부착한 한 암컷 개체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인도양을 8번 횡단한 기록이 그나마 큰 성과입니다. 
 
우리나라는 비둘기조롱이 이동 경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지만, 그나마 그들이 찾아오는 지역 사정이 녹록지 않습니다. 최근 매년 가을철 찾아오는 개체수가 줄어들고, 농경지 주변에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고 있으며, 자연 습지에 가까웠던 공릉천에 도로와 시설물이 새롭게 건설되고 있습니다. 서식지 축소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농약과 화학비료입니다. 그들의 주된 먹이인 잠자리가 사라진 농경지와 습지는 비둘기조롱이에게 아무 쓸모 없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글,사진=김연수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과 겸임교수 wildik02@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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