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희 기자] 정부의 상생금융 확대 기조에 맞춰 은행권이 중소기업 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렸습니다. 다만 경기 둔화로 연체율도 동반 상승세를 보이면서 은행권 건전성 악화 우려는 커졌습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지난달 25일 기준 669조5430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지난 6월 말 대비 5조4562억원 증가한 수치입니다. 올해 상반기 전체 증가 규모가 1조8758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불과 석 달 만에 이미 상반기 증가분을 크게 웃돈 셈입니다.
개인사업자(소호) 대출 잔액은 325조1314억원으로 같은 기간 1조428억원 늘었습니다. 올 상반기 개인사업자 대출이 지난해 말 대비 1조5332억원 감소했던 흐름과는 확연히 대비됩니다. 정부가 가계대출 억제 기조를 강화하자 은행들이 기업대출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개인사업자 대출이 빠르게 확대된 것으로 분석됩니다.
은행들이 발 빠르게 기업대출을 늘린 이유는 정부의 '생산적 금융 확대' 기조에 부응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안정적인 가계대출 중심의 영업 관행에서 벗어나 혁신 벤처기업과 신성장 산업 등에 자금을 공급하는 ‘상생 금융’으로의 전환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주택담보대출에 위험가중치를 높여 적용하고 주식 위험가중치는 400%로 낮춰 최대 31조6000억원 규모의 기업대출 확대를 유도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습니다. 위험가중치는 금융사가 외부에 공급한 자금의 회수 가능성 등 투자위험을 반영한 지표입니다.
은행이 100억원 규모의 주담대 대출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현재 15% 기준 위험자산은 15억원으로, 최소 자기자본비율 기준이 8%인 점을 감안하면 1억2000만원을 적립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중치가 20%로 상향되면 위험자산은 20억원, 필요자본은 1억6000만원으로 늘어나 금융권 대출여력이 줄어듭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당국은 이같은 조치로 은행이 연간 신규 공급하는 주담대 275조원 중 10% 수준인 27조원 가량이 줄어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주식 위험가중치 완화에 따라 31조6000억원까지 투자여력이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업대출 평균 위험가중치 43%를 적용하면 투자 규모가 최대 73조5000억원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하지만 은행권에서는 담보가 있고 우량한 대출인 주담대를 억지로 줄이는 것은 금융 안정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실제로 국내 은행들의 주담대 연체율은 0.2~0.3% 수준으로, 신용대출이나 기업대출에 비해 현저히 낮은데요.
은행들이 위험자본으로 분류되는 혁신기업·벤처기업에 더 적극적으로 자금을 공급하라는 취지이지만 모험자본 투자의 취지에 대해서는 수긍하지만 위험 투자를 장려하는 게 과연 합리적이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중소기업대출의 빠른 확장이 오히려 은행권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국내은행의 기업대출 연체율은 0.67%로 전월 대비 0.07%p 상승했습니다. 이 중 대기업대출 연체율은 0.14%로 변동이 없었지만,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전월보다 0.08%p 오른 0.82%를 기록했습니다. 세부적으로 중소법인 연체율은 0.9%로 전월 대비 0.11%p 뛰었고, 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도 0.72%로 0.06%p 상승했습니다.
중소기업대출 비중이 높은 기업은행 사례는 경각심을 더하고 있습니다. 이정문 민주당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기업은행의 기업대출 연체율은 1.20%로, 약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2021년 0.28% 수준이던 연체율은 2022년 0.32%, 2023년 0.61%, 지난해 0.81%, 지난달 1.20%로 급격히 오르고 있습니다. 중소개인 연체율이 1.20%로 가장 높았으며 중소법인 1.19%, 대기업 1.01% 순으로 집계됐습니다.
업계에서는 경기 둔화 국면에서 중소기업의 상환 부담이 커지면서 은행권 건전성 지표가 당분간 더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수출 감소세가 이어지고 내수 회복이 더뎌진다면 한계 기업(영업이익으로 대출 이자를 다 갚지 못하는 기업)이 늘어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중소기업 대출이 증가하면서 연체율도 함께 상승하고 있지만, 정부의 생산적 금융 확대 요구로 은행들은 대출 확대를 계속 추진 중이며, 다만 리스크 관리 강화가 필요해 대출 확대에 일부 조정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생산적 금융 확대와 건전성 관리는 동시에 가능하나, 신용평가 고도화, 위험가중치 완화, 자본 확충 등 체계적 리스크 관리와 정책적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은행권은 정부의 생산적 금융 확대 요구와 건전성 관리라는 이중 과제를 동시에 떠안게 됐습니다. 정책 기조에 맞춰 중기대출을 늘리되, 경기 침체와 연체율 상승이라는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하반기 은행권의 핵심 과제가 될 전망입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 기조에 맞춰 기업대출을 늘리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동시에 충당금 확충과 리스크 관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며 "특히 개인사업자와 중소기업 연체율이 올라가는 만큼 대출 심사와 사후 관리애 더욱 신경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부의 상생금융 기조에 맞춰 시중은행 기업대출이 늘어나고 있지만 동시에 연체율도 늘어나고 있다. 은행들은 건전성 관리에 더욱 신경을 쓰겠다는 입장이지만 리스크는 계속 커질 전망이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기업대출 창구.(사진=뉴시스)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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