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고별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한·일 관계의 시선은 '포스트 이시바'로 향하고 있습니다. 오는 10월4일 열리는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와 같은 달 14일께로 예정된 총리 지명 선거가 관건인데요. 현재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의 양강 구도가 유력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성향이 온건 보수보다는 강경 보수에 가까운 만큼 과거사 문제와 독도 문제 등을 고리로 한 한·일 관계의 험로가 예상됩니다.
도쿄 자민당 당본부에서 22일 열린 자민당 차기 총재 선거에 입후보한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상, 모테기 도시미쓰 전 외무상,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상이 연설을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0월 중순 새 총리…셔틀외교 지속 '의문'
이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는 이날 오후 부산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갖고 △저출산·고령화 △국토 균형 성장 △농업 △방재 △자살 대책의 공통 사회문제에 대한 협의체를 꾸린다는 공동 발표문을 발표했습니다. 사회문제에 공동 대응하며 협력의 폭을 넓힌다는 겁니다.
이번 이시바 총리의 방한은 조기 퇴임 전 마지막 방문으로 '고별 정상회담'에 해당합니다. 특히 지난 8월 이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에서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만나자"고 제안한 것에 이시바 총리가 호응하며 '셔틀외교'의 완전한 복원을 알렸습니다. 한·일 정상회담이 서울이 아닌 장소에서 열린 건 지난 2004년 7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제주도에서 회담한 이후 21년 만입니다.
이시바 총리가 마지막 회담에서 '지방 활성화'를 목표로 하는 이 대통령에게 '선물'을 안겨준 셈이기도 한데요. 한·일 관계의 발전에도 이바지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다만 일본 내에서도 '온건파'로 알려진 이시바 총리의 한·일 관계 조성이 지속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의 조기 퇴진에 따라 일본 집권당인 자민당은 다음 달 4일 총재 선거를 진행합니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 △모테기 도시미쓰 전 자민당 간사장 등 5명이 출마했습니다.
이날 자민당 총재가 선출되면 이시바 총리의 후임을 결정하기 위한 '총리 지명 선거'가 예정돼 있는데, 10월14일 이후 소집이 유력한 상황입니다. 이시바 내각 출범 당시 총재 선거 나흘 만에 총리 지명 선거가 치러졌던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상황인데요. 중·참의원 모두 여소 야대인 상황에서 연정 확대를 위한 야당과의 협의 시간 확보로 인한 조치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양강 구도 속 '극우' 우려…과거사 '부각' 전망
'포스트 이시바'는 결국 자민당 총재 선거를 통해 결정되는 셈인데, 5명의 입후보 중 다카이치 의원과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의 양강 구도가 유력한 상황입니다.
<요미우리>가 지난 27~2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자민당 지지층 3143명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에 40%, 다카이치 의원에 25%의 지지를 보냈습니다. <니혼게이자이>와 <도쿄TV>가 지난 26~28일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다카이치 의원이 34%,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이 25%로 1, 2위를 다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295명의 표와 자민당 당원+당우(자민당 후원 정치단체 회원) 투표를 295표로 환산해 총 590표의 총 투표수로 치러집니다. 현재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담당상과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이 양강 구도를 나타내고 있지만, 과반의 투표를 확보하지는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변수는 여전합니다. 특히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당 의원 조사에서의 높은 지지율을, 다카이치 의원은 일반 당심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이며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습니다.
두 후보 중 누가 당선되든 오는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해, 첫 번째 한·일 정상회담을 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는 양강 후보 모두 이시바 총리의 '온건 보수'를 넘어서 다소 차이는 있지만 극우 보수 성향에 가깝다는 겁니다. '여자 아베'로 불리는 다카이치 의원의 경우 정기적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습니다. 게다가 최근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의 날'에 "장관이 당당하게 나가면 좋지 않은가"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두가 일본 영토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게다가 최근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의 날'에 "장관이 당당하게 나가면 좋지 않은가"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두가 일본 영토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비교적 한·일 관계 문제에 대한 언급을 자제한 다카이치 의원은 역사 인식에 있어 아베 신조 전 총리와 유사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 이재명정부의 '투 트랙' 전략이 순항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의 경우 다카이치 의원에 비해 비교적 온건파에 속합니다. 그는 출마 회견에서도 "한국은 국제사회의 다양한 과제 대응에서 파트너로서 협력해가야 할 중요한 이웃 나라"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매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으며, 농림수산상 신분으로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이력이 있습니다. 부친인 고이즈미 전 총리 역시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집권 기간 한국·중국과의 마찰을 일으켰습니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가 셔틀외교 복원을 통해 한·일 관계의 진전을 이끌어냈다고 할지라도, 향후 한·일 관계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이재명정부가 과거사와 미래 협력을 분리하는 '투트랙' 전략을 펼친다 해도 과거사 문제가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아질 전망입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