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조3287억원'. 2026년 해양수산부 예산이다. 전년보다 8.1% 늘었지만 해양수도권, 북극항로 시대를 외쳐온 새 정부의 의지치곤 차가운 숫자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다. 푸른 파도처럼 힘차게 출렁이는 해수부의 위상을 기대했지만 국가 전체 예산의 1% 파고를 넘지 못했다.
그럼에도 '기후위기 대응', '북극항로 기반 조성', '해양 인공지능 전환(AX) 신산업 육성'이라는 3대 전략 방향타에 맞춰 구조적 전환을 꾀한 것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숫자로는 목마르지만 새 정부가 바다와 맺은 새로운 약속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일렁이는 바다의 해수면만 보기보단 격랑을 뚫고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돛대와 항로를 비출 새로운 등불의 의미가 크다는 얘기다.
단순히 뱃사람의 삶을 지탱하기보단 기후위기와 산업 전환이라는 항로를 설계한 전략 나침반으로도 읽히기 때문이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연구개발(R&D) 예산이 8405억원으로 늘어난 점이다. 문재인정부였던 지난 2022년과 비교하면 약 19.6% 급증했다.
윤석열정부에서 싹둑 깎인 R&D 예산이 복원된 건 물론, 해양수산의 첨단화,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 AI 기반 해양영상 분석기술 개발, 해양바이오 신기술 R&D 투자 등 미래산업을 위한 밑그림은 새로운 '해양 르네상스'를 포문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푸른 르네상스를 향한 기술의 돛은 단순한 연구비 확대가 아닌 바다를 공유하는 국민 모두의 결실을 나눌 '진짜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
예산 구조상 대부분 20억~60억 단위의 소규모 사업들로 나눠져 있지만 실증·사업화 단계(TRL 7~9)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술 완성·성숙도를 위한 구조적 노력이 필요하다.
해운·항만 부문도 정책적 보완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글로벌 경쟁과 탄소 규제 대응을 위한 육상전원공급(AMP) 시설과 액화천연가스(LNG)·수소 연료 전환 등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한 실정이나 증액률로 따지면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별도 지원 사업들과 보폭의 궤를 함께하고 있다는 답변을 내놓고 있지만 탄소중립 항만, 북극항로 등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속도나 격차 확대에 우려가 생길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해당 예산은 단순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가 아니라 글로벌 경제의 혈관 잇는 관문이다. 친환경 항만, 스마트 물류 시스템,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가장 낮은 2.6% 증액률은 '짠물 숫자'라는 지적을 받기 충분하다.
해양환경 예산 21.7% 증액과 관련해서는 의미가 깊다. 바다가 내는 신음에 뒤늦게나마 답한 결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푸른 바다는 상징적 표현이 아닌 지켜내야 할 구체적 과제가 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문제는 숫자의 증가가 아닌 실행의 깊이에 있다. 바다는 침묵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인류를 향한 무언의 경고가 담겨 있다. 지난 정부 기간 동안 한국 경제의 퇴보에도 불구하고 7조원대의 예산은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봐야 한다.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를 어떻게 살아 있는 정책으로, 푸른 미래로 바꿔낼지는 또다시 불리한 여건을 극복해야 할 해양수산부의 명운과도 같기 때문이다.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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