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수정 기자] 금융당국과 학계에서 부실 보험사 자본 관리 방안으로 런오프(run-off·계약이전) 제도 도입을 언급했지만, 정작 보험업권의 반응은 싸늘합니다. 노동 문제와 제도 정착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이 맞물리면서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산업은행 자회사인 KDB생명의 자본잠식과 관련해 단순 유상증자가 아닌 런오프 전문회사 설립을 통한 정리 등 아이디어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금융위가 지난 5월 부실화된 MG손보에 가교보험사를 설립해 계약자 보험계약을 이전시켜 부실을 털어내는 방안을 확정한 것도 런오프와 비슷한 맥락으로 보입니다. 국민 세금을 들이지 않고 청산 절차를 밟으라는 주문으로도 풀이됩니다.
런오프는 보험회사가 신규 영업을 중단하고 기존 보험계약만 유지·관리하며 만기나 해지 시까지 정리하는 방식으로, 보험사 수익성 개선과 리스크 관리에 도움을 줍니다. 해외에서는 전문 운용사가 계약을 인수해 관리하는 형태로 활성화돼 있습니다. 직접적인 파산이나 청산 대신 안정적으로 계약을 종료할 수 있는 출구 전략으로 통합니다.
그러나 국내에서 런오프는 제도적 미비와 노동계 반발 등으로 수년째 논의만 간헐적으로 반복될 뿐 제도화에 전혀 진척이 없는 상황입니다. 논의도 계약이전 절차, 소비자 보호 장치, 전문 운용사 설립 요건 등 세부적인 규율이 아닌 연구 보고서와 회의 안건에 머물러 있습니다.
런오프 도입 논의가 이번이 처음도 아닙니다. 보험연구원을 비롯한 학계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검토 의견과 함께 미국, 영국, 독일 등 국외 동향을 조사해왔습니다. 지난해 금융위원회가 보험업계 혁신을 위해 개최한 보험개혁회의에서도 런오프 제도가 논의된 바 있습니다.
보험업권 반응은 여전히 시큰둥합니다. 지금처럼 당국의 경영 개선 조치 이후 부실 금융기관 지정 절차를 통한 청산이 아닌 각 단계별로 완충된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면서도 런오프에 대해선 필요성을 체감하지 못합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런오프에 대한 어떤 보험사들의 견해나 입장도 들려오지 않는다"며 "관심 있는 보험사들이 없고 국내 보험시장에 대입하기 어려운 한계가 크다"고 전했습니다.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선 런오프 전문회사가 보험사 고금리 확정형 상품을 정리하는 데에 일정한 역할을 하지만, 국내 시장은 제도적 토대가 전무한 상황"이라며 "단순 부실 보험사 처리 용도로 도입을 검토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노동권에서는 신규 영업이 제한되는 탓에 대규모 구조조정이 동반될 수밖에 없는 런오프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냈습니다. 노동조합 관계자는 "런오프는 노동이 배제된 방식의 구조조정"이라며 "기존 인력을 품을 수 있는 부실 보험사 정리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KDB생명 사옥(왼쪽)과 MG손해보험 사옥 (사진=각 사)
신수정 기자 newcrystal@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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