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미국과 중국 간 관세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국내 배터리업계가 예상치 못한 기회를 잡고 있습니다.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적자 행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를 제치고 잇단 수주에 성공하며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습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왼쪽)과 허리펑 중국 부총리가 회담에 앞서 악수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4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ESS 시장의 80~90%는 비야디(BYD)와 CATL을 필두로 한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전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비해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글로벌 ESS 시장 점유율은 약 6%에 불과합니다.
중국 업체들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앞세워, 가격·물량·공급망에서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특히 원재료 확보와 정부 보조금, 내수 시장 등 삼박자를 모두 갖춘 중국의 공세는 글로벌 기업들에게도 위협적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 간 관세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고율 관세정책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3일(현지시간)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오는 7일부터 부과할 예정인 국가별 상호관세가 “협상을 통해 인하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중국산 ESS 배터리에는 40.9%가량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는데, 이 중 무역법 301조에 따른 관세율 증가로 내년부터는 총 58.4%의 관세가 부과될 예정입니다. 지난 5월 기준 미국이 수입한 중국산 배터리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줄어드는 등 중국산 배터리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전망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 전력망용 ESS 배터리 컨테이너. (사진=LG에너지솔루션)
양국 간 무역 분쟁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이 크게 약화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습니다.
최근 LG에너지솔루션이 테슬라와 6조원 규모의 LFP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국내 배터리 업체가 ESS 시장에서 중국 업체와 정면 승부를 벌여 따낸 대형 계약입니다. 해당 계약의 상당 부분이 ESS용으로 활용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향후 국내 업체들의 미국 시장 진출에도 긍정적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SDI와 SK온도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두 회사 모두 내년을 목표로 미국 내 LFP 배터리 생산라인 설치를 추진 중이며, 이르면 연말부터 ESS용 배터리 공급 계약을 따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내 현지 생산을 통해 관세 부담을 피하면서도 빠른 공급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시장에서 ESS 배터리는 중국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하지만, 최근 각종 관세 여파로 국내 업체가 유리해졌다”면서 “미국 내에서 배터리를 생산해 판매한다면 충분히 점유율 확대가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ESS는 전기차용 배터리보다 고용량인 경우가 많아 단일 계약의 규모가 크고, 무엇보다 최근 인공지능(AI) 데이터 센터 수요가 급증하는 미국 시장에서 물량 확보가 용이해 실적 회복에 핵심 공급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모르도르 인텔리전스는 미국 ESS 시장 규모가 올해 36억8000만달러(약 5조2561억원)에서 2030년 50억9000만달러(약 7조27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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