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원자력 주권 회복, 진정한 전략 동맹으로 가는 길
원자력 협정 개정 한·미 정상회담 정식 의제 상정해야
2025-08-04 09:47:03 2025-08-04 16:09:13
북한의 핵무기 위협이 날로 고도화되면서,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우리도 핵무기를 개발해 북핵을 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핵무기를 개발하려면 우라늄 농축이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가 가능해야 하는데, 한·미 원자력 협정에 따라 미국의 동의 없이는 이런 시설조차 보유할 수 없다. 이 제약의 배경에는 과거의 신뢰 훼손이 자리 잡고 있다. 1970년대 박정희정부는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으나, 미국의 강력한 반대로 중단됐다. 그 결과 미국은 한국에 대해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더욱 강력히 제한했다. 2004년에는 2002년에 극소량(0.2g)의 우라늄을 실험적으로 농축한 사실이 드러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조사를 받았고, 이로 인해 한국은 '핵개발 잠재국'이라는 의심을 받게 됐다. 1991년 외무부 기밀 해제 문서에 따르면, 1988년 미·일 원자력 협정 개정 당시 IAEA는 일본을 핵무기 개발 우려가 없는 'A등급', 한국은 'C등급'으로 분류했다. 이런 과거 기록은 지금까지도 한국의 원자력 주권에 족쇄처럼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 한국은 지난 30여년간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충실히 이행하며, 국제사회로부터 '모범적인 원자력 이용국’'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2018~2019년 싱가포르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중재자로서 중대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럼에도 미국이 여전히 한국을 잠재적 핵개발국으로 간주하는 것은 시대 착오적이며, 한·미 동맹의 신뢰 수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더욱이 일본과의 비교는 국민 정서상 민감한 사안이다. 핵무기를 제조·보유·반입하지 않겠다는 '비핵 3원칙'을 내세우는 일본은 1988년 미국과의 원자력 협정 개정을 통해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확보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에너지 협상이 아니라, 일본 정부와 정·재계가 총동원된 '원자력 외교 총력전'의 결과였다. 일본은 미국산 농축우라늄과 재처리 관련 장비 구매, 자동차 수출 규제 수용 등 약 56억달러에 이르는 경제적 보상을 제공했고, 스즈키·나카소네·후쿠다 등 전·현직 총리가 미국 의회를 직접 설득해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협정 비준을 이끌어냈다. 
 
이 사례는 한국에도 중대한 전략적 시사점을 제공한다. 현재 한국은 미국에 약 1500억달러 규모의 조선업 협력을 제안하고, 반도체·방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략적 투자를 약속했으나, 미국으로부터 실질적인 기술 권한 이전이나 자주권 회복에 해당하는 반대급부는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퍼주기 외교'라 비판하고 있다. 이제 외교도 '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줄 것은 주되 받을 것은 반드시 받는' 실용적이고 호혜적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권한 확보는 단순한 기술 자립이나 핵잠수함에 들어가는 연료 확보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처리, 국민 생명과 직결된 에너지 안보, 미래 탄소중립 전략 실현을 위한 국가 핵심 인프라의 문제다. 현재 국내 원전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는 임시 저장 시설의 포화로 인해 위기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를 처리하지 못해 수천억 원의 외화를 들여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만약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과의 정상 외교를 통해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하고, 일본과 동등한 수준의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확보한다면, 이는 단순한 기술적 성과를 넘어 한국의 원자력 주권 회복과 미국과의 전략적 동맹 수준을 격상시키는 외교사적 대전환점이 될 것이다. 이 대통령은 국민 자존과 국제적 위상을 끌어올린 '역대 최고의 외교적 성과를 이룬 대통령'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대한민국은 지난 30여년간 국제 핵비확산 규범을 성실히 준수해온 모범국으로서, 일본과 동등한 수준의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확보할 자격이 있다. 정부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을 정식 의제로 상정하고, 에너지 안보 및 원자력 주권 회복을 위한 협상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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